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6장: 우상숭배의 속성

해설:

유다 왕 아하스는 16년 동안 유다를 통치 했는데, 그는 유다 역사 상 가장 악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입니다. 그는 이방 종교의 풍습을 따랐는데, 율법에서 엄히 금한(신 18:10) 인신제사를 행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외면하고 산당과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을 섬겼습니다(1-4절). 

그가 통치하는 동안에 시리아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 합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에게 성전과 왕궁에 있던 보물을 조공으로 바치고 도움을 청합니다. 이 시기에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 했는데, 그는 왕에게 앗시리아의 도움을 청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사 7-9장). 하지만 아하스는 이사야의 예언을 듣지 않았고, 앗시리아는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을 무찌르고 다마스쿠스로 진군하여 시리아 제국을 멸망시킵니다(5-9절).

전쟁이 끝난 후,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 왕을 만나러 다마스쿠스로 갔다가 그곳에 세워진 제단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는 그 제단의 모형과 도본을 그려 예루살렘에 있는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내어 그와 똑 같은 제단을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그 제단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습니다. 제단이 완성되자 그는 모든 제사를 새로운 제단에서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때에만 솔로몬 성전의 제단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합니다(10-18절). 그가 죽은 후에는 히스기야 왕이 대를 잇습니다(19-20절).

묵상:

아하스 왕은 율법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나안의 토속 신앙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일까지 행합니다. 그는 앗시리아가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을 무찌르자 앗시리아가 섬기는 신이 제일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단과 동일한 제단을 예루살렘에 짓게 합니다. 그리고 솔로몬 성전의 제단은 점치는 일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이로써 그는 앗시리아의 신을 예루살렘에서 섬기고 하나님의 성전을 주술의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이렇듯, 우상숭배는 현실에서의 복과 화를 직접 신과 연결시킵니다. 신에게 잘 하면 현실에서 복을 받고, 잘못 하면 화를 입는다고 믿습니다.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해서는 가장 강한 신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자식의 생명이라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제단을 크고 화려하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물도 풍성히 바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거대한 신상을 짓기도 합니다. 자신들은 어떻게 살아도 상관 없고 다만 신을 즐겁게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종교는 부흥하는 반면 종교인들은 부패하고 타락합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속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니 우상숭배와는 거리가 멀다’고 안심하지 말 일입니다. 아하스 왕이 솔로몬의 성전을 주술의 도구로 전락시켰듯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은 우상을 섬기듯 하나님을 대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열왕기하 16장: 우상숭배의 속성

  1. 아하스 왕의 행적을 통해 그 당시 어떻게 우상 숭배가 이루어졌는지를 배우게 되며 토속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시의 풍습을 보며 인간의 저변에 깔려있는 기복신앙을 생각해봅니다, 한국에서 기복신앙의 대부였던 목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며 그 많은 시람들이 그에게 열광했던 일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토속신앙으로 빠지지 않게 늘 기도하게 이끌어 주시고 눈으로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참 성전에서 주님을 만날수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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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이방 신 들과 같이 믿어 왔습니다.
    옳고 바르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옳게 믿는 믿음이 삶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매일아침 허락하신 말씀이 그날의 삶에 이정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이웃과 더불어 발길의 등 이시고 저희들의 가는길에 빛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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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을 알라딘 램프의 지니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우상화시키고 섬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나의 부족한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영적인 안정감의 통로로 인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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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제는 주님께 완전하게 순종하는 것을 막는 나의 어리석음이 마치 ‘견고한 요새’ 와도 같은 것을 놓고 묵상했습니다. 나의 교만과 고집, 불신앙, 두려움, 이기심 등이 주님과의 사귐을 훼방합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로 시작하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노랫말이 가슴을 크게 쳤습니다. 언제고 또 들어도 큰 울림이 있습니다. 연인을 향한 노래지만 하나님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나를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선 너무도 쉽게 경배의 대상을 바꾸는 아하스에게서 견고한 요새와는 정반대의 어리석음을 봅니다. 유다의 왕 아하스는 다윗의 자손 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길을 버립니다. 당대 최고의 강대국 앗시리아가 북이스라엘과 아람 (시리아)의 연합군을 물리친 덕분으로 유다는 살아 남으나 독립국가의 자유는 포기해야 했습니다. 아하스는 성전과 제사를 다 바꿔버립니다. “그가 이런 일을 한 까닭은 앗시리아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 (18절)”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원칙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이방 종교와 풍습을 기꺼이 따릅니다. 앗시리아의 속국으로 우상 숭배를 새로 배운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던 때에도 이미 여호와 아닌 다른 신을 자기 마음대로 섬겼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 경고를 현실에서 경험한 우리는 교회의 번영이 교회의 타락으로 변질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내 속에 내가 많다는 것은 참된 나는 없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것 그래서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참 나가 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숨을 쉬듯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당연한 것…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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