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2장: 요시야의 개혁

해설:

아몬 왕이 구테타로 살해 당했을 때, 유다 백성은 반란 세력을 제압하고 여덟 살의 세자 요시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그는 3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는데, 히스기야 왕이 다윗을 닮은 왕이었다면 요시야는 모세를 닮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유다 왕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인정 받습니다(1-2절). 

왕이 된 지 18년째 되는 해, 그는 사반 서기관에게 명령하여 성전을 보수하게 합니다. 요아스 왕이 했던 것처럼(왕하 12장) 그는 제사장들 몫을 제외한 모든 헌금을 공사 인부들에게 맡겨 성전을 수리하게 합니다(3-7절). 성전을 수리 하던 중에 인부들은 책을 하나 발견합니다(8-9절). 그것은 율법책으로서 왕들에 의해 전해져 왔는데,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 기간 동안에 유실되었습니다. 사반 서기관이 그 책을 왕에게 읽어 주자 요시야는 신하들을 보내어 주님의 뜻을 여쭙게 합니다(10-13절). 

신하들은 훌다 예언자를 찾아갑니다. 당시에 예레미야나 스바냐 같은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여성 예언자인 훌다를 찾아간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도 외곽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신하들이 그를 찾아가자 훌다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유다 백성이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14-17절). 율법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지키지 않으면 심판으로 징계하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훌다는 요시야 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도 전합니다. 그가 훌다의 예언을 듣고 심히 통회하며 회개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이 요시야가 살아 이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18-20절). 신하들은 왕에게 돌아와 훌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모두 전합니다(21절).

묵상: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을 가졌고 물질에 의존해 살아갑니다. 육신과 물질에 의지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의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 혹은 ‘물질’이 필요합니다. 성찬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가시적인 상징”(visible sign of invisible grace of God)이라고 정의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게 하는 건물이며, 제사장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수단들(성경, 성전, 성직자, 성례전 등)을 바로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만나게 하는 통로로 선택 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마음은 그런 것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요시야 왕이 성전을 보수한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정성 때문입니다. 므낫세와 아몬 왕이 성전을 소홀히 하고 율법책을 하찮게 대하여 분실하게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 때문입니다. 그 정성이 지나치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우상으로 만들게 되고, 그 정성이 흐려지면 거룩한 것을 하찮게 여기게 됩니다. 우리가 설 자리는 두 극단 사이의 중간에 있습니다.  

4 thoughts on “열왕기하 22장: 요시야의 개혁

  1. 하나님에 대한 요시아 왕의 자세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설정을 해야 옳은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을 접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성전 수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주님 뿐만 아니라 보이는 상징에 대한 그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외형에 지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홀하지도 않는 정성과 성실로 주님앞에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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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일 아침 말씀을 바로 깨닫도록 허락하신 은총을 감사합니다. 영광을 드립니다. 모든것을 뒤로
    하고 우선 성전인, 몸과 마음과 혼이 또한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주님앞에서 참신하고 바로
    서 있는지 성찰 하기를 원합니다. 깨어있어 십자가앞에 무릎 끓고 애통 하며 회개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녀들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이웃과함께 간구 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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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요시야왕은 젋었을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성전을 보수하고, 하나님 말씀 앞에 살았던 것을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무엇 보다도 하나님 앞에 진실된 사람이었던것 같습니다. 저도 항상 진실케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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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요시야 왕의 통치가 신선함을 안겨 줍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한다는 구절이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이고, 모여서 같이 제사를 올리고, 하나님이 베푸신 일들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움추려졌던 마음이 펴지는 것 같습니다. 팬데믹의 시간은 ‘비상’ 체제의 시간입니다. 팬데믹 초기엔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 등장하더니 2년이 되오는 지금 뉴노멀의 ‘뉴’는 없어진 느낌입니다. 모든 질서가 비상체제로 돌아가면서 부터 우리 마음은 옛것과 새것을 동시에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일상이 지워진 것이 아쉬워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수록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 하는 결의도 같이 생겼습니다. 교인들에겐 예배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가장 큰 변화였을 것입니다. 현장 예배의 대안으로 온라인 예배를 하게 되었지만 이는 곧 예배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필요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식구들이 같이 모일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은 관계의 한시성, ‘나와 너’의 인연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게 만들었습니다. 팬데믹처럼 충격적인 비상사태라고 해도 모든 ‘악’을 중단 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숨어 있던 모순과 함정까지 드러나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악하다는 좌절을 안기기도 합니다. 요시야가 율법책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충격을 받았을지 상상을 해봅니다. 얼마나 굽은 길을, 얼마나 오래 걸어왔는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훌다 예언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또 어떤 충격을 받았을지 상상해 봅니다. 뉘우치는 마음으로 조상과 백성을 대신해 회개하는 그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감사한만큼 살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백성의 길을 바로 잡겠다는 다짐도 했을 것입니다. 옛것과 새것을 같이 보게 하시고 그 안에 깃든 주님의 능력을 사모하게 하시는 주님, 한겨레의 큰 제사날 한가위 추석이 막 지났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 몸소 겪는 작은 사건에서부터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촌의 미래까지 다 아시는 주님, 하루를 살아도 요시야 왕의 뉘우치는 마음과 겸손한 모습 (19절)을 배우게 하소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의 염원이 요시야를 닮는 우리의 소망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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