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50편: 영원한 권력은 없다

해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바빌로니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주십니다. 이 예언이 주어진 때는 늦어도 시드기야 왕 제 4년(주전 593년) 이전입니다(51:59). 느부갓네살이 무섭게 제국을 확장해 가고 있을 때입니다. 바빌로니아 왕국이 영원할 것처럼 보일 때, 주님께서는 그 왕국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절). 

때가 되면 바빌로니아는 그가 멸망시킨 나라들처럼 북쪽에서 밀려 오는 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바빌론 도성은 폐허가 될 것이며 야수떼의 소굴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세상은 두려워 떨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은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절대로 파기하지 않을 영원한 언약”(5절)을 맺으실 것입니다. 

이 예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절대 패자로 군림했던 신바빌로니아 왕국은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에 급속하게 약화됩니다. 반면, 바빌로니아와 상대도 되지 않던 페르시아 왕국은 고레스 왕에 의해 새로운 패자로 급격하게 부상합니다. 고레스 왕은 메디아 왕국과 리디아 왕국을 차례로 점령한 후 바빌론 도성으로 향합니다. 주전 539년에 바빌론 도성은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 당합니다. 그는 30년 동안 페르시아 제국을 확장시켰고 그의 아들 캄피베스 2세 때에는 페르시아는 역사 상 가장 광대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묵상:

한 시대를 호령 했던 한 독재자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생각하며 이 말씀을 읽습니다. 그는 자신의 탐욕을 애국심으로 포장하여 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권력을 잡은 후, 공포 정치를 통해 전국민을 보이지 않는 사슬로 결박해 놓았었습니다. 그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았는데, 그는 모든 책임을 회피했고 희생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부정하게 축적한 1조에 가까운 돈을 어디에 숨겨 놓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렇다면 인생은 너무나 부조리 하고 불공정합니다. 이런 사례를 생각하면, 하나님은 계셔야만 하고, 마지막 심판은 있어야만 합니다. “결국 모두가 죽는다”는 정의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전능자처럼 세상을 휘젖고 다니며 모두를 두려워 떨게 할 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가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고 바빌로니아 제국은 머지 않아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역사를 다스리시고 바로 잡으시는 분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다면 그 권력의 궁극적인 소유자를 생각해야 하고, 권세 아래에 있다면 그 권세를 주신 영원하신 권세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는 결국 영원한 통치자 앞에 서야 하고,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은 영원한 주권자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3 thoughts on “예레미야서 50편: 영원한 권력은 없다

  1.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난 역사의 독재자들을 연상시키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회상하며 영원한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주권을 행사하심을 깨닭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독재기간이 입는 일반 백성의 피해를 생각해 보며 우리 자신들도 주님의 길 밖어서 서성였음을 시인하게 됩니다, 큰 역사의 수례바귀속에 내 자신이 누구임을 터득하고 주님 앞에 늘 겸손해 지기를 다짐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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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의 부귀영화에 포로가된 친족 들이 주님 품 안에 돌아오기를 간구합니다. 세상이 추구
    하는 한시적, 헛된 온갖 우상을 버리고 구원자 만군의 주님의 통치하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지난날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실 뿐만이 아니라 기억도 하지않으시겠다는 사랑의 언약을
    꼭 붙잡고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영생과 천국을 기리며 이웃과함께 흩어졌던 모든 백성을
    모으시는 주님을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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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국과 소련이 팽팽하게 맞서던 냉전시대가 끝나자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유럽이 연합 공동체로 재편성되고 남미와 아프리카, 중동과 아시아 곳곳에서도 정치적인 변화가 계속 일어났습니다. 전세계가 생존과 발전의 명제를 끌어안고 불안과 싸우는 사이에 공산주의 깃발 아래에서 중국은 거대한 기계처럼 쉬지않고 돌아갔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 라고 부르는 미국 주도적인 세계 평화가 계속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갈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국가간에 얽히고 설킨 경제 의존도와 무서운 기세로 확장하는 중국의 군사력을 보면 팍스 아메리카는 팍스 로마나, 팍스 몽골리카, 팍스 브리태니카처럼 사전 속에 박제될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빌로니아가 힘의 정상에 있을 때 하나님은 멸망의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진실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질고 추하게 산 인생을 보며 살아 있는 동안 나누는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사람다움의 최소단위는 무엇일까요. 학식이나 경제력이 아니라는 것은 매일 신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종교나 철학, 예술이나 문화일까요? ‘내 것이 최고’라는 주장이 너무 강해서 사람답지 않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진정,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인생, 90년을 살고도 치욕스런 이름 석 자를 남긴 종말 앞에서 가장 나중까지 지니는 나의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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