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48장: 모압의 교만

해설:

주님께서는 요단 강 동편에 자리잡고 있던 모압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주십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후에 그의 딸들을 통하여 얻은 자녀들의 후손입니다. 요단 강을 경계로 이웃한 이스라엘과 모압은 자주 갈등을 겪기도 했고 가끔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다윗의 증조 할머니인 룻이 모압 여인이었고 그의 이야기가 성경 안에 포함된 것이 두 민족 사이의 애증을 보여 줍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압은 열강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전쟁에 자주 연루되지 않았습니다(11절). 그로 인해 모압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모압의 영화”(2절)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에 의해 모압의 영화는 잿더미가 될 것입니다. 주변 민족들은 모압이 멸망 당하는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모압이 멸망 당한 가장 큰 이유는 “자만”(26절)과 “교만”(29-30절)입니다. 

이 예언대로 모압은 주전 582년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멸망 당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예언 끝에 모압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47절).

묵상:

모압이 멸망 당한 이유는 평화와 번영에 안주하여 자만과 교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찌끼가 곱게 가라앉은 맑은 포도주”(11절)에 비유하십니다. 찌꺼기를 거르지 않은 포도주를 잔에 담아 오래 두면 찌꺼기는 밑에 가라앉고 포도주는 맑게 보입니다. 겉으로는 깨끗하게 걸러낸 포도주처럼 보이지만 실은 찌꺼기가 아래에 가라앉은 것입니다. 모압은 자신들이 맑은 포도주인 것처럼 자만하고 자랑하고 우쭐했습니다. 그 교만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죄의 찌꺼기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포도주 잔을 흔들어 쏟아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야만 아래에 가라앉은 찌꺼기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모압처럼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평안과 번영이 지속되는 것이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로 인해 안주하고 자만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인 양 생각하여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평안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자신이 얼마나 죄에 연약한 존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풍파가 복이 됩니다. 포도주 잔이 흔들려 가라앉은 찌꺼기들이 드러나는 것처럼, 풍파는 우리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회개하고 각성하게 됩니다. 겸손해지고 낮아집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잠 16:18)고 했습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48장: 모압의 교만

  1. 지역적으로 사해와 아르논 강으로 방어가 잘 되는 모압민족들이 스스로 안주하며 빠져든 오만과 자만은 우리 안에 늘 꽈리를 틀고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고 나오는 자만과 교만과 비교가 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되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지만과 교만을 직시하는 지헤를 주시고 예수님의 겸손함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모신에 빠진 모압같이 물질에 빠지는 일이 없게 스스로를 점검하며 겸허한 삶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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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상의 풍요와 평강이 모르는 사이에 주님과 제 자신 사이에 끼여들고 있습니다.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헛된 세상의 부귀영화를 우상으로 따러가고 있는 초라한 인생입니다.
    자만과 교만한 마음으로 성도들을 지적하고 심판했습니다. 저로 인해 그럴때마다 주님께서
    탄식 하시면서도 십자가의 구원을 허락하신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인생에 소망을 주시는 주님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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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내 삶이 찌꺼기를 거르지 않은 포도주와 같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평안과 번영의 삶이 목적이 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구하며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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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추수감사 절기가 오면 일년이 다 가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12월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감사절 예배를 드렸고 다음 주는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어느새 일년을 살았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평안하게 살았으며” 포로로 끌려간 적이 없는 모압 (11절) 백성의 삶은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삶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지금은 ‘중매’라는 말 자체가 거리감 있게 들리지만 예전에 혼기가 된 자녀의 배우자를 구할 때 ‘양친 부모 밑에서 고생 모르고 반듯하게 자랐으며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성격이 온화한’ 처녀 총각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본인보다 부모의 평판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의 결혼 생활과 경제력이 순탄해야 한다는 기준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집안에서 큰 자녀들이 만나 저들도 또 잘 살게 되는 지는 모를 일입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세대와 가정의 주춧돌이 되기에 결혼 풍습은 사회의 분위기와 직결된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삼십 년 넘은 결혼을 생각해 보면 평안하고 순탄한 날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지난 한 해의 생활을 돌아보아도 편하고 쉬운 날이 더 많았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평안해서 감사하다는 데 까지만 가면 모압을 보고 배우는 것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평안해서 감사한 것은 맞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감사하다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이 내 여정에 같이 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토록 임마누엘의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 우선인데도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역설적으로 나중에야 옵니다, 인생의 때가 얼마만큼 지난 뒤에야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요한 1서의 고백이 내 고백과 찬양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 안에 거할 때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고 증거가 됩니다.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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