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26장: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

해설:

7장에 보면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문에 서서 들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언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26장은 그 때의 일을 전합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심판을 피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다는 심판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눈동자로 불리던 예루살렘 성전은 실로처럼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1-7절). 실로는 성막을 두었던 곳인데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악행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이 실로처럼 되리라는 예언은 유다 백성에게는 끔찍한 소리로 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분개하여 그를 죽이려 합니다(7-9절). 

예레미야로 인해 성전 입구에서 소동이 일어나자 고관들이 찾아와 정식 재판을 시작합니다(10절). 재판이 시작되자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예레미야를 고소합니다(11절). 예레미야는 고관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12-15절). 예레미야의 말을 다 들은 고관들은 예레미야의 무죄를 선언합니다(16절). 그 때 지방의 장로들 가운데 몇 사람이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했던 미가(‘미가서’의 미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도 역시 예루살렘이 심판 받을 것이라는 예언을 전했는데, 히스기야 왕과 백성은 회개하여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17-19절). 

편집자는 이 지점에서 예언자 우리야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넣습니다. 그도 역시 예레미야처럼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는데, 여호야김 왕이 그를 죽이려 하자 이집트로 도피합니다. 왕은 밀정을 이집트로 보내어 그를 체포해 왔고 그를 살해하여 평민의 공동묘지에 유기합니다(20-23절). 예레미야도 우리야와 같은 운명에 처할 뻔했으나,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24절). 사반은 요시야 왕의 서기관으로서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가능하게 해 준 인물입니다. 아히감은 아버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던 사람이었으므로 예레미야를 보호해 줄 수 있었습니다.

묵상: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처형하는 일에 앞장 섰던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성전은 삶의 터전이었고 성전 제사는 권력과 이권의 도구였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불길한 예언으로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성전이 폐허가 된다는 사실도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예레미야를 고소했던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평안하다”, “안전하다”, “문제없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 일로 인해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 다른 예언자 우리야는 실제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고 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민다. 그러면서,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마 23:29-31)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백성과 동일하게 행동하면서도 자신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헛된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으로 그들의 허위와 위선을 지적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그분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섰던 것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나 속으로 ‘나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니다. 내 마음에 거북하게 들리는 말씀에 귀를 막고 어떻게든 내 마음대로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나도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합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26장: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

  1. 계속되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양심에 찔린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끝내 그를 죽이려하지만 아히감의 배려로 죽음에서 벗어난 그를 생각해보며 우리 세대에도 옳바른 선지자들을 핍박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옳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아님을 고백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주님의 길 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세상을 이기기를 기도합니다.
    서부에서 일어난 심각한 자연재해를 보며 인류가 지구에게 가하는 손상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며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도록 작은 일에도 나 스스로 조심하기를 새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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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레미야 26장을 읽으면서 저도 동일하게 ‘나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 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물음을 했습니다. 때론 ‘나의 안위를 위한 설교’를 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봅니다.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나아가며 긍휼을 구합니다.

    또한 유다에 대한 심판에 대한 말씀을 전했던 우리야 예언자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됩니다. 예레미야외에도 하나님은 다른 선지자들을 사용하셔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예레미야가 이전에 낙담과 실망으로 인해서 외로워하고 우울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해주신 말씀도 기억해봅니다. 제 삶과 교회에 많은 일들이 있고, 때로는 실망하고 낙담할 때도 많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중보하며 기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봅니다. God is good all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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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옳다, 정의롭다, 선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의식의 디폴트 설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선 예레미야를 돕는 사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잘못에서 돌이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역사 속에서 예언자의 선포를 듣고 회개한 왕들도 기억합니다. 왕 히스기야가 잘못을 회개하자 여호와께서도 생각을 바꾸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19절)고 회상합니다. 어제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예수님에 대한 묵상을 했습니다. 예전에 사극을 보면 사약을 받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사약이 담긴 그릇을 죄인에게 줄 때 어명을 받으라고 전달자가 명합니다. 죄인은 깨끗한 옷을 입고 무릎을 꿇고 약 사발을 받으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합니다. 왕이 죽으라고 명하면 죽는 것이 신하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진노의 잔은 온 백성과 왕들에게 내리는 징벌입니다. 한때는 귀중했던 이스라엘이 깨진 항아리 조각처럼 곳곳에 흩어지게 만드는 포도주입니다. 예수님이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며 기도하신 것도 이 잔을 놓고 기도하는 애절한 마음으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면…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중재자 되시며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진노의 잔을 피하는 길을 찾는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진노의 잔을 마시기까지 순종하는 당신의 사랑이 위로는 하나님께 아래로는 백성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소설처럼 묘사한 “사랑이 한 일 (이승우)”에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대신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바치는 것은 자기를 주는 행위이기에 자기가 사랑하는 무엇이나 누구만이, 오직 사랑만이 바쳐질 수 있으며 그래서 “바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선은 자기 자신만큼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바치는 일 일수 밖에 없다는, 그래서 사랑 때문에 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매 챕터 끝에 작가는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라고 씁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랑의 다른 얼굴일까요. 하나님 안에 공의와 사랑이 같은 분량으로 담겨 있다면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서로를 캔슬하는 것이 아니라 컴플릿 시키는 것이 됩니다. They don’t cancel each other; they complete each other. 스스로 옳고 선하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십자가의 주님을 기억하며 사랑에서 나온 생각인지 묻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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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목회자를 비방하는 소리를 듣고 또 동감한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또한
    사이비 교단의 종주 거짖 예언자 들이 예전 에나 지금도 날치고 있습니다. 우선 진실한 예언자
    를 아는 분별력을 원합니다. 늦기전에 말씀 듣고 순종하며 주님 닮아 가기를 간구합니다.
    멸시와 핍박을 당하더라도 이웃과 함께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 이라고 세상에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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