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52장: 성취된 예언, 성취될 예언

해설:

예레미야서를 편집한 사람은 열왕기하 24장 18절부터 25장 7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예루살렘 함락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어 결론으로 삼습니다. 

주전 597년에 유다는 바빌로니아에게 주권을 잃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 왕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가고 그 대신 시드기야를 꼭둑각시 왕으로 세웁니다(1-3절). 봉신 국가의 왕으로서 바빌로니아를 섬기던 시드기야는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느부갓네살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려 합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18개월 동안 성을 에워싸고 성을 공격하기 위해 토성을 쌓아 올립니다(4-6절). 결국 성벽은 뚤렸고, 왕은 야반도주를 하다가 여리고 평원에서 사로잡힙니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자녀들을 처형하고 그의 두 눈을 뺀 다음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7-11절). 시드기야는 바빌론의 감옥에서 생을 마칩니다. 

바빌론으로 돌아간 느부갓네살은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을 보내어 예루살렘 궁전과 성전을 약탈하고 파괴합니다. 예루살렘 성벽도 무너뜨립니다. 그는 극빈자들만을 남겨 두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갑니다(12-16절). 그들은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기구와 도구들을 약탈해 갑니다(17-23절). 그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고관들과 귀족들을 모두 체포하여 포로로 잡아갑니다(24절의 ‘스라야’는 51장 59절에 나오는 ‘스라야’와 다른 사람입니다). 그가 세 차례에 걸쳐 끌고 간 포로는 4천 6백명이었습니다(24-30절). 

느부갓네살의 첫 번째 원정 때에 사로잡혀 갔던 여호야긴은 37년 동안 바빌론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가 포로로 끌려 온 것이 18세 때의 일이었으니, 55세까지 감옥에서 산 것입니다. 그 사이에 느부갓네살 왕은 세상을 떠나고 에윌므로닥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감옥에 갇혀 있던 여호야긴을 석방하고 죽을 때까지 포로로 잡혀 온 왕들 중 가장 높이 예우해 줍니다(31-34절).

묵상:

편집자가 예루살렘 멸망 이야기를 예레미야서의 결론으로 삼은 이유는 그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당시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비호감’의 인물이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커녕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예언을 하고 다녔으니, 그의 예언을 반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예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습니다. 아니, 사실이라 해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희망을 말하는 예언자들의 말이 진실이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레미야가 전한 그대로 유다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예레미야서를 읽은 사람들은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유다의 멸망에 대한 그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예언 중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바빌로니아가 유다처럼 멸망할 것이고 바빌론 도성이 예루살렘 성처럼 폐허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자신들이 자유인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 희망이 이국 땅에서 포로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지켜 주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포로로 살던 유대인들이 예언에 대해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압니다. 바빌로니아는 멸망했고, 다른 제국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포로로 살던 유다 백성은 조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예언도 5백 년이 조금 지나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메시아를 통해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것이, 우리가 때로 포로된 유다 백성들이 겪는 것과 같은 고난을 겪는다 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힘입니다.  

3 thoughts on “예레미야서 52장: 성취된 예언, 성취될 예언

  1. 세상의 가치관, 허망한 부귀영화에 포로로 살아 왔습니다, 그것을 통해 많은 상처와 핍박을
    받고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포로들을 자유 하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로 인도 하시겠다는 소망
    으로 들립니다. 도저히 가망이 없는 저희들을 다시불러 모으시는 주님의 사랑, 십자가 를
    이웃과함께 세상에 전하는 감사주간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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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 허구보다 더 거짓말 같은 현실이 일어나는게 우리 인생입니다. 시드기야의 말년에 관한 기록을 읽으면 복잡한 마음이 됩니다. 3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두 눈이 뽑힌 상태에서 잔영처럼 남아 있는 이미지는 어린 두 아들이 칼에 스러지는 모습입니다. 나라는 완전히 망하고 백성은 몇 번에 걸쳐 바빌로니아로 붙들려 옵니다. 성전이 불타 없어지고 성전에 있던 금으로 된 기물들은 모조리 털렸습니다. 놋쇠로 만든 각종 성전 물품들이 그대로 혹은 녹여져서 바빌로니아로 실려 갑니다. 나라와 백성을 잃고 눈 먼 상태로 구차한 목숨을 유지하고 있던 중에 느부갓네살 왕은 죽고 그의 아들이 새 왕이 됩니다. 새 왕은 시드기야에게 친절을 베풉니다. 감옥에서 풀어주고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합니다. 대우가 좋아지고 새 왕의 성정이 부드럽다 해도 시드기야는 여전히 포로입니다. 예전에 이 본문을 읽을 땐 시드기야의 말년이 “좋아진”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이 좋아질 것의 예고 내지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날이 임박한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오늘 아침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단식투쟁” 같은 것도 할 수 없는 슬픈 한 개인을 봅니다. 감옥에 갇힌 그는 이집트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라고 하던 예언자의 예언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값을 열거하는 예레미야가 보기 싫었을 것입니다. 바빌로니아도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마저도 귓등으로 흘렸을 지 모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적은 구약의 역사책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우리의 책임을 같이 환기 시킵니다. 하나님의 빅 픽쳐는 우리의 내면의 눈에만 보입니다. 또렷하게 다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은 왕과 백성은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보고 느꼈습니다. 매일 하는 묵상 속에서 듣고 보는 주님도 내 믿음 만큼입니다. 성서 속의 하나님과 현실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면서 또 다른 분입니다. 선물처럼 배달된 오늘, 모든 지각에 뛰어난 주님의 평강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로 열고 감사로 닫는 매일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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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족 모두가 코로나에 확진이 되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번주에 있었던 동생 결혼식에서 전염이 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자이슈로 인해서 동생 결혼식에 참여를 못했고,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마음이 많이 힘드네요. 중보 기도를 부탁드리며, 동시에 새하늘과 새 땅의 약속과 희망을 가지고, 고난과 같은 이 시간을 잘 이겨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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