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9장: 하나님을 안다는 것

해설:

예레미야는 유다의 미래를 상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린 까닭에 눈물샘이 말라 버렸습니다. 그는 홀로 광야에 나가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1-2절). 예레미야가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의 타락상을 고발하십니다(3-6절).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그들에게서 진실과 정직과 정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금속을 불로 제련하는 것처럼 그 백성을 심판하실 것입니다(7-9절). 

예레미야는 심판의 날을 상상하며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10절). 그러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아 황량하게 될 것임을 확인하십니다(11절). 그러자 예레미야는 왜 유다가 그렇게 심판 받아야 하는지를 묻습니다(12절). 주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율법을 버리고 우상을 따른 것이 그 이유라고 답하십니다. 그로 인해 주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이방 민족 가운데 흩어져 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13-16절). 이제 할 일은 곡하는 여인들을 불러들이는 것 뿐입니다. 참혹한 재앙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7-22절). 

주님께서는 지혜가 많다고, 힘이 세다고 혹은 재산이 많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진실로 자랑할 것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23-24절). 바로 그것이 율법을 주신 이유입니다. 율법을 따라 태어난지 8일 만에 아기의 몸에 할례를 행하는 이유는 율법의 정신을 따라 살도록 양육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몸에 받은 할례만을 자랑했지 그 정신은 무시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에 할례를 받아 율법의 정신(긍휼, 공평, 공의)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25-26절).

묵상: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그분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행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 앎은 곧 그 사람의 삶이 됩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사람은 그 하나님을 닮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귀중한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밝히십니다. ‘진실'(3절, 5절), ‘긍휼’, ‘공평’, ‘공의'(24절)이 그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배워 알라는 뜻입니다. 율법에 순종 하라는 말은 그런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행하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실력은 지식이나 권력이나 재산의 분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샘이 마르도록 운 것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숭배에 빠졌고 그로 인해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가치들을 외면하고 진실 대신에 거짓을, 긍휼 대신에 완악함을, 공평과 공의 대신에 불의와 불화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너무도 심해져서 유다와 예루살렘이 ‘현실 지옥’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가? 나의 말과 행실을 통해 그 증거가 드러나고 있는가? 매일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 하나님께서 지향하시는 방향과 일치하는가? 주님의 눈길이 닿는 곳에 내 눈길이 향하고, 그분의 눈물 있는 곳에 내 눈물이 더해지고 있는가? 유다 백성의 불행한 미래를 내다 보며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눈물샘이 마르도록 울었던 예레미야의 마음을 구하는 아침입니다. 

3 thoughts on “예레미야서 9장: 하나님을 안다는 것

  1. 마지막 까지 예레미아들 통해 주님의 뜻을 전하면서 거짓과 불화와 불의에서 돌아서서 주님이 누구인지 말며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행하기를 선포하지만 끝내 이방신을 못 버리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깨닭고 행하기를 기피하고 각기 제 갈 길로 가는 그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경고를 생각하며 우리 인간의 죄성을 다시한번 음미해 봅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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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현대 유다인들이 예레미야서 같은 선지서를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해 집니다. 조상의 죄와 허물이 기록된 페이지를 읽으며 부끄럽고 괴로운 마음이 될 것입니다. 고집 센 조상,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도 돌이키지 않는 모습 앞에 한숨이 나올 것입니다. 5절에서 “유다 백성은 그 혀에게 거짓말하기를 가르치고 지치는 법도 없이 죄를 짓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실로 엄청난 질책입니다. “형제마다 속임수를 쓰고 친구마다 거짓말을 하는 (4절)” 백성이니 상종하면 안 될 사람들입니다. 신약에서 특히 복음서에서 반유다주의적인 (anti-semitism, anti-semitic) 뉘앙스가 있다고 보는 주장도 있지만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께 등을 돌린 이스라엘을 표현하는 구절들은 철저하게 부패한 군중으로 유다인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쪽엔 선민사상에 물든 오만한 백성이라는 인상과 또 한쪽엔 선지자들이 적시하는 거짓과 방종의 백성이라는 인상 두 가지가 강하게 듭니다. 인간의 현실과 한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인간을 기다리는 것은 허무와 절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나를 아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나의 어두움을 깨닫게 되고, 내 안의 어두움을 깨달으면 빛이신 하나님을 받아 들이게 됩니다. 선지자 때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지금의 우리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크리스찬은 믿을만하지 않습니다. 좋아할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제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교회가 채워지지 않으면 인간의 엔딩은 여전히 허무와 절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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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온세상이 재물을 쫓고 있습니다. 전화로, E-Mail 로 Phishing 하고있습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부러워하고 있는 세상에서 오직 세상이 멸시하는 십자가 만을 자랑하는 용기를
    원합니다. 갈길이 멀고 어려워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잊지않고 기쁘게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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