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21장: 비주류의 삶

해설:

유다의 마지막 임금인 시드기야는 바스훌(20장 1절에 나오는 바스훌과 동명이인)과 스바냐 제사장(예언자 스바냐와 동명이인)을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바빌로니아의 공격에서 유다를 보호해 달라고 중보 해달라고 청합니다(1-2절). 예레미야는 중보 기도는 커녕 주님께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통해 유다를 멸망 시킬 것이며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전합니다(3-7절). 주님께서는 백성에게 전할 말씀도 주십니다. 살아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바빌로니아에게 항복 하라는 것입니다(8-10절). 하지만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이집트에게 도움을 청함으로 인해 유다 백성에게 참담한 재앙을 안겨 줍니다.

주님께서는 유다 왕실에게 공의로운 판결을 내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건져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시야 왕 이후에 유다의 왕들은 하나님의 뜻에 등 돌리고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유다 백성은 도탄에 빠졌고 그로 인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11-14절).

묵상:

예레미야가 백성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빌로니아에 항복 하라는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해 갈 때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내놓고 적과 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권을 잃은 나라에서 목숨을 부지 하느니 조국과 함께 죽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아무리 암담해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백성을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심판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저항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살고 싶으면 바빌로니아에게 항복 하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있다면 당해야 할 모든 재앙을 겪고 난 다음에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유다 백성이 그를 혐오하고 배척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하며 그분의 섭리에 맡기고 살아가는 것은 때로 예레미야처럼 비주류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못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과는 다른 것을 보고 있고 다른 뜻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을 빌린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고후 5:7)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주류의 삶은 고달픕니다. 때로 외롭고 때로 오해 받고 때로 모욕 당하고 때로 혐오를 당합니다. 하지만 믿는 바가 있기에 그 길에서 버티고 견딥니다. 진정한 희망은 그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3 thoughts on “예레미야서 21장: 비주류의 삶

  1. 하나님이 주시는 예루살렘의 참담한 운명을 예언하며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이 가야할 마지막 길을 제시하지만 끝내 거역하며 대항하다 비참한 꼴을 당하는 유다의 행실을 생각해 봅니다, 오랜세월 타락한 본인들의 습관을 고치기보다는 예언자의 중보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얕은 그들의 수작을 생각해 봅니다.
    나 스스로를 통찰하며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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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과 보조를 맞춰 사는 것도 어렵고, 세상을 거슬러 사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예레미야는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세상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여러 번 들으면 물리는데 싫은 소리, 아픈 소리만 하는 그를 반길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집 밖을 나서면 조롱과 핍박이 기다렸을 것이 뻔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상을 고발하고 이로 인해 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기는 있었을 것입니다. 옛 조상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 율법을 왜 주셨는지 근본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심판의 때에 누구는 살고 누구는 사라지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예언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진노를 쏟아 붓는 무섭고 엄중한 분입니다. 감히 누가 그분의 심중을 헤아려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내가 네 행위대로” 태워버리겠다는 선포를 하십니다. 개개인의 행위를 낱낱이 밝혀 심판하시면 살아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대적하시면 우리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불처럼 타오르는 주님의 분노를 아무도 끌 수 없습니다. 악한 왕실, 불의한 정부가 주의 진노를 키우는 연료 Your evil regime is fuel for my anger 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자를 무시하고 억울한 사람을 내버려 두는 사회는 하나님의 매를 버는 사회입니다. 이런 세상에 맞서서 사는 개인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묵상합니다. 율법의 정신, set apart 된 사람이 지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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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심지어 재판장 까지도 법을 무시하고 제마음대로 판결을 내리는 세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
    들이 세상의 가치관을 추앙하는 사회입니다. 이해가 되지않더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분별력을
    원합니다. 허락하신 고난과 시련을 감사히 견디어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멀지않아 주님앞에
    서서 칭찬받는 소망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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