시편 24편: 지성소에 서서

해설:

2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에 비유 하면서 그분의 신실하신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24편에서 그는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은 먼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합니다(1-2절).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2절). 그렇기에 땅과 그 안에 가득찬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입니다(1절). 한 폭의 그림을 볼 때 그 작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작가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그분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따라서 호흡이 있는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산”과 “그 거룩한 곳”(3절)은 성전이 서 있는 시온산을 가리킵니다만, 의미적으로는 하나님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다윗 시대에는 시온산이 곧 하나님 계신 거룩한 곳이라고 믿었지만, 예수님 이후에는 성령과 함께 하는 곳이면 어디나 주님의 산이며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 믿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현존 안에 살아가는 사람의 몇 가지 특징을 열거합니다(4절). 이 절은 시편 15편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을 찾으며 그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5-6절). 

이어서 다윗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향하여 노래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어라”(7절)는 예루살렘 성의 문과 성전의 문을 의미합니다. 성전이 성전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현존 때문입니다. 영광의 왕 하나님께서 들어 가시도록 성전 문이 활짝 열리라고 선포합니다(8-10절). 성전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할 때 비로소 예배자들은 변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에 대해 고백 하면서 그분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고 노래했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먼저 하나님을 찾고 그분 안에서 위로와 안식과 치유와 회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경험하고 나면 그 은혜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에 있어서 변화를 만들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시지만, “내 모습 이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으십니다. 그분의 의로 우리를 옷입혀 주시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문과 성전 문을 향해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7절, 9절)라고 명령합니다. 영광의 왕이 계셔야만 성전은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성전으로 오셨고(요 2:21), 그로 인해 지상의 성전은 파괴되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지상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을 뵙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면서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계 3:20).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성전 안에서도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히 10:19)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밀도 있게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일년에 오직 한 번, 대제사장만 그곳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인해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지성소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 영광의 왕의 현존 앞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거룩한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입술에 거짓과 악한 말을 올리지 않으며 손발로 사랑하고 섬기기를 기뻐할 것입니다. 

3 thoughts on “시편 24편: 지성소에 서서

  1.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느냐?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주님!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 내 마음에 오셔서 머리부터 발 끝까지 통치 하여 주시옵소서.

    Like

  2. 겉 모양은 멀정해 보이나 속내용은 악취가나는 비천한 인생을 보혈로 씻어 정하게하신 주님의
    한 없는 사랑에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지성소에 초청하신 은총에 김사와
    명예를 드립니다. 아직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너무나 더럽습니다, 그럼에도 자녀라고 인정하시는
    거룩하신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기를 간구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몸과 마음과 말과 행동과 삶
    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3. 코로나의 공포가 전세계를 덮던 2020년 봄이 생각납니다. 교회의 문을 닫아야 했던 그 때 시편 24편을 읽었다면 어떤 심정이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백신도 보급되고 마스크 착용도 정착 되면서 코비드 우려가 진정되는 듯 했는데 오미크론 변종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립니다. 교회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아이들까지도 배워 알지만,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지은 곳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놓고 동시에 두가지를 보게 됩니다. 교회가 닫혀 있어도 예배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로 가는 문과 하나님의 자리를 볼 수 없으니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일에 교회를 안 가면 예배를 빼먹은 것처럼 생각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사람 (6절)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시에서도 이런 사람이 되자고 권합니다. 성전의 문들에게 머리를 들고 활짝 열라고 명합니다. 교회의 문만 아니라 교회로 들어오는 만민에게 명하는 듯 합니다. 메시지 성경은 머리를 든다는 것을 잠에서 깨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Wake up, you sleepyhead city! Wake up, you sleepyhead people! 코로나의 잠이 생각보다 깊습니다. 깨어서 일어나려고 해도 다시 주저앉히는 뭔가가 있습니다. 왕을 만나러 나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산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문을 활짝 열어 주소서. 세상 모든 문을 다 열어 주소서.

    Liked by 1 person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