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27장: 느부갓네살을 종으로 사용하시는 주님

해설:

시드기야 왕이 다스릴 때의 일입니다(<개역개정>에는 ‘여호야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후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시드기야 시대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속국이 되어 버린 상태에서 시드기야는 주변 나라들과 연합하여 느부갓네살의 수하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시드기야의 부름을 받아 주변 나라들의 사절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을 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여러 개의 멍에를 만들어서 사절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는 가지고 간 멍에를 하나씩 사절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주님의 예언을 전합니다(1-4절). 

주님께서는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을 종으로 택하여 모든 민족을 심판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짊어 져야 합니다. 그 멍에를 지지 않으려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5-8절). 그들 중에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예언은 모두 거짓입니다(9-10절). 지금은 바빌로니아의 시대입니다. 때가 되면 주님은 바빌로니아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바빌로니아의 멍에를 지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11절).

시드기야 왕은 주변 나라들과 힘을 합쳐 바빌로니아의 그늘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왕을 부추기는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빌로니아의 멍에를 메고 있으라고 권합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 유다를 회복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12-15절). 거짓 예언자들은 바빌로니아 군대가 약탈해 간 성전 기구들이 머지 않아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유다 백성에게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권합니다. 약탈 당한 성전 기구들이 돌아오기는커녕 남은 성전 기구까지도 모두 약탈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바빌로니아의 멍에를 메고 살아 남아야 한다고 말합니다(16-22절).

묵상:

주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을 “나의 종”이라고 부르십니다(6절).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제국을 확장해 갔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신처럼 여기면서 열국 위에 군림 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에 가장 강력한 군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느부갓네살이 당신의 계획 안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느부갓네살이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따라 죄악을 일삼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악을 도구로 삼아 유다와 열국에 대해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는 자신이 신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실은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 안에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때가 되면 바빌로니아도 심판 하겠다고 하십니다(7절).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때까지(계 21장)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고 의롭게 살지 아니면 죄악의 길을 따라 살아갈지를 자유의지로 선택합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류의 역사를 지켜 보시며 다스리십니다. 우리로서는 감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가 선택하는 의와 불의를 모두 사용하여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분별해 가며 그분의 거대한 계획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느부갓네살처럼 하나님의 계획에 사용되고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27장: 느부갓네살을 종으로 사용하시는 주님

  1. 이스라엘의 멸망과함께 주위를 제패하는 바벨론의 등장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계획을 예레미야를 통해 알게 되지만 주님을 거역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대항하는 시드기야의 운명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도저이 이해 못하는 역사의 흐름조차도 주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들을 옳게 감당하는 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왜라기 보다는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곰곰히 생각하며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G20에서 있을 지구환경 회의에서 각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주님의 지혜를 주시어 지구 환경 보존에 최선을 다하는 회의가 되어 지구가 온전히 보호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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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긍휼을 구합니다. 매번 제 평생 소원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실 때, 고구마 먹은 것 처럼 답답한 인생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며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소원과 기도가 하나님의 계획 앞에 잘 사용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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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항상 모든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안에서 이루워저가는것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이방 신을 섬기는 권세자를 사용해서 라도 주님의 뜻이 성취 되는것을 잊지않기를 기도합니다.
    머리로서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않는 상황에서도 구원과 사랑의 하나님을 꼭 붙잡고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세상에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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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리에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사는 모습이 다를까요. 이야기의 끝을 알면 내용이 바뀔까요.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는 백성은 미래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는 게 달라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역사의 바퀴를 굴리는 분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분이라고 믿고 인정하며 산다는 것은 내 삶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뜻 따로, 내 뜻 따로라고 생각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뜻에 맞춰 들어오실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나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일입니다. 나를 없애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바빌로니아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게 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바빌로니아가 주님의 손에 잡혀 있음을 보는 사람은 예레미야의 예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계획을 들려주시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알려 주시고 일깨워 주시는 데도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게 비만해진 자아를 깨뜨려 주소서. 믿는다는 고백이 삶으로 드러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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