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장: 탐욕의 속성

해설:

전쟁으로부터 자유롭던 얼마 뒤의 일입니다. 아합은 사마리아 왕궁 근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사서 정원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나봇을 불러 충분한 값을 쳐 줄 터이니 그 포도원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나봇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온 땅이므로 양도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아합은 나봇의 거절로 인해 심히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이세벨은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면서 그를 위로합니다(1-7절). 

이세벨은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에게 아합의 이름으로 밀서를 전달합니다. 거짓 증인 두 사람을 내세워 나봇을 고발하여 투석형으로 처형 하라는 것이 그 밀서의 내용이었습니다(8-10절). 원로들은 아합이 두려워서 밀서에 써 있는 그대로 행합니다(11-14절).

이세벨은 아합에게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포도원을 차지 하라고 이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으로 내려가려 할 때,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아합을 만나러 가라고 하십니다. 그는 아합을 만나서 그의 가문을 여러보암과 바아사처럼 쓸어 버리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15-24절). 주로 이세벨의 충동질이 배후에 있기는 했지만 아합은 악행에 있어서 비교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심했습니다(25-26절).

그동안 아합은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보기에도 자신의 악행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회개의 표시로 옷을 찢고 맨몸에 굵은 베 옷을 걸치고 금식을 합니다. 아합이 한 동안 그렇게 행하자 주님께서는 그의 회개가 진실하다는 사실을 보시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27-29절).

묵상:

아합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탐욕의 구덩이를 봅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에게는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토 전체가 그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봇의 포도원에 탐을 냅니다. 그것이 탐욕의 속성입니다. ‘탐욕’은 ‘더 가지려는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만족과 안식을 얻기까지 채워지지 않습니다. 탐욕은 하나님을 떠나서 생겨난 내면의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려는 몸부림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돈이든, 땅이든, 쾌락이든, 유명세이든, 성공이든,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사람은 내면적인 허기증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허기증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채워 주면 잠시 만족하지만 그 후에는 더 강한 만족을 추구합니다.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더 갈증이 심해지는 것처럼, 하나님 아닌 것으로 만족을 추구하면 결국 그 탐욕에 사로잡혀 패망하게 됩니다. 아합 가문의 멸망은 결국 그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이요, 그의 탐욕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무저갱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4 thoughts on “열왕기상 21장: 탐욕의 속성

  1. 인간 본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아합과 이사벨을 통해 우리안에 있는 탐욕을 상기해 봅니다, 물질이나 명애 또 쾌락으로 하나님이 떠난 자리를 메꾸면서 더 갈급해하는 우리의 본성을 상기하며 내 자신을 드려다보는 계기가 됩니다.
    잠언서에서 주시는 말씀같이 너무 가난하지도 않고 또 너무 부해 주님을 거부하지 않을 만큼 꼭 필요한 물질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탐욕으로 세상사에 매몰되지않고 하늘나라를 향한 발걸음이 멈추지 않게 기도하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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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탐욕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낳는다는 말씀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허락하신 축복으로
    감사 하고 자족 하며 베프는 삶이 필요합니다. 성읍의 원로들 같은 비굴한 행동을 물리치고
    나봇과 같이 주님이 허락하신 기업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헛되고
    짧은 인생에 지나치게 연연 하지말고 귀하고 영원한 말씀안에서 이웃과 함께 오늘을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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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이 “재미”있고 또 연구할 재료가 늘 풍부하다는 생각을 확인시키는 본문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기어코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아합과 이세벨의 술수는 이중 불의 (double injustice)입니다. 여호와는 아합에게 “너는 나봇을 죽이고 그의 땅을 빼앗았다 (19절)”고 엘리야의 입을 빌어 말씀하십니다. 시민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는 불의를 행하고 이어 그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나봇이 죽은 뒤 유산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들들까지도 죽였을 것입니다. 공권력의 남용을 봅니다. 어느 개인이 옆집 이웃을 모함해 부당한 이권을 취득하는 차원보다 심각합니다. 왕이 ‘치사하게’ 백성의 소유, 그것도 대대로 내려온 포도밭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지 못해 속이 상해 있는 모습도 볼썽 사나운데 여왕이 사악하게 일을 만들어 왕의 소원을 풀어 주니 더더욱 화가 납니다. 이 때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이 벌을 예고하십니다. 독자로서 어느 정도 화가 풀리는 듯 합니다. 그러면 그렇지…저런 나쁜 왕을 그대로 두시지야 않겠지…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아합이 엘리야의 말을 듣고 회개를 합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갖지 못해 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웠던 아합이 이번에는 엘리야의 말에 양심이 찔려 자기 옷을 찢고 베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음식도 먹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을 새깁니다. 이 모습을 여호와는 “내 앞에서 겸손해진 것”이라고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아합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재앙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결을 수정하십니다. 사실 엘리야가 전하는 말씀은 아합만 아니라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아합 집안의 남자란 남자는 다 죽이겠다 (21절)”는 엄청난 심판입니다. 구약 성서 곳곳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이처럼 과하게 무섭고, 전혀 공평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아합이 공권력을 과시하는 것이라면 여호와의 진노도 권력의 표현입니다. 이 점이 불편합니다. 다행히(?) 아합은 회개하고 여호와는 심판을 늦추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비의 죄를 아들이 책임지는 부당함으로 보입니다. 선대의 왕이 죄를 지은 것을 후대에서 심판 받는 구조가 생경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대에서 여호와를 순종하며 잘 살았더라도 아들은 곁길로 나간 경우도 허다합니다. 열왕기상에서 보는 역사는 불순종의 세월이 쌓여 이스라엘의 분열과 고난이 되는 결과입니다. 심판이 늦춰질 뿐 철회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심판이란 아예 없는 것처럼 사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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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탐욕으로 물든 아합왕은 악한 인생을 삽니다. 그런 그가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진중히 듣고 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은 그 진실한 회개의 모습을 보시고, 그를 향한 재앙을 연기하십니다. 누구에게나 회개의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중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습을 뉘우칠때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열려 있음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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