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13장: 낮은 곳에 앉으라

해설: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종종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상징행동’이라고 부릅니다. 그 행동을 통해서 다른 무엇을 보게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베로 만든 띠를 사서 물에 적시지 않도록 잘 보관하라고 하십니다(1-2절). 얼마 후, 주님께서는 그 베 띠를 가지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서 바위 틈에 숨겨 놓으라고 하십니다(3-5절). 예루살렘으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는 5백 킬로가 넘는 먼 거리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나돗에 가까운, 유프라테스와 유사한 발음의 지명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주님께서는 다시 가서 그 베 띠를 꺼내 오라고 하십니다. 가서 꺼내 보니 베 띠가 썩어 있었습니다(6-7절). 주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허리 띠로 삼아 동여매려 했는데, 그 베 띠처럼 부패하여 썩어 버렸다고 탄식하십니다(8-11절).

또한 주님께서는 포도주로 가득 찬 항아리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12절). 지도자나 백성이나 모두 포도주에 만취한 사람들처럼 서로 부딪쳐 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13-14절). 이 예언을 듣고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을 향해 더 늦기 전에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서 영광을 돌리라고 촉구합니다. 그는 유다 백성이 자신의 예언을 듣고 돌아서기 까지 숨어서 울 것이며, 그들의 불행한 미래를 미리 내다 보고 슬피 울 것이라고 말합니다(15-17절).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유다의 운명이 다했으므로 교만을 버리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앉으라고 하십니다. 낮은 자리로 내려 와야만 비로소 유다가 당한 운명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쪽으로부터 재앙이 몰려 오고 있는데, 유다의 지도자들은 아무런 위기감도 없이 죄악을 즐기고 있습니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돌아선다 해도 심판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돌아서지 않으면 영영 희망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18-27절).

묵상:

주님께서는 유다 백성의 죄를 ‘교만’으로 특정하십니다(9절, 15절, 17절). 성경적인 의미에서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난 것을 가리킵니다. 창조주 앞에서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위치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반면, 창조주를 부정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 교만입니다. 자신을 신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드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이런 경향은 지위가 높거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재산이 많을 때 더욱 심해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왕과 왕후에게 “낮은 곳에 앉으라”(18절)고 말씀하십니다. 

교만의 가장 큰 해악은 현실을 오판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성추행 같은 부끄러운 일로 추락하곤 합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현실의 상황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반면, 낮은 자리로 내려 오면 현실이 제대로 보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낮은 곳으로 내려와 마음을 낮추었다면, 지금 유다가 당하고 있는 재앙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고, 그것이 참담한 재앙을 불러 왔습니다.

“낮은 곳에 앉으라!” 오늘 우리에게도 경청하고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13장: 낮은 곳에 앉으라

  1. 지속해 주기는 주님의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교만으로 가득했던 유다의 왕과 지도자들의 운명을 예레미아들 통해 보여주지만 회개할줄 모르는 그들의 속성을 보며 한번 악에 물들면 그 악에 중독이 돼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생각해 봅니다, 북쪽에서 바벨론의 위협이 물밀듯 밀려오지만 술에 취한듯 자만과 교만에 취해 현실을 깨닭지 못하는 그들을 운명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교만이 불러들이는 재앙을 아프가니스탄과 코비드를 통해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피조물임을 깨닭고 주님의 주권을 존중하며 따르는 겸손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앞에 겸허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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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까지 살아온것이 주님의 인도와 은혜인것을 잊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방인들을 경멸하며 살았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자들을 사랑없는 말로만 위로
    했습니다. 주님께서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우시는것을 깨닫지못한 죄를 십자가앞에서 회개
    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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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고 나의 뜻과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이 교만입니다. 겸손히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시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며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레미야의 눈물과 외침이 내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 외쳐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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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교만이 문제라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교만을 좁게 해석하다보니 교만한 사람은 따로 있는 줄 알았습니다. 유난히 잘난 척하고 안하무인인 사람, 타인에게 무심하고 자기가 늘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교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비추어 자신을 들여다보니 의외로 (!) 교만한 데가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가장 먼저 침투해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것이 교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함께 교만도 같이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은 교만의 위험을 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능력이 없을 때는 교만도 없습니다. 아기를 보며 교만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이들을 이상적인 모델로 말씀한 것은 하나님께 늘 의존적인 상태, 교만을 모르는 시절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인격도 성숙해야 합니다. 모난 곳, 연약한 부분을 수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행동은 그 행동이 전달하는 의미가 메시지였습니다. 썩은 허리띠와 술에 취한 군중, 눈물이 마르지 않는 선지자, 치마가 들춰지고 사지가 드러난 백성…교만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교만이 만든 결과입니다. 오늘도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교만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 고하게 하소서. 주님, 내가 교만합니다. 나를 유혹하고 조종하려 드는 교만을 물리치게 하소서. 주님을 생각함으로 교만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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