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편: 평강의 능력

해설:

이 시편에는 ‘저녁 기도’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 드릴만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렇게 정해졌을 것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고,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던 노래의 가사로 사용되었습니다.

1절은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입니다. 새번역의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보다는 개역개정의 “내 의의 하나님”이 원문에 더 가깝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의의 근원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의는 오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복음의 희미한 그림자가 보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선 자로서 자신에게는 의가 없음을 인정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실 때에만 그분 앞에 고개를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사람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다윗은 지금 “곤궁에 빠져” 있고 “막다른 길목”에 갇혀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날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손을 뻗어 자신을 구원하신다면 그것은 다만 그분의 “은혜” 때문입니다. 

2절의 첫 단어는 개역개정의 “인생들아”보다는 새번역의 “너희 높은 자들”(2절)이라고 번역해야 원문의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권세와 권력을 가진 사람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하실만한 말씀을 전합니다. 교만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광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면 결국 “헛된 일을 좋아하며 거짓 신을 섬기게”(2절) 됩니다. 3절에서 다윗은 그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말을 전합니다.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2절의 “높은 자들”과 달리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경건한 자”라는 개역개정의 번역이 더 좋습니다. 다윗은 가장 높은 권력과 권세를 가졌지만 경건한 자로서 겸손히 하나님께 의지하며 부르짖습니다. 

4절에서 다윗은 분노의 감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개역개정은 “떨며”라고 번역했는데, 분노로 인해 치를 떠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분노는 인간에게 주어진 건강한 감정입니다. 분노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다만, 그 감정이 죄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분노하여도 죄짓지 말아라”(4절)고 권고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잠시 행동을 멈춰야 합니다. 잠잠히 있어 그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늘 어느 정도의 책임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잠잠히 거하여 정직하게 따져 보면 나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올바른 제사”(새번역) 혹은 “의의 제사”(개역개정)를 드려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 행동의 문제는 예배의 문제입니다. 

6절부터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합니다(6절). 다윗은, 자신은 그들과 같지 않으며 곤란과 곤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7절의 고백은 시편에서 거듭 말하는 복이 무엇인지를 잘 요약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7절) 복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진정한 복으로 생각합니다. 그 관계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주관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잠자리에서 분노 혹은 염려로 뒤척이지 않고 곤히 잘 수 있습니다(8절).

묵상:

교만의 본질은 하나님이 아니면서 스스로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마음대로 다니고 싶어서 아버지의 차에 올라 운전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혹은 자신의 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착각하고 신의 자리에 앉아 있으려 합니다.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은 통제를 잃은 자동차처럼 사람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안겨 주고, 그 자신은 근심과 염려와 공포에 짓눌립니다. 우리의 인생을 안전하게 지켜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인데,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그 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집착이 때로 불안 장애, 수면 장애, 섭식 장애 같은 문제들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문제가 늘 불신앙과 교만에서 나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도 이런 장애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 노릇하는 영적 교만이 우리의 존재 깊은 곳에 불안의 증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알고 보면, 매일 자고 일어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눈 깜빡이는 것부터 숨 쉬는 것 그리고 앉고 일어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때로 눈에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 맞느냐?”고 의심도 합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다스리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십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고 하루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면 잠자리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고, 어떤 곤경이나 장애물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분노가 마음을 휘어잡을 때면 잠잠히 머물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을 흔들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개역개정 4절)라고 말합니다. 

3 thoughts on “시편 4편: 평강의 능력

  1. 항상 아침에 말씀으로 무장하고 잠자리에 들기전에 회개와 기도로 마치는 일상을 원 합니다.
    매일 함께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주님을 구세주로 모시고 순종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너머서서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이웃과 함께 감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말씀이 살아있는 모든 교회의 목회자
    들의 육신의 건강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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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살다보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분노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마련인데 그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멈출수있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선 분노가 일지 않도록 감정을 다스려 주시고 혹 분노가 일면 멈춰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내 기도에 응담해 주시고 내가 막다른 골목길에 있을 때 벗어날 길을 미련해 주시는 주님을 믿고 잠자기 전에 모든 것을 주님앞에 내어놓고 반성하며 주님께 맡기고 풀려진 마음으로 곤한 잠자리에 빠지기를 기도합니다, 밤도 주관하시는 주님께 내 꿈자리도 맡기며 기도에 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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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몇 주 전에 우연히 티쉬 해리슨 워렌 (Tish Harrison Warren) 이라는 성공회 사제의 책들을 알게 되어 Liturgy of the Ordinary – sacred practices in everyday life 제목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기상, 침대 정리, 이 닦기, 열쇠 찾아 헤매기, 남편과 다툼, 이메일 체크, 친구와 수다, 잠자리에 들기…등의 하루 일상을 챕터 제목으로 붙이고 사제의 눈으로 해석한 일상을 설명한 책입니다. 잠에서 깨는 일상의 첫번째 순서를 세례와 연결 시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 하늘에서 “This is my beloved Son, with whom I am well pleased son”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마가복음 1:11)”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가 워렌은 아직 아무런 사역 – 병고침도, 군중을 먹이는 일도, 나사로를 살린 일도, 하물며 마귀에게 시험받는 일도 – 도 시작하지 않은 예수님에게 내린 아버지의 선포는 예수님이 사랑받은 사람 (the Beloved) 이라는 정체성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정체성은 유아 세례와 연결이 됩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유아가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기 전부터 이미 사랑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예전입니다. 성공회와 천주교회에는 성수반 (성수를 담아둔 그릇) 을 입구에 두어 하나님의 백성임을 환기시킨다고 합니다. 작가는 잠에서 깨는 첫 순간 잠이 다 달아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은혜로 주어진 사랑받은 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저녁에 드리는 시편을 묵상하면서 굳이 아침과 세례의 관계가 떠오른 것은 7절에서 말하는 기쁨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복은 아침에 눈을 떠 세상을 맞이하는 복과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자리에 눕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반복을 복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데서 예배가 시작합니다. 내 행동의 문제가 예배의 문제라는 지적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들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잘 지내고, 하나님께서 내 삶을 잘 꿰매어 맞춰 주셨음을 감사하며 “I’m ready for sound sleep, for you have put my life back together (Message, Psalms 4:8)” 자리에 들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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