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4장: 영적 지도자의 책임

해설:

3장에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자비에 대한 희망을 고백했던 시인은 4장에서 다시금 처절한 절망을 토로합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이 당한 재앙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1-5절). 그는 예루살렘이 소돔 성과 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처럼 유다 백성의 죄가 컸다는 뜻이고, 예루살렘 성이 그만큼 잔혹하게 심판을 받았다는 뜻입니다(6절).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이 그렇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어머니들이 제 자식을 삶아 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7-12절). 그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악하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의 혐오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13-16절).

이어서 시인은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여 유다 백성 전체를 대변하여 말합니다. 유다 백성은 바빌로니아로부터 그들을 구해 줄 나라를 찾았으나 아무도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17-19절). 뭇 민족 가운데서 그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믿고 의지했던 왕도 함정에 빠져 버렸습니다(20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에돔을 저주합니다(21-22절).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 한 에돔도 머지 않아 같은 운명을 만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시인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당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책임이 영적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고발합니다. “예언자들의 죄”(13절)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백성을 속인 죄를 말합니다. “제사장들의 악한 일”은 그들의 타락한 생활과 백성의 삶에 대한 무관심을 말합니다. 백성을 깨우고 거룩한 삶으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 안에서 의로운 사람들이 살해 되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영적으로 타락하면 의로운 사람들이 희생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눈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죄악을 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 성이 소돔 성과 같이 되어 버린 이유입니다.

이렇게 보면,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 천만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진작이 그것을 알았다면 이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책임이 너무나 크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받아야 할 보응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저를 “속이셔서”(렘 20:7) 이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은 끝까지 이 자리에 서 있기를 원하십니다. 예레미야처럼 때로 불평하고 때로 항의하더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라 하십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세워진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비켜라, 더럽다!”(15절)라고 말하지 않게 되기를! 영적 무지와 몽매를 깨우고 생명의 길로 세상을 인도하는 책임을 다하도록!

3 thoughts on “예레미야 애가 4장: 영적 지도자의 책임

  1. 죽기에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백성들 뿐만아니라, 지도자들도 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주님을 등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것 처럼
    10명의 의인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 가 불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시온은 포로에서 해방되고 에돔의 멸망알리는 주님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사는 은혜의 기쁜 소식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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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의 비리와 부패로 말미암아 유다가 격어야 했던 비극을 보며 그들의 타락도 타락이지만 백성 스스로 물들어 있기에 받아야했던 처벌을 생각해 봅니다, 동시에 무슨 잘못된 일이 터지면 우선 자신을 책망하기에 앞서 주위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생각해 봅니다.
    남 탓하기전에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볼수있는 지혜를 구하며 성직자를 위한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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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도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생각해 봅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경고를 하고 또 하되 들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라면 지도자는 책임에서 풀려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은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목표로 삼지만 가끔씩 최악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도자라고 다 알거나, 다 할 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도자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다른 이름은 책임자입니다. 구약에서 보는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 백성을 일깨우고 인도하라는 책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백성이 말을 듣고 따르면 좋은데 아니면 곤란합니다. 니느웨 성의 백성처럼 사흘길을 가야 다 둘러볼 수 있는 성에서 하룻길만 갔을 뿐인데도 얼른 회개하는 백성과 왕이라면 그곳으로 보내진 요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결과였습니다. 물론 요나는 그 일로 인해 기뻐하기는 커녕 도리어 화를 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있는 지도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책임의 무게를 충분히 알았습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자기의 신세 뿐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백성 (물을 마시지 않는 말)으로 인해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와 투표로 선택된 사회의 공적 지도자는 책임의 무게와 한계가 서로 다를 것입니다.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느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에게 ‘무한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해 보이지만, 하나님과 나는 모든 면에서 무한한 관계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책임의 짐을 남에게 지우고 또 내 어깨에도 지면서 살아갑니다. 지도자이기도 하고 백성이기도 합니다. 책임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책임’이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읽으신 분입니다. 잘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무한사랑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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