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44장: 예레미야의 마지막 예언

해설:

유다 백성이 이집트의 여러 지역에 정착한 후,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립니다(1절). 먼저 주님은 본토 유다 땅이 폐허가 된 이유는 그들의 고집스러운 우상숭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2-6절). 그것을 상기시킨 이유는 이집트에 피신 온 유대인들이 그곳에서도 우상숭배를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다 땅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 했으면서도 이집트의 신들을 숭배했습니다(7-10절). 주님은 그들의 악행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그들은 이집트 땅에서 멸절될 것입니다(11-14절). 

이 말씀을 듣고 유다 백성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전에는 주님의 말씀이면 좋든 싫든 순종 하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놓고 저항합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풍요로왔는데 우상숭배를 멈추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우상숭배를 계속 하겠다고 말합니다(15-19절). 그러자 예레미야는, 그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우상을 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20-23절). 

그들이 이렇게 나오자 주님은 유다 백성에게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반역을 그대로 두고 보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 하라고 하십니다(24-28절). 이집트 왕 바로호브라가 “그의 목숨을노리고 있는 원수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면 주님의 심판이 임한 줄 알라고 하십니다(29-30절). 이 예언대로 바로호브라는 주전 570년에 그의 신하 아마시스에게 암살 당합니다. 아마시스는 느부갓네살에게 반기를 들고 대적했다가 결국 바빌로니아에 의해 패했고, 유다 백성은 이 와중에 멸절되는 운명을 겪습니다. 

묵상:

시기적으로 본다면, 이것이 예레미야가 전한 마지막 예언입니다. 그 이후에 예레미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바빌로니아가 이집트를 침략 했을 때 다른 유다 백성과 함께 죽음을 당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43장에서 보았듯이, 예레미야가 이집트로 내려간 이유도 마지막까지 동족과 운명을 함께 하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끝까지 그곳에서 동족과 함께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아 나선 때로부터 그의 삶은 미움, 배척, 모함, 조롱, 살해위협, 구금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동족과 함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점술가들은 닥쳐 올 재앙을 미리 알려 주고 그것을 피할 방도를 제시합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재앙을 당할 때 혼자라도 살아남는 길을 알려 줍니다. 반면, 예언자들은 공동체에게 닥쳐 올 재앙을 미리 알려주고 그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삶을 고치라고 요구합니다. 혼자만 살아남은 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살아남을 길을 제시합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멸망의 길을 선택하면 예언자는 재앙을 향해 가는 공동체와 함께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합니다. 비록 그 운명이 비참한 죽음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피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44장: 예레미야의 마지막 예언

  1. 예레미야를 통해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주님의 말씀을 아랑곳하지않고 대놓고 우상 숭배하는 상과 하 이집트에 피난 나온 유다사람들의 고집을 보며 하나님이 어디에 있냐?라고 하던 내 자신을 돌이켜봅니다, 너무 잘 나갈 때나 아니면 너무 힘든 일을 당할 때 주님께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원망하며 대들거나 아니면 주님을 부정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임을 고백합니다, 주님한테서 멀리 떨어저 나갔다가도 작은 아들같이 자성하고 회개하며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믿음을 주시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생하는 은혜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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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난 주에 애플 스토어를 두 번 찾아가 컴퓨터를 고쳤습니다. 프로그램 업데이트가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맥북을 새로 사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시키는대로 업데이트를 하고 나니 예전처럼 쓸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그래도 묵상 글을 올리면 무난히 올라가는 날이 있고, 이미 올렸다며 리젝트 되는 날도 있습니다. 자주 리젝트됩니다. 어떻게 하면 고쳐지는 문제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의 병적인 고집을 봅니다. 죄책감마저 없는 완악함입니다. 여러 번 돌아설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칼에 죽거나 굶어서 죽는 비참한 말로를 예언해 주어도 도리어 더 크게 반항합니다. ‘하늘 여신’을 섬기겠노라고 대답합니다. 종교를 바꾸겠다는 선언 이상으로 들립니다. 하나님과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입니다. 인간의 내면 속엔 뿌리 깊은 반항과 고집이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칼이라면 칼날이 양쪽으로 서 있는 칼일 것입니다. 자신을 베지 않는 법부터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부릴 수 없는 칼일 것입니다. 오늘도 크고 작은 싸움, 크고 작은 결정을 합니다. 위기나 어려움 (adversity)이 찾아온 뒤엔 결과 (consequence) 가 일어나는데 그 결과가 어떤 결과인지는 중간에 믿음 (belief)을 거치면서 결정된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분노를 조절하는 심리치료 때 쓰는 도식으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분노로 반능하는 이유는 잘못된 믿음 (인지 또는 확신) 때문이라 이 부분을 고치면 분노가 아닌 긍정적인 반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이치입니다. 분노하는 반응 만이 아니라 불순종과 반항으로 맞서는 우리의 태도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그 이유와 나중에 일어날 결과까지 다 알려 주었습니다. 결과가 일어날 때까지 가져야 하는 믿음까지도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 그분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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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사람의 본성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 가서도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 뿐만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도 이러한 패턴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회개의 영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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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선 허락하신 공동체(가족, 교회,국가)가 세상에 있지나 않은지 항상 점검 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순간적이고, 헛된 부귀영화와 쾌락에 한눈 팔지말고, 조금 힘들더라도 오직 창조주,
    사랑의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허락하신 공동체가 딴길로 가지않도록
    이웃과함께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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