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3장: 영적 음행과 영적 간음

해설:

주님께서는 우상숭배를 간음에 비유하십니다. 신명기 24장 1-4절에 의하면, 이혼 당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 다음 다시 이혼을 당하면 첫 번째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려 합니다(1절). 그들은 우상숭배를 통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벌거숭이 언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말하면서 죄악을 즐깁니다(2-5절).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이 다스리던 시기에 받은 또 다른 말씀을 전합니다. 그 말씀에서 하나님은 남왕국 유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이 당한 일을 통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해 탄식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유다의 죄가 이스라엘의 죄보다 더 심하다고 하십니다(6-11절).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미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라 하십니다. 이제라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아오면 받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12-14절). 그 때가 되면 “마음에 맞는 목자들”을 세워 “지식과 훈계로” 그들을 양육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15절). 그 때에는 더 이상 언약궤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언약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물입니다. 언약궤가 필요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가 늘 함께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16-17절). 그 날이 오면 분열 되었던 남북 왕국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18절).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짐으로 인해 심판을 받아 멸망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그들을 받아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19-25절).

묵상:

성적 욕구는 사랑의 도구로 주어진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만족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음행’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타락한 욕구는 만족될 줄 모르기 때문에 음행은 필경 타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간음’은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성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죄가 됩니다. 하나는 욕망에 대한 제어력을 잃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으로 본다면 간음은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일이지만, 배우자에게는 배신과 배반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외도는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음행과 간음에 비유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이라는 면에서 음행과 유사합니다. 참된 종교는 자신을 벗어나는 것인데, 우상숭배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렇기에 우상숭배는 온갖 타락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신전에 창녀와 남창들이 있었고, 여러 가지의 부도덕한 일들이 종교의 이름을 행해진 것이 그 예입니다. 또한 우상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과 배반이라는 점에서 간음과 닮았습니다. 외도가 배우자에게 “너는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행동인 것처럼, 우상숭배는 하나님에게 “당신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전하고 온전한 사랑을 기도합니다. 그런 태도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4 thoughts on “예레미야서 3장: 영적 음행과 영적 간음

  1. 일곱번에 일흔번까지도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반복해서 우상숭배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지만 끝내는 주님을 떠나 멸망해 버린 북 이스라엘을 거울삼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기는 커녕 우상숭배에 더 빠져버린 유다에 경고하시는 주님의 심경을 생각해 봅니다.
    죄의 씨를 품고 사는 우리들의 한계를 생각하며 매일 겸손히 주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므로 제자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되새깁니다, 오늘도 주님의 길에서 언행이 옳바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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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상을 섬기는것은 마치 내가 나은 자녀들이 나를 부정하고 동네 친구의 부모가 자기들의
    부모라고 주장하는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연히 저주 받아야할 죄를 주님께서 지시고 용서
    하시는 사랑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패망을 뼈저리게 느끼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항상 고백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영생의 소망을
    세상에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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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결한 신부”로서,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욕구와 만족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닌,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삶.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살아야 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요즘 하나님외에 다른 것들에 많은 시선과 에너지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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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감정 가운데 가장 아픈 감정이 배신감일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회복이 되는데 배신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감정보다 더 깊은 곳, 아마 우리의 영혼에까지 침투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반역을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간음에 비유했습니다. 간음은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는데 창녀라는 단어는 당시의 청중과 우리가 같은 느낌으로 들었을지 궁금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말씀하시면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에게 특별히 북쪽을 향해 돌아오라고 전하라 명하십니다. “오직 네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13절)”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멸망한 이스라엘, 여로보암을 따라 악행을 저지른 왕들이 대를 이어 군림한 이스라엘에게 먼저 손을 내미십니다. 갈라졌던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끄러움을 요로 삼고, 망신거리를 이불로 삼겠다는 각오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배신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배신까지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하나님이 손수 보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돌이키는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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