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23장: 주님께 부담이이 된 존재

해설:

주님께서는 양과 목자의 비유를 사용하여 유다의 지도자들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양들을 맡기셨는데, 그들은 양떼를 돌보는 책무를 소홀히 했습니다(1-2절). 주님은 친히 목자가 되어 흩어진 양떼를 다시 찾아 목장으로 데려 오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아 줄 참다운 목자들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3-4절). 그 일은 장차 다윗의 자손 중에서 “의로운 가지”가 돋아날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왕은 이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며, 사람들은 그에게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5-7절). 이것은 후에 나타날 왕에 대한 예언처럼 보이지만, 실은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레미야는, 한 편으로는 거룩한 주님의 말씀 때문에 속에서 불이 타는 듯한 고통을 받고, 다른 한 편으로는 유다 땅에 퍼져 있는 죄악으로 인해 고통 받습니다(9-10절).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의 지도자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십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백성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더니, 유다의 예언자들도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예루살렘 주민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유다의 죄악이 예언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11-15절). 주님은 자칭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으면서 주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두둔하고 위로해 줍니다(16-32절).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이나 예언자나 제사장이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 있느냐고 물어 오면 그들이 주님에게 부담이 된다고 답해 주라고 하십니다.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은 자신들을 꾸짖거나 심판하겠다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 말씀이 그들에게 부담이 되는 이유는 그 죄악에서 돌이킬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마음도 없으면서 혹시나 자신들의 잘못을 책망하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유다 백성을 심판 하겠다고 하십니다(33-40절).

묵상: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늘 부담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늘 우리의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높은 이상을 제시하면서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힘쓰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부담 주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잘 되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의를 믿으면, 그분의 말씀이 짓누르는 부담이 아니라 힘 솟게 하는 부담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 입어 그 부담감을 기꺼이 끌어 안고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십니다. 

하지만 주님께 대한 사랑이 식고 우리의 욕망이 강해지면 그분의 말씀은 짓누르는 짐이 됩니다. 예수께서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 11:28)고 하셨을 때, 그분이 염두에 두었던 사람들은 율법의 짐에 짓눌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그 짐을 벗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기를 좋아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삶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에게 혹시 주님께서 “부담스러운 말씀”(개역개정 “엄중한 말씀”)을 주시지 않았는지 묻곤 했습니다. 자신들의 죄악을 알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그들에게 짐을 지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에게 짐이 되어 버렸다고 하십니다. 

한 때 이스라엘은 주님에게 기쁨이었고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주님에게 짐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심판을 피할 궁리만 하지 회개하고 그분의 품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3 thoughts on “예레미야서 23장: 주님께 부담이이 된 존재

  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극진하시는 하나님이 이제 그들에게 부담이 되는데도 회개하고 돌아올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던 책임에서 피하려고 하는 제사장과 지도자들에게 다시한번 주님께서 책망하시지만 끝내 넓고 편한길로 가는 그들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길이 비록 좁고 험악하다 하여도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면 그 길이 구원의 길임을 깨닭고 묵묵히 따라가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부담이 아니고 용기를 주시는 주님으로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Like

  2. 사랑 이시기에 독생자까지 희생 시키시는 주님의 말씀을 부담으로 느끼는 어리석음을 회개
    합니다. 말씀이 부담같이 느껴지지만, 말씀 순종이 최고의 축복임을 깨닫기 원합니다.
    말씀위에 굳건히 서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이웃과 더불어 승리의 삶을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3. 예레미야서 같은 예언서는 분명 불편하고 부담이 되는 책입니다. 은혜를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 감동의 고백을 하기 보다 이렇게까지 “쎄게” 몰아 붙이시는 까닭은 무엇인지, 지금 우리의 상황이 당시 이스라엘과 비슷한지, 설마…이런 생각으로 읽고 묵상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주님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백성에게 경고의 선포만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때론 욥처럼, 때론 다윗처럼 풀어놓습니다. 시편에서 본 표현, 욥기에서 느꼈던 아픔과 다시 만납니다. 부담을 느낀다는 것은 신호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발신자라면 그분의 신호가 내 마음에 닿았다는 뜻입니다. 부담은 그런 면에서 초대입니다. 변화하라는 초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부담은 긍정적인 초대의 부담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주님의 심판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조금만 귀찮아도 조금만 불편해도 부담스럽다고 불평하는 백성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현대인의 나태함이, 나의 안일함이 모든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데 까지 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신호를 귀담아 들으며 늘 집중하게 하소서. 주님, “거룩한 부담”을 잘 감당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