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42장: 겉마음과 속마음

해설:

이집트로 망명하는 길에 베들레헴 근처에서 잠시 머물러 있는 동안 요하난과 모든 유다 백성이 예레미야를 불러와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뜻을 물어 달라고 청합니다(1-3절). 예레미야의 예언이 모두 성취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뜻을 여쭙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겠다고 답했고(4절), 유다 백성은 좋든 싫든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서약합니다(5-6절). 

열흘 후에 예레미야는 백성 앞에 다시 나타나 이집트로 망명하지 말고 유다 땅에 그대로 머물러 살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7-8절). 그들은 그달리야가 살해 당한 일로 인해 바빌로니아를 두려워 하고 있는데, 주님은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그 땅에 머물러 살면 주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회복시켜 주겠다고 하십니다(9-12절). 

유다 백성은 좋든 싫든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대로 하겠다고 예레미야에게 약속했으나 이집트로 가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이집트로 가도 좋다는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은 이집트로 망명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13-14절). 주님께서는 이집트로 망명하는 것이 사는 길이 아니라 망하는 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십니다(15-18절). 주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예레미야도 그들에게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은 곧 망하는 길이라고 경고합니다(19-22절).

묵상:

주님을 말씀을 대하는 유다 백성의 태도는 우리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게 해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했지만 실은 자신들의 뜻을 하나님이 승인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좋든 싫든 주님의 뜻대로 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이 원치 않는 말씀을 하시자 등을 돌려 버렸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이집트로 망명하는 것이 더 유리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예언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 했으면서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예언이 주어지자 외면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지, 하나님의 통치를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속마음은 주님께서 내 뜻을 알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님이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고, 내가 계획한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고 찬송 하면서 실은 “내 뜻대로 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실은 자신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을 종으로 부리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무리 명백해 보여도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등을 돌립니다. 그것이 복을 밀어내고 화를 부르는 일임을 알지 못합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42장: 겉마음과 속마음

  1. 남은 유다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우선 내 자신을 살펴보고 이중적인 생각과 행동을 반성합니다, 주님 주님하면서 마치 주님의 뜻을 따르고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기도하면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 내 자신에 집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우선 마음을 비우고 그 빈 공간에 주님의 가르침으로 채워가는 의지를 간구합니다, 오늘 하루의 언행이 주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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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맞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고백하지만, 내 속마음과 삶은 나의 뜻과 계획대로 하려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의견만 들으려할 뿐, 정작 나의 계획으로 내 삶을 인도하는 것을 회개합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가 살아가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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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찬송을 부르고, 하루 만이라도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고
    아침에 결심하지만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사는 비참한 인생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수없습니다. 이웃과 함께 구원의 십자가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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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매일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더 알고 더 사랑하기를 원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배우고 싶어서 입니다. 하나님을 공부하다 보면 나와 세상도 공부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같이 움직이는 바퀴입니다. 앞 뒤 바퀴가 같이 움직여 앞으로 나갑니다. 나무 같은 생명체를 상상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나무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한편 그 뿌리에서 올라온 영양이 나무와 몸과 가지를 키우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나의 뜻, 나의 바램에 묶여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깊이가 깊어지면 언어의 갯수는 되려 작아지는 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분과 닿아 있다면 내 ‘생각’과 ‘뜻’을 표현하는 언어는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기 까지 우리는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 기도도 배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 하나님을 나누는 삶에 게을러지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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