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장: 갈멜의 하나님과 호렙의 하나님

해설:

아합은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을 이세벨에게 알립니다. 이세벨은 엘리야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면서 자신의 신에게 맹세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엘리야는 유다의 브엘세바로 간 다음, 그곳에 시종을 남겨 두고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 깊은 곳으로 몸을 숨깁니다. 그는 어떤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1-4절). 기도하다 지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일어나 먹으라면서 그를 깨웁니다. 일어나 보니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음식을 먹고 다시 잠에 듭니다. 얼마 후 천사는 다시 그를 깨워 음식을 먹게 한 후, 밤낮 사십일을 걸어 호렙 산으로 가게 합니다(5-8절).

참고: 로뎀나무

호렙 산의 어느 동굴에서 하룻 밤을 자고 난 후,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제단을 헐어버리고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고 이제 자신 혼자 남았다고 말합니다. 그 말에 숨겨진 의미는 “이렇게 되는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라는 항의입니다(9-10절). 하나님은 당신의 임재를 보여 주겠다면서 엘리야에게 바깥으로 나가 지켜 보라고 하십니다. 

엘리야가 동굴 입구에서 지켜 볼 때,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산이 쪼개지고 바위가 부셔집니다. 엘리야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보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에는 지진과 불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직감한 엘리야는 두려움에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쌉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부릅니다. 엘리야는 앞에서 답한 그대로 다시 하나님께 답합니다(11-14절). 

하나님은 그 불평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으시고 엘리야가 할 일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다마스쿠스로 가서 하사엘을 시리아 왕으로 세우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라고 하십니다. 또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예언자로 세우라 하십니다. 그들은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도구로 쓰실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심판 후에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놓을 것이라고 하십니다(15-18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엘리야는 먼저 엘리사를 만납니다. 그는 밭에서 겨릿소(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열두 겨릿소가 밭을 갈고 있었다는 말은 엘리사가 대농이었다는 뜻입니다. 엘리야가 그의 곁을 지나가면서 외투를 던지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부름으로 알고 엘리야에게 달려 와 부모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그 때 엘리야가 한 대답(20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자기가 끌던 소 두 마리를 잡고 그들이 메고 있던 멍에를 땔감으로 삼아 고기를 삶아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엘리야를 따라 나섭니다. 엄청난 재산을 버려 두고 예언자의 길로 나선 것입니다(19-21절).

묵상: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드라마틱한 승리를 맛보았습니다. 그는 아합과 이세벨에 대해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승리를 얻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세벨은 전보다 더 강하게 그를 압박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유다 남단의 광야로 도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호렙 산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기력을 회복하게 한 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폭풍과 바람, 지진과 불이 아니라, 미세한 음성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늘 갈멜 산에서 행하신 것처럼 행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조용히, 보이지 않게, 드러나지 않게, 천천히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때로 침묵 하시는 것 같고, 때로 무력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갈멜 산의 하나님’을 더 좋아 합니다. 하나님이 늘 그렇게 역사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하지만 더 자주, 우리의 하나님은 ‘호렙 산의 하나님’이십니다. 조용히, 차분히, 드러나지 않게, 천천히, 말씀을 통해 역사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 눈 뜨지 못하고 그분과 함께 일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향방 없이 서성대고 방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거듭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9절, 13절)고 물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갈멜 산에서 처럼 역사해 주시기를 구하다 보니, 엘리야는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우울의 늪에서 불평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눈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17:24)이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되어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4 thoughts on “열왕기상 19장: 갈멜의 하나님과 호렙의 하나님

  1. 갈멜산에서 불같이 나타나셨지만 때로는 조용하고 잔잔히 나타나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회상하며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투덜대는 엘리야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 내 뜻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세상사를 보며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내 믿음이 흔들릴 때도 주님은 내 곁에 계신다는 걸 잊지않고 주님과 교통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즉흥적으로 엘리야를 따르는 엘리사의 믿음을 배워 주저함없이 주님을 따르는 믿음이 내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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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850 명의 이방 예언자를 죽인 용사가 순식간에 이처럼 비겁 해진 모습이 처절합니다. 우울증
    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읽고 있습니다. 항상 깨어있어 마음과 피부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Immanuel 하나님의 약속을 꼭 붙잡고 세미한 음성을 듣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헛된 부귀영화를 쫓지않는 남은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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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말씀은 제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깜짝놀랐습니다. 갈멜산에서의 놀라운 경험 후에, 더 강하게 몰아치는 혼돈과 어려움이 저를 곤고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위로해주시고, 혼자가 아니라 7천명이 함께 하고 있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센 풍랑이 오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내가 모르는 중보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됩니다. Have mercy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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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서 여호와의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바알 대 야훼의 싸움에서 바알은 무참하게 깨졌고 바알의 예언자들 또한 엘리야의 손에 죽었습니다. 아합에게서 엘리야의 승리를 전해 들은 이세벨은 분노에 차 맹세를 합니다. 복수의 의지를 다지는 이세벨이 무서워진 엘리야는 도망을 갑니다. 이세벨 여왕이 “무서워서” 도망치는 엘리야를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더 한 일도 해냈는데, 가뭄을 해결하는 비도 내리게 했는데 이세벨의 저주가 뭐라고 저리 두려워할까…로뎀 나무 밑에서 잠을 자는 엘리야를 천사가 와서 깨우고 먹을 것을 줍니다. 익숙한 장면입니다. 이 귀절을 여러 번 읽었기 때문에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경험하기 때문에 익숙합니다. 시내 산의 한 동굴 속에서 여호와와 만나는 장면도 낯설 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심리치료 기록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만한 그의 내면의 세계가 오늘 본문입니다. 정상까지 올라갔던 승리감은 또다시 두려움으로 변합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4절) 데까지 내려간 그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다시 길을 떠납니다. 밤낮으로 걸었다는 표현은 잠도 안 자고 초인적인 힘으로 걸었다기 보다 매일, 온전히 하루 씩 걸어 ‘살아남았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리고 그는 동굴에서 하나님의 질문을 듣습니다.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What are you doing here? 엘리야는 같은 질문을 두 번 듣습니다. 똑같은 답을 두 번 합니다. 변한 것은 없습니다. 이세벨이 무서워서 도망을 가던 때나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찾아 오시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지금이나 그의 삶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제 힘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우리의 감정도 정상에 머무르는 순간은 너무 짧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강은 너무 길게 느껴질 때가 여러 번 있습니다. 바닥인가 싶었는데 더 나빠지는 것도 경험합니다. 작은 우울감이 더 큰 우울을 불러옵니다. 마음에 구름이 끼고, 비까지 옵니다. 마음이 구질구질해 집니다. 출구 없는 방에 갇힌 듯 답답합니다.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What am I doing here? 하나님의 작은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빵과 물을 먹고 다시 일어나 걷습니다. 살아남는 것, 살아내는 것, 사는 것…죽이겠다고 덤비는 이세벨을 이기는 길은 살아남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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