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편: 메시아의 고난

해설:

이 시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올리신 기도로 유명합니다. 십자가 위에 달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실 때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는 기도를 올리십니다. 예수님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시편을 암송하며 기도하곤 하셨을 것입니다. 22편 1절을 기도 하셨다는 말은 그 시편 전체를 마음에 두셨다는 뜻입니다. 

이 시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부분(1-21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묘사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2절)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그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일들을 기억합니다(3-5절). 조상들이 고통 중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을 생각하니 다시금 기도할 용기가 생겨납니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를 설명하면서(6-8절, 12-18절)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합니다(9-11절, 19-21절).

22절부터 기도의 정서가 전환됩니다. 21절 끝에서 다윗은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오래도록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한 끝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것이 이루어졌음을 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요 비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시키고 그 믿음의 눈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이미 일어난 것처럼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렇듯 믿음의 눈을 뜨게 해 주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한 다윗은 “주님의 이름을 나의 백성에게 전하고, 예배 드리는 회중 한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22절)라고 결단합니다. 또한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23절)에게 자신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권합니다(23-28절).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리라는 고백과 함께(29절) 그의 자손들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묵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 시편의 첫 절(“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을 기도로 올리신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절망감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첫 절을 기도할 때 그분의 마음에 이 시편 전체가 울리고 있었다면, 그분은 이 기도로써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표현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셔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그 믿음이 그분으로 하여금 십자가 위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시편을 기도하신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당신의 사역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로서 그분이 당할 고난과 그 고난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 이 시편에 예언되어 있습니다(6-8절, 14-16절, 18절, 27절, 30-31절).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초대 교회의 누군가가 시편 22편을 기초로 하여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를 창작해 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세밀하게 시편 22편의 내용이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의 과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고난과 희생이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이 나와 같은 하찮은 존재를 위해 극한의 고통을 겪으셨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수긍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리적인 진실은 이해하고 받아들일 대상이지만, 영적인 진실은 믿어서 이해에 이를 대상입니다. 그 믿음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실 때 생겨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오직 믿음으로만 체험하여 “진실로 그렇다!”고 수긍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믿음에 이른 이들은 복됩니다.

3 thoughts on “시편 22편: 메시아의 고난

  1. 성탄절 새벽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올리게 하시는 뜻을 묵상합니다. 예수께서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찾는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며 혀를 차며 깔보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대는 무리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여호와가 너를 사랑하시니 너를 구출해줄 거야 (8절)”라고 놀리는 소리 속에서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놓고 제비를 뽑는 (18절)” 모습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시입니다. 다윗의 언어로 쓰여지고 곡조에 맞춰 부른 이 노래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듣게 될 것 (31절)”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다윗의 기도의 응답이요, 찬양의 열매입니다. 성탄절을 기리기 시작한 것은 350년경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율리우스 1세 교황이라는 설명도 있고) 때부터라고 합니다. 기원전부터 있었던 태양신을 숭배하는 풍습과 초대교회의 신학이 합쳐져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경축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흡족하지 않지만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길에서 캐롤도 들리고 딸랑딸랑 구세군 종소리도 들리던 예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아기 예수의 탄생은 희망과 기쁨의 뉴스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아기가 태어났다는 오늘 아침의 소식은 “온 세상 사람들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주님께 돌아올 것이며 모든 민족들이 주님께 엎드려 예배드릴 것 (27절)”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오늘 뿐 아니라 매일 예수를 맞이하고 기립니다. 모든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우리는 주님께 예배하며 감사를 올립니다. 생명으로 오시는 주님을 반기며, 나 또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담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어서 오소서. 우리 안에 당신의 빛이 가득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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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 귀한 보좌를 포기하시고 가장 낮은 아기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와 명예를 들어 올립니다.
    세상의 모든죄를 지시고 극심한 수모와 고난을 저희들을 위해 짊어지신 사랑에 영광과 찬송을
    드립니다.오랫동안 침묵하지만 들으시는 신실 하신 주님께 존귀와 찬양을 들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이웃과함께 사랑,구원,진리,창조주 하나님을 세상에서 찬양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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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예수님의 울부짓는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심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반드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면서 순종의 미덕을 보이신 예수님의 순종을 배우는 제가 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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