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12장: 하나님은 과연 의로우신가?

해설:

예레미야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그는 주님이 항상 옳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가 당하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게 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악행을 일삼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번영하게 하시고, 그분의 뜻을 따라 의롭게 살려는 자신은 계속 고난을 당하게 내버려 두십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짐승과 새와 식물까지 고통을 당합니다(1-4절). 이 질문에 대해 주님께서는 즉답을 하지 않으시고 아나돗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은 것처럼 가족과 친척으로부터 냉대를 당할 것이라는 사실만을 확인하십니다(5-6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예레미야에게는 불의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독백을 하듯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분은 “내 집”, “내 소유” “내 백성”이라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십니다(7-9절). 주님은 그토록 사랑하던 당신의 백성을 버리실 것입니다. 이방 민족들에게 유다 백성을 내어 주어 노략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10-13절).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이방 땅에서 구해 내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이방 민족이라도 주님의 도를 제대로 배우면 주님의 백성 가운데 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방 민족들은 유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후에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14-17절).

묵상:

예레미야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은 후에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신앙적인 회의에 빠지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역사하신다고 보기에 현실이 너무도 부조리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위선과 거짓과 불의를 일삼는 사람들은 아무 문제 없이 번영하고, 진실하고 선하고 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런 현실을 보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일 존재한다면 현실 세계에서 손을 떼신 것처럼 보입니다. 만일 전능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현실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면, 현실이 그토록 부조리 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번민 가운데서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말로도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당장의 현실에 얼굴을 파묻고 질문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계획 안에서 일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바둑 초보자가 고수들의 대국을 보면서 “왜 그렇게 합니까?”라고 물을 때, 고수는 하수에게 “두고 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수는 한수 밖에 못 보지만, 고수는 여러 수를 염두에 두고 돌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의 선의를 믿고 신실하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고전 13:12) 보는 것처럼 환히 알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12장: 하나님은 과연 의로우신가?

  1. 폭풍 전야에 처한 예루살렘과 유다의 운명애 대해 왜 그렇게 됐는가를 설명하시면서 그들을 고향에서 쫓아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생각해 봅니다.
    이방 신들에서 다시 돌아와 회개하며 주님을 찾는다며 주님의 백성가운데 들게하신다는 말씀앞에 회개하며 엄숙해 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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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말과 행동과 삶이 일치 하지 않았습니다, 죄와 탐욕의 노예로 살아 왔습니다. 질병이 난무하고
    땅이 페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부터 시작 해서 가정과 사회와 나라의 영적 대 각성을 원
    합니다. 지금까지 주님으로부터 멀리 멀리 떠났던 인생들이 주님을 향해 기쁘게 걸어가는
    하늘나라의 나그네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며
    천국 소망을 갖고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이웃과함께 신실 하시고 사랑 이시고 구원의 주님을
    세상에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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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징어 게임’을 보다 말았습니다. 보기 싫어서 중단한 것이 아니라 보기가 어려워서 중단했습니다. 세계적인 인기와 평가는 그것대로 고맙지만 드라마가 재구성한 현실의 암울과 절망에 공감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은 좋기만하지 않습니다. 인기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회의 아픔을 알게 되는 것은 유익한 일이지만 드라마 시청은 지극히 수동적인 동참일 뿐입니다. 개인적인 불행과 비극이 끊이지 않고, 그런 개인의 문제들이 모여 사회 현상이 되고 법과 제도, 종교가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할 때 예레미야처럼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게 두십니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욥기를 읽을 때에도 하나님의 침묵이 서운하고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에게 하시는 주의 답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악의 패망이요 굴복인데 주님은 여전히 예루살렘의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주의 백성이 저지른 죄와 그 댓가를 또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악을 그대로 두시는 주님을 원망하는데 주님은 유다 백성의 죄를 심판하신다고 답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바랐던 답은 아닐지 몰라도 유다의 악함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벌을 내리신다는 답을 하신 것입니다. 사회 정의가 허물어질 때 그 책임의 일부는 나에게도 있음을 인정하라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부당이득, 불법행위를 하고도 편안하게 사는 인간을 보면 속이 부글거리지만 그것이 내게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누가 복음서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부자가 죽은 뒤에 지옥에서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할 때 아브라함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 (a huge chasm) 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레미야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 사이에 큰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큰 벼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진노와 심판 중에도 소망의 빛을 허락하시는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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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레미야의 질문과 회의감이 요즘 저에게도 다가오는 듯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며 일하고 계시는 분이신데, 제가 보는 환경과 상황에서는 분별하지 못할일들과 부조리한 현실들이 가득찹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제 마음의 한 편에서는 제 눈에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God is in control of everything! 감히 초보자인 제가 나의 생각과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해서, 고수이신 하나님 앞에 아둥바둥하는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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