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5장: 절망 속에서 기도하기

해설:

앞의 네 장은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을 순서대로 첫 글자로 삼아 쓴 것인데, 마지막 장에서는 그 형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앞 네 장에서 정형화 된 틀을 사용하여 고난을 노래하다가 마지막 장에 와서 그 틀을 버림으로써 시인은 유다 백성이 당한 혼돈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유다 백성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에게 점령 당하여 자신의 땅에서 유배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여인들은 이방인들에게 능욕 당하고 젊은이들은 자기 땅에서 노예처럼 살아갑니다. 노인들은 성문에서 사라졌고, 지도자들은 살해 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죄 때문에 받은 심판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마음 아프고, 그래서 우울합니다(1-18절). 

유다 백성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한 다음, 시인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주 하나님은 영원 하시며 그분의 다스림은 온 세상에 미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인은, 이제는 그만 당신의 백성을 생각해 주시고 회복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 하신다면 그들은 주님께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다시금 예전의 평화와 안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19-21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22절)라고 호소합니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이 난해하기 때문에 성서학자들 사이에도 번역과 해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떻게 번역하든, 시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아주 버림 받은 것 같은 절망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애가 전체를 마무리 짓습니다.

묵상:

5장의 마지막 절은 예수님의 ‘가상칠언'(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 중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치셨습니다. 얼른 보면,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버림 받은 절망감을 토로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시편 22편의 첫 구절입니다. 평소에 시편의 기도들을 암송 하며 묵상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면서 이 기도를 떠올리신 것입니다. 이 기도에서 기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절규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미래를 내다봅니다.

예레미야 애가 5장 22절도 역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회의하고 의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놓고 싶을 정도로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마지막 말이 모호한 표현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인은 이 표현을 통해 “하나님, 이대로 우리를 내버려 두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조차 버릴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속히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묵상을 접하는 분들 중에 혹시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이 계시다면, 시인의 기도를 통해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버려진 것 같고 잊혀진 것 같은 상황에서 믿음의 끈을 놓고 싶다 해도 끝까지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편 22편의 기도자처럼 믿음으로 희망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 애가 5장: 절망 속에서 기도하기

  1. 침묵으로 계시는 주님보다, 신실 하시고,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에대한 믿음을 꼭 붙잡고
    살기를 원합니다. 현재의 고민이 실망보다 소망으로 바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랫동안의 기도가 이미 응답 되었다는 믿음으로 이웃과 함께 기쁨으로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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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신들의 잘 못에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절규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그들을 버리지않고 궁극에는 어여삐 여기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해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끝내는 받아주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어려움속에서 희망을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그들의 믿음을 통해 한발짝 돋는 내 믿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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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저자의 고백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아침입니다. 아픔과 상처 그리고 불안함과 두려움은 영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헤, 그리고 긍휼만이 영원함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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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 텔리비전엔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이름난 식당, 오래된 음식점을 소개하면서 대표적인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 식당만의 “비밀” 레시피라든가, 그집 요리사만이 사용하는 비밀 재료를 공개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포맷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지라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나오는 상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제작진 측에서도 이런 한계를 알기에 식당이나 요리를 소개하면서 반드시 집어 넣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휴먼 스토리입니다. 그 메뉴나 비밀 재료를 개발하게 된 배경이나, “대박” 식당이 되기 까지 겪은 어려움이 꼭 나옵니다. 성공은 거저 오지 않는다는 교훈이 공통 재료입니다. 반 고호는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화가입니다. 생전에 단 한 점만 팔렸다는 그의 고단한 삶도 작품의 일부가 되어 그림에 녹아 있습니다. 그의 휴먼 스토리를 몰라도, 혹은 알아도 그의 그림을 마주하면 강렬한 생명력이 전해집니다. 절망과 슬픔은 예술에 필수적인 재료인가? 예술의 비밀 레시피는 고통과 고독인가? 하는 질문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고호가 살아 있을 때 인기가 있어서 그리는대로 팔렸다든가, 부유한 미술 애호가의 후원을 받아 마음껏 작품 활동을 했다든가 하는 가정을 하면 어딘지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상업 예술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구분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예레미야는 백성이 당한 일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제는 가고 없는 조상들의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7절) 자기들을 살펴 달라고 기도합니다. 마음이 병들었고 눈이 어두워졌다고 (17절) 아룁니다. 우리도 때로 눈물의 기도를 올립니다. 주님은 멀리 계셔서 나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영혼의 밤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밤이 너무 길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버틸 수 있기를, 계속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아주 버리시지 않았음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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