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편: 기름 부음을 받은 이

해설:

이 시편은 왕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제왕시편’이라 불립니다. 이 왕은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지상의 왕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개역개정에 사용된 2인칭 대명사 “너”는 왕을 가리킵니다. 새번역은 그것을 “임금님”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왕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백성의 운명이 그의 선택과 결정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면 응당 왕을 위해 기도해야 옳습니다. 왕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은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권력이 잠시 동안 ‘맡겨진 것’임을 기억하고 ‘맡겨주신 분’의 뜻을 분별 하며 통치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소에서 임금님을 도우시고, 시온에서 임금님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2절)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신실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소원을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3-4절). 그럴 때에만 백성은 왕의 성취와 승리를 기뻐할 수 있습니다(5절).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의 경험을 빌어 자신이 이루었던 모든 성취와 승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이 왕인 줄 알았는데, 진짜 왕은 따로 계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상의 왕은 천상의 왕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6절). 그 진실을 알지 못하는 권력자들은 “전차를 자랑하고” “기마를 자랑하지만”(7절), 그 진실을 아는 왕은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7절). 결국 마지막까지 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8절). 

이 고백에 근거하여 다윗은 기도합니다. “우리의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9절). 이 기도를 뒤집으면 “우리의 왕들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천상의 왕이신 주님을 의지하고 그 뜻을 따르게 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묵상:

이 기도는 크고 작은 권력을 맡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보입니다. 한 나라의 대권을 맡은 사람도, 한 조직의 책임을 맡은 사람도, 하나님께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았다는 사실에서는 동일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듯, 한 조직의 책임을 맡은 사람도 자신의 실력으로 올라온 자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자리는 하나님께서 믿고 맡겨 주신 자리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을 그 자리에 앉히신 뜻이 무엇인지를 늘 분별 하며 그분의 뜻을 찾고 따라야 합니다. 책임 맡은 사람이 가장 노력할 일은 늘 성소에 머무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러 살며 자신에게 책임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하고 또한 책임 맡은 사람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편은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6절, “기름 부으신 왕”)를 생각하게 합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께서는 고난 중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드리셨습니다(1절). 그분은 당신의 생명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셨고, 하나님은 그 번제를 기뻐 받으셨습니다(3절).  그로 인해 하나님은 메시아의 모든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5절). 그분은 장차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하고도 완전한 승리를 얻으실 것입니다(9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온 우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영원한 왕에게 속해 있습니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요 18:36)라고 답하신 것처럼, 우리의 시민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빌 3:20). 따라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잠시 동안 권세를 맡은 이들을 존중하고 그 소임을 다하도록 협조해야 하지만(벧전 2:13-17), 궁극적인 충성은 영원한 왕이신 주님께 속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5 thoughts on “시편 20편: 기름 부음을 받은 이

  1.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찌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나님의 이름에 모든 생애를 걸고 주님만을 경배하기를 바람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를때에 응답하여 주시고 주님의 그늘 밖으로 벗어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 맡기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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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 자신을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 이웃과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위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특별히 미국과 나의 조국의 대통령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나라를 치리 하도록 간절히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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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과 미국에 있는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또한 교회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목회자와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실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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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타인을 생각하며 올리는 중보기도는 사랑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아는 사람을 놓고 기도할 때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 때는 어색하기도 하고 제대로 하는 기도가 아닌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왕을 위한 기도이니 우리 상황에선 대통령이나 지도자를 놓고 하는 기도문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원칙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구하는 것으로 데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길게 하는 기도가 더 진실한 것처럼 자리잡은 인식이 작동해 같은 뜻, 같은 소원을 다르게 표현해서 반복하기도 합니다. 중보기도라서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따지고 보면 기도란 다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이미 다 아시는 하나님이 “완벽한” 기도만 원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리포트를 제출하듯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기도하기 까지, 기도하는 동안, 기도한 다음 이 모든 것이 기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이고, 매 순간이 기도입니다. 시편의 기도문에 노래라는 제목이 많이 달려 있습니다. 기도라고 할 때와 노래라고 할 때 느낌이 다릅니다. 기도는 사람이, 그것도 신앙의 사람이 하는 의무인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 노래는 사람 뿐 아니라 새도 동물도 하는 것, 자기를 표현하는 소리라면 다 노래라고 할 수 있는 넓고 자유로운 느낌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한 기도와 노래를 들어 주신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아침입니다. 믿음의 분량이 자라고 기도의 깊이와 넓이도 자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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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매일 매일 세상의 유혹과 권세와 전쟁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나 국가의 지도자
    들이 온세상의 죄를 지신 어린양, 만 왕의 왕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곧 닥아오는 조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주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가
    선출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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