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9편: 전임 예배자의 삶

해설:

이 시편은 내용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1-6절)은 피조 세계에 대한 묵상입니다. 한 화가의 성품과 마음이 그가 그린 그림 안에 반영되는 법입니다. 그것처럼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와 위엄을 말 없이 드러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아도, 눈을 내려 작은 들꽃을 들여다 보아도, 우리는 창조자의 영광과 신비와 위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에 함몰된 바람에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눈 어두워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삽니다. 열린 마음으로 피조 세계를 관조한다면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간다”(4절)는 고백에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으로 넘어갑니다(7-11절). 하나님은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해 놓고 멀리 퇴각하여 팔짱을 끼고 지켜 보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의 형상을 닮아 창조한 인간과 소통 하면서 당신의 창조 사역을 이어 가십니다. 여기서 다윗은 “교훈”, “증거”(7절), “계명”(8절), “말씀”, “법규”(9절) 등의 여러 용어를 사용합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람들이 사용하던 모든 용어들을 망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입니다. 그 말씀은 “완전하고 참되며”(7절) “정직하고 순수하며”(8절) “맑고 견고”(9절)합니다. 그렇기에 그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충분한 안내자가 됩니다. 말씀의 맛을 맛보고 나면 그것 없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10절). 이렇듯 우리는 피조 세계를 관조함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과 위엄을 깨닫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묵상에 기초하여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12-14절).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그리고 말씀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대면하고 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죄성을 자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마치 거대한 MRI 기계 앞에 서 있는 듯,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이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감찰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순간 자신은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미쳐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12절)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죄의 손아귀에 다시는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13절)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고 나서야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때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변호 하기도 했습니다만,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고 나니 진상을 알겠습니다. 그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때에야 나는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끔찍한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13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드릴 최고의 기도를 드립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14절).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라는 번역보다는 개역개정의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번역이 더 좋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말도 하나님께 올리는 제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묵상: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계시”(revelation)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여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보여주시는 것조차도 충분히 깨닫지 못합니다. 

신학자들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구분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드러난 것이 일반계시입니다. 다윗이 1절부터 6절까지에서 고백한 것이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대한 것입닏가.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마음의 눈을 열고 보면 피조세계 안에서 창조주의 모습을 봅니다. 사진사는 사진 속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 있다는 말은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사진의 수준을 보면 사진 찍은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인지 아니면 사진 작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피조세계는 창조주가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피조세계의 아름다움과 조화와 신비는 창조주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알게 합니다.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셔서 당신의 뜻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때가 찼을 때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셔서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특별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들어낸 전통에 불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일부 광신도들의 전유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은 그분의 뜻을 보여주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품을 보여 줍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모두 보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 있음을 압니다. 예배 드릴 때 혹은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늘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압니다. 그렇기에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말까지도 하나님께 올리는 제물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전임 예배자'(full time worshipper)로 살아갑니다. 

6 thoughts on “시편 19편: 전임 예배자의 삶

  1. 식물이건 동물이건 하나의 생명체 안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각 부분의 신진대사를 생각해 보며 우주 공간에서 퍼져있는 천지만물의 자율적인 운동안에서 주님의 임재와 주관을 생각해 봅니다, 무한이 발달되어가는 IT와 산업기술로도 한 생명의 신진대사를 만들어 낼수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주님의 망씀안에 함축되어있는 생명의 소리로 저를 인도하여 주시고 그 말씀으로 내 마음의 생각을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열려있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하루로 은총내려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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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도 창조 주 하나님 앞에 서서 피조물인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형편 없는 존재 인지를 다시 한번 알게 됩니다.
    그러니 아침 마다 하나님의 거울 앞에서 내 자신을 보게 됨이 하루를 살아가는데 힘이 되고 기쁨이 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성령님!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시므로 시간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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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시편 19편 중에 다윗은 어리석은 죄들을 짓지않도록 기도합니다. 그 죄는 바로 thinking I can take over your work 이라고 영문 메세지 버전은 적어놓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것, 다르게 생각해보면 하나님 없이 내가 모든 일을 할 수있다는 교만이 어리석은 죄임을 깨닫습니다.

    또한 목사님께서 비유하셨던, 다윗이 거대한 MRI 기계 앞에 서 있는 듯한 표현은 다시 한번 나의 삶을 깊게 묵상하게 됩니다. MRI 라는 기계를 통해서 우리 몸의 아픈 곳을 잘 알아 낼 수 있듯이, 하나님의 MRI 앞에 나의 모든 죄들이 밝혀지며, 그 죄를 회개할 수 밖에 없음을,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할 수 없을 기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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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일년에 이틀 쉬는데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에 그랜드 캐년에 갔다 오자는 남편에게 운전만 오래하고, 가서는 뷰포인트 viewpoint 한 두 군데 보고는 금방 집으로 와야 하는데…피곤할 것 같으니 가지 말자고 답했습니다. 가게를 하기 전에 어느 겨울에 교회에서 주일 친교 점심을 우리 속회가 순서여서 맡아서 하고는 설겆이까지 끝내고 집에 오는데 남편이 갑자기 눈덮인 그랜드캐년을 보러 가자고 해서 그 길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눈에 덮힌 겨울 그랜드캐년은 그것대로 감동이었습니다. 눈 때문에 입구를 막아서 들어가지 못한 곳도 많았지만 그랜드캐년이 형성된 과정을 보여주는 visitor center 안의 모형물과 설명문에서 당시 가지고 있던 고민을 덜어주는 영감을 얻는 복도 얻었습니다. 콜로라도 강이 사우스림 뷰포인트 Southrim Viewpoint 밑으로 인너고지 Inner Gorge를 통과해 흐르는 장구한 세월동안 바위 사이로, 바위를 뚫고, 바위 위로 흐르면서 우리가 보는 캐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견고한 바위들 밑으로 흐르는 강이 바위를 움직이고 바꾼다는 진실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위대한 그랜드캐년을 만든 것은 보이지 않는 콜로라도 강의 조용한 힘과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강물은 계속해서 캐년을 다듬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 때의 감동을 떠올리니 남편 말대로 가볼까나…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비추어 묵상하게 되는 것은 자연과 사람의 조화입니다. 강물이나 사람이나 다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하나님이 빚으신 이 세상에서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갑니다. 평생을 도시에서 산 나는 자연을 “구경하러” 가지만 자연은 언제나 나보다 큰 스승입니다. 자연은 나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풍요로우며, 더 많이 겪었고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다스린다’는 말은 함정이고 자기기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윗은 참으로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으나 하나님이 최고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대사 ambassador 처럼 대우했습니다. 주님을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제나 무릎 꿇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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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우주 천체를 보고 항상 오묘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듣고
    주님의 사랑을 항상 감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거룩하시고 거룩하신 주님앞에 도저히 가망
    없는 죄인이 십자가를 지나 감히 나올수있는 은총에 영광을 드립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을
    조금 더 닮아가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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