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49장: 역사의 지평 너머

해설:

49장에는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된 여러 나라들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암몬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1-6절). 암몬은 모압의 북쪽에 있던 나라입니다. 랍바(2절)는 암몬의 수도로서 거대한 돌산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암몬은 거대한 산지와 비옥한 골짜기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폐허가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주님은 때가 되면 포로로 잡혀간 암몬 사람들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이어서 에돔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나옵니다(7-22절). 에돔은 모압의 남쪽에 위치한 나라로서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에돔 사람들은 유다가 느부갓네살에게 멸망 당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에돔 역시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페트라의 동굴 속으로 피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조차도 안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마스쿠스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주님은 그 도성이 한 때 당신의 기쁨이었다고 말씀하면서, 그 도성도 결국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23-27절). 게달과 하솔은 광야에서 이동하며 살아가던 유목 민족이었는데, 이들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질 것입니다(28-33절). 엘람은 바빌로니아 남동쪽에 위치한 민족입니다. 엘람의 군인들은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들도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주님은 엘람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34-39절).

묵상:

주전 605년부터 562년까지 40년 넘게 신바빌로니아를 통치한 느부갓네살(정확하게는 ‘느부갓네살 2세’)은 역사 상 가장 강력한 군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지중해 지역에 흩어져 있던 나라들을 모두 정복했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져 있던 유다의 예루살렘, 암몬의 랍바, 에돔의 보스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등이 그의 군대에 의해 폐허가 되었습니다. 수 많은 정복 전쟁으로 거대한 제국을 이룬 그는 황후인 아미티스를 위해 ‘공중정원’을 건설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주변 나라들을 정복한 것은 그의 야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수 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그 모든 일들이 당신의 섭리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느부갓네살을 “나의 종”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따라 잔인한 정복 전쟁을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악행을 당신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된 나라들에 대해 당신이 직접 심판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을 따라 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 대로 삽니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는 사람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고차 방정식으로 인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수렴합니다. 그렇게 믿기에 우리는 역사의 지평 너머를 바라보며 소망을 찾습니다. 주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다시리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49장: 역사의 지평 너머

  1. 주변 나라들을 차래 차래 정복하는 느브갓네살 왕의 야심차고 잔인한 행적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다는 놀라운 말씀을 읽으며 우주 안에 있는 세상 만물이 주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수긍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변천하는 모든 세상사가 주님의 계획하에 이루어지고있다니 놀라움과 함께 주님께 경의를 드립니다.
    아주 작은 모든 일들조차도 주님 안에서 이루어 짐을 믿고 대소사에 마음 뫃아 감사하며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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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백성만 받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있으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어떠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뿐입니다.
    마치 X 곱하기 0 = 0 이라는 수학공식과 마찬가지 처럼 말이죠. 인간의 어떠한 것을 X에 대입을 해도 결국 숫자 0을 곱하면 답은 0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치 그 수학공식의 기호와 뒤의 숫자를 관리하는 분이라고 할까요? 우리의 노력이나 최선도 분명히 공식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앞자리 숫자). 기호와 뒤의 숫자에 따라서 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스림에 대한 묵상을 하다보니 수학공식까지 나왔네요.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오늘도 겸손히 주님 뜻대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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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 시대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을 사용하신 것처럼 이런 일들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묵상하는게 꼭 쉬운 것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론 그 ‘결론’이 맞지만, 사건으로 인한 아픔과 시련이 계속되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광주 항쟁이나 세월호, 미국에선 여러 차별 문제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원인과 책임이 되는 사람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광주 항쟁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향한 의식과 의지를 보여 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광주의 5월 없이 한국사를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일어난 일’이어도 역사적인 평가는 필요합니다. 구한말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조선의 심판과 운명을 이끄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으니 그것으로 끝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 그 안에 담긴 진실이 내게 양식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만큼 나의 의지도 들어가야 합니다. 바빌로니아의 정복 전쟁에 희생된 나라들은 내부에 이미 멸망의 징조를 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군사력에 의지한교만, 부와 향락에 마비된 어리석음, 정의와 공평을 우습게 여긴 죄, 곳곳으로 스며든 타락…하나님의 통치를 무시하는 왕조나 나라는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이런 저런 시사평을 하듯 우리도 우리의 삶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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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비록 억울하고 힘든 사건에 쳐 해 있을때에라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감수하고
    기쁘고 흥겨운 상황에 있을 때에라도 주님의 숨김을 깨닫고 감사와 찬양을 들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현실만 보고사는 어리석은자가 되지말고 곧 있을 영생과 천국잔치를 미리 땡겨
    지금 맛보며 모든 족속을 초청하는 천국잔치의 초청장,즉 십자가를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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