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9장: 믿음과 불신의 차이

해설:

산헤립 왕의 신하들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전해 들은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하는 한편, 부관들을 이사야에게 보냅니다. 그들은 이사야에게 찾아가 왕의 말을 전하면서 유다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청합니다(1-4절).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산헤립의 신하들이 모독하는 말을 들으셨다면서 하나님 자신이 응징하겠다는 예언을 전해 줍니다(5-7절). 

그 때 산헤립은 에티오피아의 왕이 자신들을 치기 위해 오고 있다는 정보를 접합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군이 당도하기 전에 유다를 항복시켜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신을 보내어 유다 왕 히스기야를 더욱 심하게 압박합니다(8-13절).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편지를 성전으로 가지고 들어가 펼쳐 놓고는 하나님꼐서 구원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그는 주님만이 홀로 참된 신이라는 사실을 보여 달라고 기도합니다(14-19절). 

이 때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알리면서(20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산헤립의 교만과 오만을 꾸짖으십니다. 그가 그동안 이룬 성취는 모두 그가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교만이 극에 달하였고, 하나님은 그로 인해 그를 징계하실 것입니다(21-29절).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도 말씀을 주십니다. 그분은 유다 백성이 산헤립에게서 구원을 얻을 것이고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30-34절).

그 날 밤, 앗시리아 군 진영에 큰 혼란이 일어나 십팔만 오천 명이 죽음을 당합니다. 성서 저자는 주님의 천사가 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일로 인해 산헤립은 큰 충격을 받고 니느웨로 돌아갔고, 얼마 후에 왕자의 난이 일어나  살해 당합니다.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주역들은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고, 둘째 아들 에살핫돈이 왕위를 잇습니다(35-37절).

묵상: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살아가는 것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 깊은 생각까지 다 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큰 계획 안에서 숨 쉬고 움직입니다. 우리는 일직선 시간의 흐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과거는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원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보십니다. 우리에게 미래 일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다스리십니다. 

믿는다는 말은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그분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믿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와 결정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이루면 교만해지고, 이루지 못하면 패배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산헤립이 거대한 성취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그는 에고를 무한정 부풀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성취에 대해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진실로 믿는 사람은 무엇을 성취했을 때 그 공을 하나님께 돌리고 조용히 물러섭니다. 자신의 노력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조용히 머물러 앉아 주님의 뜻을 찾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히스기야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4 thoughts on “열왕기하 19장: 믿음과 불신의 차이

  1. 주변 나라들을 흡수하여 영토를 확장히면서 오만 방자해진 산헤립과 모든 일을 주님앞에 내려놓고 겸손이 기도하는 히스기아 왕의 태도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내 삶의 주권을 주님께 맡기고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주님의 계획에 따르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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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 살고 있는 내 모습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삶을 살고 있는지 혹은 믿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이켜 봅니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나의 승패나, 잘하고 못하고와 관계 없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과 모든 것들을 선하게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히스기야왕처럼 겸손히 주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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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히스기야 왕은 산헤립이 하는 소리로 인해 절망합니다. 여호와를 조롱하는 말을 듣고 분노와 슬픔에 휩싸여 베옷을 입고 성전 안에 거합니다. 이사야에게 보낸 사신들에게서 보고를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산헤립에 대해 하신 말씀과, 히스기야에게 하신 말씀이 둘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절망에 가득찬 히스기야의 심령이 위로를 받을 뿐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앗시리아 군대가 전멸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당신을 위해, 그리고 다윗을 위해 하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앗시리아 왕이 자기의 힘을 자랑하며 이스라엘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모욕적인 언사를 할 때 그의 마음 속엔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승승장구하는 군사력을 믿을 뿐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고 백성을 통치하는 자기의 능력을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계속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산헤립에게, “나 여호와가 오래 전에 이 일들을 결정했고 옛날에 이 일들을 계획했다는 것 (25절)”을 상기시키십니다. “다 알고 있다 (27절)”는 말씀 한 마디에 사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히스기야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들에서 저절로 자란 곡식을 두 해 먹고 삼 년째 되는 해에는 심고 거두며 가꾸어 그 열매를 먹을 것 (29절)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을 때 히스기야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의 원리에 맞춰 당신의 인도하심을 말씀해 주시는 이 귀절이 오늘 내게도 위로가 됩니다. 저절로 난 곡식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내 손으로 일구어 거두는 곡식 또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실로 다 알고 계시는 분이요,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교만은 이 사실을 잊어 버리게 만듭니다. 나의 계획과 염원은 시작일 뿐, 도착점은 다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믿음의 목표는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나를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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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피할수없는 위험과 목숨을 잃을 상황이 다그쳐 오더라도 항상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잊지않고 온전히 주님앞에 무릎을 끓는 태도를 원합니다. 허둥대고 조급하지않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기도와 조언을 부탁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성삼위 하나님과 깊고 긴밀한 사귐을 갖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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