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장: 능력을 구하는 엘리사

해설: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이 되었을 때, 엘리야는 엘리사를 데리고 길갈을 떠납니다. 길을 가던 중에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신은 베델로 가야 하니 그는 거기에 남아 있으라고 이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고집을 부려 엘리야를 따라 베델까지 갑니다. 베델에 있던 예언자 수련생들은 주님께서 엘리야를 불러 가시려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1-3절). 베델에서 일을 마친 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신은 여리고로 올라가야 하니 그는 베델에 남아 있으라고 이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이번에도 고집을 부려 엘리야를 따라 갑니다. 여리고에 있던 예언자 수련생들도 엘리야가 부름 받을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4-5절). 

그곳에서 볼 일을 마친 후 엘리야는 요단 강으로 향합니다. 이번에도 엘리야는 엘리사를 떼어 놓으려 하는데, 엘리사는 고집하여 요단 강까지 따라 갑니다. 예언자 수련생 쉰 명도 같이 따라갑니다.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말아서 강물을 치니 물이 갈라져 두 사람이 요단 강을 건너고 수련생들은 그 자리에 남습니다(6-8절). 요단 강을 건넌 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을 갑절로 받기 원한다고 답합니다. 엘리야는 주님께서 자신을 데려 가는 모습을 보게 해 주신다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 때 회오리 바람이 불면서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 엘리야를 데려갑니다. 엘리야가 사라진 것을 보고 엘리사는 겉옷을 찢으면서 슬퍼합니다. 그는 여리고로 돌아가기 위해 요단 강에 이르러 엘리야가 벗어놓고 간 겉옷으로 강물을 치면서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그러자 요단 강이 갈라졌고 엘리사는 강을 걸어 여리고로 넘어 옵니다. 수련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엘리야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내렸다고 기뻐합니다(9-15절). 그들은 엘리야가 실종된 줄 알고 사흘 동안 찾아 헤매지만 찾지 못합니다(16-18절).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곳의 물 사정에 대해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엘리사는 새 대접에 소금을 담아 물의 근원에 뿌리며 치유를 명합니다. 그 때로부터 물의 성분이 바뀌어 다시는 그 동네에서 물로 인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19-22절). 얼마 후, 엘리사는 베델로 올라갑니다. 가는 길에 어린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그를 놀립니다. 엘리사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 아이들을 저주 했고, 그러자 두 마리의 곰이 나와서 그 아이들을 찢어 죽입니다(23-24절). 그는 그곳에서 갈멜 산으로 갔다가 사마리아로 돌아갑니다(25절).

묵상:

엘리야는 주님의 부름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느끼고는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어서 베델과 여리고로 내려 갑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그 마지막을 위해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베델로 가면서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그곳에 남아 있으라고 이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고집을 부려 엘리야를 따라 갑니다. 여리고로 갈 때도 그랬고, 요단 강을 건너 갈 때도 그랬습니다. 엘리야는 거듭 엘리사를 떼어 놓으려 했고, 엘리사는 죽자고 엘리야를 따라 갑니다. 

엘리사가 집요하게 엘리야를 따라 다닌 이유는 9절(“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에 나와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을 가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엘리사를 떼어 놓으려 한 이유도 짐작이 됩니다. 엘리야에게 엘리사는 아직 미덥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그에게 주어질 때 그 능력을 올바로 사용할만한 그릇이 아직 되지 못했다고 본 것입니다. 

엘리야는 원하지 않았지만, 엘리사는 결국 엘리야가 들림 받는 것을 보았고, 큰 능력이 그에게 임합니다. 그는 엘리야의 외투를 말아 쳐서 요단 강을 갈랐고, 여리고의 샘물을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오용하는 큰 실수를 범합니다. 그의 외모를 두고 놀리는 어린 아이을 주의 이름으로 저주한 것입니다. 그러자 숲에서 곰 두 마리가 나와서 마흔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찢어 죽입니다. “찢어 죽이다”라고 번역된 말은 “흩어 놓았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를 놀리던 아이들이 곰을 보고 놀라 뿔뿔이 흩어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찌 번역하든, 아이들의 조롱에 대한 엘리사의 반응은 지나칩니다. 그는 아직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선하게 사용할 그릇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그런 능력이 임하지 않게 하려고 그를 떼어 놓으려 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능력보다 성품입니다. 성품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큰 권력은 흉기가 되고 많은 재산은 타락의 원인이 됩니다. 영적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어진 그릇입니다. 그릇이 잘 준비되면 능력은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능력이 주어지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4 thoughts on “열왕기하 2장: 능력을 구하는 엘리사

  1.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 대 선지자가 되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한 그의 성품을 통해 잘못된 기적도 일어나는 실예를 배웁니다, 사람들은 흔히 주님의 능력을 받아 무엇을 해 보려는 야심을 갖게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아무 능력이 없어도 좋으니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기도하며 숙련하게 도와주십시요, 사랑의 성품이 내 안에서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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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엘리야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본인은 물론 엘리사와 다른 지역의 예언자들도 알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처럼 숨을 거두는 것이 아니고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엘리야의 명성이나 권위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단 강에서 물결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나게 하는 이적을 보며 모세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엘리야를 모세와 동격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승이 엘리사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자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의 두 배를 구합니다. 학자들은 이 요청이 장자의 권리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더 많이, 두 배로 달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를 장자로 여겨 장자의 몫을 달라는 뜻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번역은 두 배로 달라는 표현 대신 스승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다 “I want to be a holy man just like you” 라고 메시지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어린 아들이 “나도 커서 아빠처럼 되고 싶어’ 말하는 것처럼 읽으면 장자권의 해석이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으로 강물을 양쪽으로 가르는 장면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정통 후계자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사가 소금으로 물을 깨끗하게 고친 이야기, 마흔 두명의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로 보는 견해도 많지만)들이 엘리사를 놀리다가 죽거나 크게 부상을 입는 일 등은 다 엘리사의 권위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왕들의 시대는 예언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왕에게 하나님의 길을 말하고, 바르게 가도록 어드바이스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지만 모두 잘 감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서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대를 저버리고 흐지부지 살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을 이어받은 후계자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크리스찬은 그리스도를 자기 이름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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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종종 나의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그대로 읽고 말씀에 감사하며 언젠가는
    이해할수있는 영감을 소망합니다. 매일 아침 허락하시는 말씀을 일상의 지표라고 생각하고
    순종하며 주님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옳게 이해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십자가 사랑의 향기를 세상에 풍기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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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엘리야와 엘리사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엘리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죽음이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심정이…. 동시에 엘리사는 믿고 의지했던 스승님과의 헤어짐이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래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이 있으면 두렵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능력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으나, 사람의 신뢰는 가질 수 없습니다. 그 능력이 없으면, 사람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능력이 목적이기 때문이지요.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진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흘러넘쳐서 때로는 능력으로, 사랑으로, 섬김으로 사람들에게 선한영향력을 보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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