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15장: 제자됨의 대가

해설:

주님께서는 비록 모세와 사무엘이 살아나와 간청한다 해도 유다의 심판을 돌이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 백성은 이제 곧 심판을 받아 어떤 이들은 전염병에, 어떤 이들은 칼에 맞아, 어떤 이들을 굶어 죽을 것이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 갈 것입니다. 세상 만국 백성들은 유다가 심판 당하는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1-9절). 

심판의 예언을 전한다는 이유로 예레미야는 동족으로부터 극심한 혐오와 박해를 당합니다. 예레미야는 세상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탄식합니다(10절).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를 강하게 해주고 그의 원수들을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11절). 그 원수들은 다름 아닌 유다 백성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북녁에서 오는 쇠와 놋쇠”로 심판하실 것입니다(12-14절).

예레미야는 또 다시 애통한 마음을 쏟아 놓습니다. 그는 예언자로 부름 받았을 때 기꺼이 따라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그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답게 의롭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썼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가 얻은 것은 배신과 모욕과 살해의 위협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고통은 더욱 심해질 뿐입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15-18절). 이 호소를 들으시고 주님은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다 백성처럼 살려는 유혹에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9절). 주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시고 굳세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20-21절).

묵상:

유다 백성에 대한 예레미야의 감정은 ‘애증’이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유다 백성에 대한 긍휼함을 마음에 품고 삽니다. 그들을 위해 중보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합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를 배척하고 증오하고 모욕하고 박해합니다. 그로 인해 상심이 깊을 때면 예레미야는 자신을 위해 그들을 징계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런 까닭에 예레미야가 우울증 혹은 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연약한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부름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처음에 예언자로 부름 받았을 때 주저하고 사양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영예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그는 “받아먹었습니다”(16절)라고 표현할 정도로 반겼습니다. 하지만 그 예언으로 인해 유다 백성으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고향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평민으로 살아가고 싶은 유혹에 흔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돌보시고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현실은 더욱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로 사는 것에 대해 두 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건축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미리 그에 따른 비용을 추산하고 그 비용을 마련한 다음에 시작해야 하고, 전쟁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충분한 군비를 마련하고 시작해야 합니다(눅 14:25-33). 그것처럼, 주님의 부름을 받고 사명을 따라 살려는 사람은 그에 따라 감당해야 할 손해와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제자로 살아가는 데에는 치뤄야 할 대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알고 시작해도 예레미야처럼 흔들릴 수 있으니, 모르고 시작한다면 필경 중도에 포기할 것입니다.  

3 thoughts on “예레미야서 15장: 제자됨의 대가

  1. 예레미야는 아프고 힘든 마음들 가운데서 항상 기도와 눈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배신과 모욕과 살해의 위협 가운데, 항상 예레미야는 눈물로 유다백성을 위해서 기도했으며,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로 호소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간절하고, 절실했으며, 투명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지금 마주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가운데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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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많은 나라 사람들 특히 북한이 끼니가 없어 굶 습니다, 또 사람들을 납치해서 인질로 잡아
    는 나라도 있습니다. 크고 적은 전쟁으로 죽어갑니다. 온세상이 코로나로 혼란합니다.
    모든것이 주님을 등지고 제멋대로 살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문을 열어두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 가정부터 시작해서 너무 늦기전에 십자가앞에서 무릎을 끓는
    세상이 되기를 원합니다.매일 아침 주님의 말씀이 이웃과함께 기쁨이되고 즐거움이 되고
    비록 수모를 당 하더라도, 그 즐거움의 근원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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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시편을 읽을 때 다윗이 조울증일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해설 말씀에서 예레미야가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겪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니 한편으론 흥미로우면서 또 한편으론 누구나 조금씩 조울증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예레미야가 백성을 생각하며 품는 감정도 복잡합니다. 한없이 불쌍하면서 또 한없이 미운…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체적인 사명 (성직)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길이란게 참 어렵습니다. 웬만큼 알고 뛰어 드는 사람 – 우리 표현으론 PK, MK -도 막상 고난이 닥치면 흔들리는데 준비 없이, 별 생각 없이 길을 나서는 사람은 오죽 하겠습니까. 예레미야와 하나님의 대화가 의외로 ‘짠하게’ 읽힙니다. 유다를 향한 진노를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작고 외로운 예레미야가 보입니다. 자기를 해치는 사람에게 벌을 내려 달라 (15절)고 기도합니다. 어째서 자기 고통은 끝이 나지 않고, 자기 상처는 낫지 않느냐고 항의합니다. “물이 넘쳤다가 말랐다가 하는 믿을 수 없는 시내와도 같은” 여호와로 인해 모욕을 당하는 자신이 한없이 가여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있는 예레미야는 양쪽을 다 믿을 수 없기에 난처합니다. 자기가 원해서 찾아 간 자리가 아닐 때는 감정의 농도가 더 짙어집니다. 자기가 계획한 일도 아닌데 어렵게 되면 더욱 난감하고 억울합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우연한 일이 잘 풀리면 더욱 신기하고 행복합니다. ‘부르심을 받았다’는 수동태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의 사람은 늘 조금 증폭된 감정 속에놓여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 예레미야를 하나님은 굳건한 성벽, 놋쇠 성벽 (thick steel wall) 처럼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요동치는 감정의 물결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성벽처럼 버티고 서는 힘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밀어도 밀리지 않고, 흔들어도 넘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놀랍도록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약속의 말씀에 의지해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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