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1편: 왕을 위한 감사의 기도

해설:

시편 20편에 이어 21편도 왕을 위한 기도 즉 ‘제왕시편’입니다. 기도자는 먼저 왕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1-7절). 20편의 기도가 왕을 위한 중보 기도였다면, 21편의 기도는 그 기도를 들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왕의 소원을 들어 주시며 승리와 영광을 안겨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그러한 호의를 베푸신 이유는 “왕이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사랑에 잇닿아 있”(7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왕이기에 백성은 그를 위해 마음 다해 중보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와 번영을 안겨 주십니다. 그로 인해 왕과 백성은 모두 기뻐합니다.

왕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의 사랑에 잇닿아 있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8-12절). 하나님께서 그 왕을 지켜 주실 것이며 온 백성은 그 왕을 사랑하고 그에게 충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두려워할 것은 원수의 공격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신실하며 백성을 충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잊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지킨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그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자는 다시 하나님께 눈을 돌려 주님을 사랑하는 왕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자신들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13절)라고 고백합니다. 개역개정은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번역했습니다. 왕이 아무리 큰 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왕은 경배와 찬송의 대상이 아닙니다. 왕은 백성과 같은 자리로 내려와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고 찬송해야 합니다.

묵상:

자신의 지도자로 인해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백성은 행복합니다. 그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일 수도 있고, 한 회사의 대표일 수도 있으며, 한 공동체의 지도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왕노릇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왕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왕노릇에 도취하여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왕을 인정하는 사람은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힘은 그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단비와 햇볕처럼 은혜의 도구로 작용합니다. 

오늘의 시편을 읽으며 우리는 두 가지를 기도합니다.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나에게도 왕노릇하려는 본성이 남아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자리가 어떻든지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사랑에 잇닿아”(7절) 있기를 힘쓰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나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이들이 나로 인해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나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나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하나님께 눈물 겨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처럼 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 하나는 나보다 큰 혹은 높은 권세를 가진 이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입니다. 

시편의 편집자가 20편과 21편을 묶어 놓은 이유는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을 믿으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믿고 지도자를 위해 중보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3 thoughts on “시편 21편: 왕을 위한 감사의 기도

  1.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는것은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부터임을 깨닫고 가정에서
    나라에서 특히 교회에서 그 지도자를 존경하고 우선 지도자의 의견에 동참하고 따르는 태도가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 하는것입니다. 지도자로 부터 민초까지 하나님을 인정하는 가족과
    교회와 국가를 위해 이웃과 함께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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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과의 기도와 말씀으로 교제의 끈을 놓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항상 불꽃 같은 눈으로 바라보시고 있음을 오늘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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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중보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기도 안에 그를 생각하는 마음과 그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이 담기게 되고 그것은 곧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타인을 위한 기도가 나를 위한 기도가 되기도 하는 것을 꼭 이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의 위협이 극에 달했을 때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렸었습니다. 이웃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과 내가 건강하기를 원하는 것이 같은 것임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바라는만큼 나도 기도한대로 살아야겠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자기가 기도하고도 잊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기도를 꼬집는 말이기도 하고, 기도만 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도가 다 인 것도 맞고, 기도한 뒤 다시 또 염려하지 않는다는 뜻은 맞지만 기도가 시작이라는 사실도 같이 기억해야 합니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하면 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집니다. 사회 이슈를 놓고 기도하는 것도 같습니다. ‘홈리스 문제’가 마음을 무겁게 해서 기도를 한다면 그 주제를 관심있게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기억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면 나는 지도자를 어떻게 돕겠는가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대선이 교회 회중기도 속에 포함될 때가 많습니다. “국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뽑히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후보들이 이런 소망을 아는지, 안다면 자기도 이런 마음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같이 기도하는 회중의 입장에서 나는 이 기도가 후보 뿐 아니라 유권자도 그런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라고 받아들입니다. ” (왕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허락해 주시고 그가 요청한 것을 들어주셨습니다 (2절)” 라는 감사의 찬양이 매일 나의 노래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바람으로써 그 바램을 들어 주시고 이뤄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기도의 새 습관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새해에 바라는 새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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