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0장: 때로 이해할 수 없는…

해설:

아합에게는 죽은 두 왕 아하시야와 여호람 외에도 일흔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서도 아합이 어떤 군주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후는 사마리아에 있는 고위 관리들에게 여호람의 죽음을 알리면서 아합의 아들들 중 하나를 왕으로 세운 후에 자신과 맞서라고 전합니다. 고위 관리들이 예후를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왕으로 섬기겠다고 응답 합니다. 그러자 예후는 일흔 명의 왕자들을 죽여 그 머리를 이스르엘로 가져 오라고 명합니다. 그들이 그대로 하니, 예후는 그 머리들을 성읍 어귀에 두게 합니다. 그는 자신이 엘리야의 예언을 따라 행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예후의 가족과 관리들을 모두 살해합니다(1-11절).

예후는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로 향합니다. 그 길에 여호람과 함께 살해 된 유다 왕 아하시야의 친족들을 구덩이에 넣어 죽입니다(12-14절). 유다 왕실과 아합 가문이 결혼을 통해 결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위 관리 중 하나인 여호나답은 사마리아로 오고 있던 예후를 마중 나옵니다. 예후는 그를 자신의 병거에 싣고 부관으로 삼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예후가 하려는 일들을 돕습니다(15-17절). 

사마리아에 이르러 예후는 자신이 아합과 이세벨보다 더 열심으로 바알을 섬기겠다고 공표한 후에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은 모두 신전에 모이라고 명합니다. 예후는 여든 명의 군인들을 신전 바깥에 대기시킨 후, 번제가 끝나면 모두 도륙 하라고 명합니다. 번제가 끝나자 군인들은 신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해 했고, 우상과 제단과 신전을 불태우고 헐어 버립니다(18-27절). 이렇게 예후는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에서 뿌리 뽑았는데, 저자는 그의 개혁이 철저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럼에도 예후는 왕권이 그의 자손 4대까지 이어지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습니다(28-31절). 그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왕실은 3대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암살과 모반으로 이어졌습니다.

예후는 28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에 이스라엘은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합니다(32-36절).

묵상:

예후는 ‘인간백정’이라고 불릴 만큼 잔인무도한 사람입니다. 그는 엘리야의 예언을 성취한다는 명분 하에 수 많은 사람들을 살해합니다. 살해하는 방법도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시에 그런 야만적인 행위가 흔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예후의 행위는 인간의 잔인성의 끝을 보게 해 줍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고, 바알 종교에 대해 그가 행한 피비릿내 나는 조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잘 했다고 인정해 주셨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악은 더 큰 악으로 뿌리 뽑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런 방법 밖에 없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예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다만, 비극은 더 큰 비극을 불러 오고, 악은 더 독한 악을 낳으며, 죄는 더 무서운 죄를 불러 온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것이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거듭 보게 되는 인간성의 패턴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때로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의 인생사를 살면서 우리가 할 일은 더욱 힘써 의롭고 선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때로 악을 뿌리 뽑기 위해 더 큰 악을 사용하기도 하시지만 보통 사람들이 행하는 작은 선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기를 더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3 thoughts on “열왕기하 10장: 때로 이해할 수 없는…

  1. 오늘 읽는 말씀속에 주시는 뜻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사람의 머리로 주님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나치가 그 많은 유태인들과 타 민족들을 대량학살며 민족주의를 주창한 사건들과 비교해보며 인간의 악이 얼마나 잔인할수있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 끔직한 사건들보다는 아주 작은 일들에서 내 자신을 가다듬어 주님의 길을 따르는 믿음이 자리를 잡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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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말씀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유한한 인생입니다. 조물주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여리석고
    미련한 짓이라고 고백 하면서도 어쩐지 아쉬운 공허감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발에 등불
    이요, 길에 빛이 입을 인정하고 징검다리를 건너 뛰듯이 오늘의 말씀을 이웃과 더불어 뛰어 넘어
    갑니다. 십자가 앞에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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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아침입니다. 선을 행하면 상 (구원)을 얻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전제가 언제나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뿌려진 모든 씨앗이 저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싹을 틔우고 자라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선과 악이 상대적 가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기대한 결말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의도나 바른 행실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철저한 계획과 실천도 예측했던 모습의 미래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을 통해 인간 세상의 다양한 레이어를 봅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제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똑같은 욕망과 필요를 놓고 씨름합니다. 불교에서는 고난으로 가득찬 인생살이에서 깨우침을 얻어 해탈하는 것이 최종의 목표라고 말합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행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상태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 예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완전해진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아직도 멀었지만, 늘 하는 일입니다. 예후는 거짓말과 협박을 동원해 아합 가문을 멸했습니다. 바알 신전을 변소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혁은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저지른 죄의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지 않았다는 역사의 평가를 받습니다. 주님께 나가는 일은 이처럼 멀고 아득한 일인가 봅니다. 주님이 내게로 와 주시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못할 길인가 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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