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10장: 언약 안에 산다는 것

해설:

예레미야는 우상숭배에 대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우상으로부터 해를 입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일 뿐,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1-5절). 정말 두려워할 대상은 오직 한 분 뿐인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으로서 모든 신들 위에 그리고 모든 왕들 위에 계신 분입니다(6-16절). 유다 백성은 그런 하나님을 알면서도 섬기지 않았고 헛된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해 주님께서는 유다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심판을 받아 유다 백성은 이방 땅으로 끌려 갈 것입니다(17-18절).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다시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19-22절). 여기서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한 이유는 그가 유다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두려워 떨면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어떤 형벌이든 받겠다고 기도합니다. 다만, “주님의 진노대로” 하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23-24절). 그대신 그 진노를 이방 백성에게나 쏟아 달라고 간구합니다(25절). 그들이 “야곱 자손”을 삼켜 버렸고 하나님의 포도원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묵상: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합니다. 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그렇고, 인류 역사에 대해서도 절대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23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면 인간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바랄 뿐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유다 백성에 대한 진노를 모두 쏟아 붓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랬다가는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간구하는 이유는 야곱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취소되지 않았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약의 파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사실에서 유일한 희망을 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심판이 다 이루어진 후, 주님께서는 그를 통해 “새 언약”(31장 31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장차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언약은 옛 언약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돌리시면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눅 22장 2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그분을 통해 맺어진 새 언약 안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 언약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힘입습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10장: 언약 안에 산다는 것

  1.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어떤 형벌이든 기꺼이 받겠다고 기도하지만 “주님의 진노대로” 하지 마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며 그 진노를 이방 백성에게나 쏟아 달라고 간구하는 예레미아에게 새 언약을 주시겠다는 주님 앞에 지난 날들의 모든 죄성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잣대로 내 허물을 재어보니 죄인임에 틀림이없습니다, 새로 주시는 그 언약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 영혼의 자유를 기대합니다, 예수님 내 안으로 드러와 다스려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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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레미야는 무력한 우상에게 빌지 말라고 말합니다. 나무 조각에 불과한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나무로 빚은 형상에 금과 은을 덧씌운 것에 불과한 우상은 그 출처가 어디인지, 누가 다듬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서 나온 우상을 감히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비교하여 마치 그 속에 무슨 신비한 힘과 능력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미신’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열등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미신은 곧 무지로, 무지는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은 허망함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21세기 한국에서 때아닌 미신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빈곤한 사유, 저급한 인식 수준을 보면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그 나라가 이 나라인가 싶어집니다. 마음이 공허할수록 어딘가에 의지하려 드는 것이 사람입니다. 자기의 가치가 별 것 아닌 것으로 느껴질수록 겉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강조하면 실패요, 과할수록 모자란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을 것입니다. 잠시 만족감을 주는 것에 끌리지 말고 나의 속을 든든하게 만드는 것을 찾아 다니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또 새기면서 그 속에 담긴 귀한 보물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인생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23절)”라고 고백하는 예레미야처럼 나도 오늘 주님께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참하나님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한 왕이십니다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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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금까지 살아온것이 주님의 인도입니다. 티끌보다 못한 인생이 여기까지 온것이 은혜입니다.
    아직도 갈길이 멀고 험합니다 만은 신실 하신 주님의 언약을 꼭 붙잡고 순종하며 행하기를 원
    합니다. 샘물같은 보혈로 매일 매일 깨끗이 씻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창조주
    하나님,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만유의 주님을 세상에 삶으로 보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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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개인적으로 내 삶에 하나님이 주인임을 인정하고 알면서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내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비록 심판이 있지만, 새 언약으로 항상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삶도 끝까지 하나님만 섬기고 주님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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