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5편: 주님의 장막에 머무르는 사람

해설: 

14편에서 다윗은 “어리석은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그들의 땅”(7절)으로 돌아 오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15편에서는 “그들의 땅” 즉 “주님의 장막” 혹은 “주님의 거룩한 산”(1절)에서 머물러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한 사람들은 결국 “다른 길”로 빠져 죄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반면, “가난한 사람”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그늘 아래에 사는 사람은 그 반대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의 언행심사 모든 면에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2절부터 5절까지 나열한 열두 가지 덕행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의 차별성 중에서 몇 가지 예를 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켜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아갈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덕을 끼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에게 해가 되더라도 옳은 길을 고집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가정에서, 친구 관계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든지 옳고 바르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습니다. 사업적 거래에서도 혹은 금전 관계에서도 부정한 이득을 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현실 삶에서 자주 손해를 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아도 바르게 살려고 힘씁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할텐데 늘 자신을 살피며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습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5절)라고 선언합니다. 그가 선 자리가 “주님의 장막”이며 “주님의 거룩한 산”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묵상:

14편과 15편에는 대조적인 인간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14편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방법이 그려져 있고, 15편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방법이 그려져 있습니다. 14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15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하고, 15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14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합니다. 14편에 서 있는 사람은 15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이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위태로운 사람들은 그들입니다. 영원한 안전지대는 “전능자의 그늘”(시 91:1) 아래에 사는 것입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산다”는 말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 아래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그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말과 손발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야 하고 또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이웃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 시킵니다. 14장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을 부정하면 그 사람의 존재가 타락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가 맺은 관계들이 왜곡되고 이 세상은 생지옥으로 변화 됩니다. 지금 우리가 생지옥의 현실을 자주 경험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땅”에 머물러 살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1절)라는 질문이 “주님, 주님의 장막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이 질문에 대해 겸손히 머리 숙여 “주님, 제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기 원합니다.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 합니다. 

6 thoughts on “시편 15편: 주님의 장막에 머무르는 사람

  1.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장막에 살게되면 어리석은 삶에서 벗어나 주님의 삶으로 바뀌는 덕행들을 생각해 봅니다, 깨끗한 삶, 정의를 실천하는 삶, 진실된 삶, 이웃을 헐뜻지 않는 삶,이웃을 해를 끼치거나 모욕하지 않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거짓없는 삶, 돈에 노예가 되지않는 삶, 뇌물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길잡이가 되는 주님의 지침을 따르며 실행하는 믿음으로 남은 여생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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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의 장막에서 삶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 그러니 성령님을 내 마음에 오심을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으면 성령님께서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말씀을 떠오르게 하셨다. 그래서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셔서 지금 내가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꼭 필요한 것이 내 눈 앞에 있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것이 뇌물성 물건이라는 것을 알려주셔서 거절한 경험이 있었다. 주님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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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의 장막안에서 사는 것은 온전히 주님의 은혜로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겸손히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며, 주님의 장막에 들어갑니다. 선한 영향력과 변화가 나와 가정 그리고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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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사람이 사는 자리,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 생각합니다. 주님의 장막에 살 자를 메시지 성경은 주님의 식탁에 초대받은 자 guest list for dinner at your place 라고 표현합니다. 어떤 자격을 갖춰야 주님의 거룩한 산에 살 수 있는지 리스트가 나와 있습니다.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자격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에게 신실하고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진실은 종종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타인의 평가가 한 예입니다. 이웃이 좋게 말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좋은 사람이 아닐까 묻게 됩니다. 이웃 중에서도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평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 때 등장하는 “여론 조사”는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에 따라 질문의 방향이 정해지고, 무슨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다르게 나옵니다. 여론 조사의 대상 즉 표본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밀고 싶은” 여론을 띄우기 위해 여론 조사를 동원한다는 사뭇 냉소적인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이웃과 화목하게 사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말 것을 권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하라고 명합니다.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보는 것을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정하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보는 것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것도 기준이지만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자기가 보는 것이라도 이웃의 입장에서 볼 줄도 압니다. 더 넓게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보려고도 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과 이웃을 다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산, 이웃과 함께 할 자리가 넉넉한 장막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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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원합니다.그러나 세상의 유혹이 마음 깊은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움없이는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구원의 문을 항상 허락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웃과 더불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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