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6장: 옛길을 떠난 불행

해설:

베냐민 자손은 남유다 왕국을 구성했던 두 지파 중 하나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터이므로 가까운 다른 동네로 피신하라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방 왕들에게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물을 뿜어내는 샘처럼 죄악을 솟구쳐 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병들고 상처 입은 사람들 뿐입니다(1-7절). 주님께서는 이 고난을 경고로 받아 들이고 회개하라 하십니다. 적군이 이르면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하고 주민들을 포로로 끌고 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재앙이 닥치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구하라고 이르십니다(8-9절).

예레미야는 자신이 말한다 해도 듣는 사람이 없다고 답합니다. 그의 마음에는 주님의 분노가 들끓고 있어서 품고 있기 힘겹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분노를 길거리에 쏟아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잡혀갈 것이기 때문입니다(10-12절). 예루살렘은 총체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로 인해 백성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지도자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토록 역겨운 일을 하고도 그들은 가책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 뿐입니다(13-15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길을 따르면 편안히 쉴 곳에 이를 것인데, 그들은 그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파수꾼을 세워 두셨는데, 백성은 그들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16-17절). 그래서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향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알리십니다(18-19절). 유다 백성은 여전히 값비싼 제물과 선물을 주님께 바치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20절). 주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21절). 그 심판은 북쪽에 있는 큰 나라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에는 도피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통곡하며 그 재앙을 겪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22-26절).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을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죄악은 너무 깊어서 뜨거운 불에 녹여도 불순물이 지워지지 않는 금속처럼 되어 버렸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불순물이 제거되지 않는 은을 내버리듯 유다 백성을 버릴 것입니다(28-30절).

묵상:

주님의 길은 진정한 평안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옛길”(16절)입니다. 오래 전에 주님께서 알려 주신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 길은 “영혼이 평안히 쉴 곳”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이 우리의 죄 된 본성에는 좁고 험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넓고 평평해 보이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 길에서 잠시 만족을 얻지만, 그 마지막에는 “사방에 공포가 있을 뿐”(25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에게 복된 것입니다. 반면, 그 말씀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일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에게 재앙을 끌어 들이는 일입니다.

요즈음 가장 흔한 질병 중 하나가 ‘공황장애’입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입니다만, 지금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는 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14절)고 말합니다. 왜 지금 이 시대에 불안과 두려움이 이토록 심해졌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을 떠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새길”을 찾느라고 “옛길”을 망각한 것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을 외면하고 편해 보이는 넓은 길을 택한 것입니다(마 7:13-14).

겉으로는 매력 없고 좁고 험해 보이는 “옛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며 감사를 드리는 아침입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6장: 옛길을 떠난 불행

  1. 베냐민과 유다 백성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지켜주시며 마지막 경고를 주지만 지도자와 제사장과 그리고 예언자 까지도 자기들 잇속을 챙기고 주님께 반역하며 율법을 무시하고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악의 길에서 역겨운 일을하며 주님을 기만하는 예루살렘의 마지막 시기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과 비교해 보며 금전과 비리가 하나님의 머리위에서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영혼이 방황하고있음을 고백합니다.
    옳지않은 일에 내 영혼이 물들지 않게 깨어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내 영혼의 불순물들을 제거해 주시고 좁은 길에서 벗어나지않게 오늘 하루도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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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죄를 짓고도 부끄럽고 두려워 하지않고 도리여 자랑을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헛된 평탄해 보이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순간적인 향락을 버리고
    영생과 하늘나라를 향하는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의 길을
    걷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좁은길이지만 주님과함께 기쁘게 걷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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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옛길’을 무심코 지나가며, 더 화려하고 멋있는 길을 쫓아가려는 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그 길이 평안의 길임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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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본문 16절 “갈림길에 서서 살펴보아라. 너희 조상들이 걷던 선한 옛길이 어디인지 물어보고 그 길로 가거라. Go stand at the crossroads and look around. Ask for directions to the old road, the tried and true road. Then take it”에 멈추어 섭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상은 주님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약속하던 조상이요, 그들의 선한 옛길이란 주님의 명령을 삶의 규칙으로 삼은 것을 뜻할 것입니다. 율법의 가르침을 따르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고 의지하며 살겠다던 이스라엘의 결심을 예레미야의 청중들과 우리에게 환기시켜 줍니다. 첫사랑, 초심을 일깨우는 선포입니다. 회개란 돌아선다,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후회와 반성, 복기 등이 사색의 영역이라면 회개는 사색 이후에 오는 행동을 포함합니다. ‘말로만 회개’한다는 지적은 ‘회개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나는 과거보다 앞날에 관심이 가고, 비관적이거나 매서운 분석보다 긍정적인 해석에 먼저 끌리는 성향을 가졌습니다. 어려서부터 낙천적이고 적극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나를 표현한다면 그렇게 말할 것 같지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16절이 도전으로 남습니다. 옛길로 가고 싶지 않고, 조상의 행동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갈림길에 서면 가보지 않은 길 the road less travelled로 가고 싶지, tried and true road로 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사회가 보수 아니면 진보, 청년세대 아니면 기득권 등으로 양분화되고 극단으로 분열되는 시대에 “옛길”은 문자적으로나 은유적으로나 받아 들이기 참 어려운 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스라엘의 회개였을 것입니다. 지금 나를 꾸짖는 선지자의 소리가 들리게 하시고 몸을 돌리는 회개도 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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