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8장: 침묵의 이유

해설:

이스라엘의 기근이 3년 동안 지속됩니다. 그 기간 동안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를 찾아내기 위해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살해합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을 만나러 가라고 명하십니다. 그 때 아합과 궁내대신 오바댜(예언자 오바댜와 동명이인)는 나라를 둘로 나누어 물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오바댜는 경건한 사람으로서 이세벨이 예언자들을 박해할 때 백명의 예언자들을 숨겨 주고 먹을 것을 대 주었던 사람입니다(1-6절).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러 가던 중에 오바댜를 만납니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아합에게 가서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라고 말합니다. 오바댜는 자신이 아합에게 가서 엘리야를 보았다고 보고하면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숨겨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아합은 분풀이로 자신을 죽일 것이 분명했습니다(7-14절).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줍니다. 오바댜는 아합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렸고,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옵니다(15-16절).

엘리야는 아합이 찾아오자 이스라엘 백성을 갈멜 산으로 모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왕비 이세벨을 섬기고 있는 바알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 예언자 400명을 함께 불러 달라고 청합니다. 모두가 모이자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 하라고 도전합니다. 그리고는 두 제단 위에 각각 소를 잡아 제물로 올려 놓고 바알 예언자들은 바알에게, 자신은 하나님에게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 하자고 제안합니다(17-24절).

바알의 예언자들이 먼저 제물을 제단에 올려 놓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해서 안 되니, 제단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춥니다. 그래서도 안 되니 칼과 창으로 자해 하면서 기도합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지속해도 불이 내리지 않았고, 그들은 저녁 즈음에는 미친듯이 날뜁니다(25-29절). 

이 즈음에 엘리야는 백성을 자신 곁으로 불러 모읍니다. 그는 열두 지파의 수대로 돌을 모아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을 올려 놓습니다. 그는 물통 네 개에 물을 가득 채워다가 제물과 나뭇단 위에 쏟으라고 명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세 번 반복 합니다. 제단 주변에는 물이 철철 넘쳐 흐르게 되자 엘리야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님의 불”이 떨어져서 모든 것을 태워 버립니다. 이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30-39절). 엘리야는 백성에게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잡으라고 명령한 다음 기손 강 가로 데려가 모두 죽입니다(40절).

엘리야는 두려워 떠는 아합에게, 이제 가뭄이 그칠 것이니 올라가서 음식을 먹으라고 전합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얼마 간 기도한 후에 엘리야는 시종에게 바다쪽을 살펴 보라고 이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자, 얼마 후에 시종에게 같은 명령을 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 반복했을 때, 시종은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보인다고 보고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왕궁으로 돌아가라고 이릅니다. 그의 말대로 한 순간에 하늘에 짙은 구름이 덥히더니 큰 비가 퍼붓습니다(41-46절).

묵상: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가장 깊은 나락에 떨어져 있을 때 일어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빠진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를 살해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엘리야를 찾을 수 없자 그들은 닥치는 대로 예언자들을 색출하여 살해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을 그대로 보고만 계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화가 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야는 아합을 대면 했고,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 합니다. 그것은 목숨을 내건 모험이었습니다.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아합 앞에 선 것입니다. 그가 백성 앞에서 행한 일은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주시리라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안 될 환경을 만들고 싶은 절박함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면 자신 마저 죽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잊혀질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침묵 하신다면 그가 믿은 하나님은 없는 것 혹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엘리야의 절박한 요청에 하나님은 침묵을 깨뜨리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침묵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도 아니었고, 무력하다는 증거도 아니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전능자는 여전히 역사를 지켜 보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바알의 예언자들이 충격을 받고 두려워 떱니다. 그 순간, 엘리야의 마음에 누적되어 있던 분노가 그들을 향해 터져 버립니다. 그는 이세벨이 하나님의 예언자들에게 했던 대로 그들에게 되갚아 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인간의 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사용되는 동안에도 인간은 도를 넘어 하지 않아도 될 일 (혹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여기서 확인합니다. 

4 thoughts on “열왕기상 18장: 침묵의 이유

  1. 엘리야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생각해 봅니다, 믿음으로 무장된 엘리야 앞에 바알신과 아세라 신상의 의 초라한 모습을 생각해 보며 왜 인간은 끝까지 다른 신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을까 궁금증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엘리야를 통해 증명해 보이며 가믐까지도 해결해 주시는 기적을 보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인간의 잔혹성을 보며 더 많은 기도로 내 감성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혜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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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온 세상이 잠시인 부귀영화를 따르며 정신없이 쫓을때,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삶을 들이기를 원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죄와 탐욕을 온전히 성령의 불로 태우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아프간의 사태, 아이티의 지진, 서부의 산불과 가뭄과 홍수가 우상으로 타락한 세상에게
    주시는 주님의 경고임을 깨닫고 먼저 이웃과 함께 십자가앞에 무릎을 끓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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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며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때로는 나의 이해함으로 설명이 안되는 현상들 혹은 사건들이 나타나지만,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들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엘리야도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믿음의 기도를 드렸을때 (하나님의 때가 차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듯이, 내 삶에도 하나님 앞에 믿음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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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침묵은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하나님의 침묵은 사람의 기다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답이라고 받아 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비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침묵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데 낫지 않으면 하나님이 여전히 침묵하고 계시는 겁니다. 침묵은 종종 형벌처럼 느껴집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답장. 기다려도 오지 않는 도움. 어떤 답을 기다리는지 정해진 때도 있고, 모르면서 기다리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침묵을 경험합니다. 여러 번 petition 탄원서를 올렸지만 하나님은 해결해 주지 않으신 것이 있습니다. 언제 해결될지, 아니 해결이 되기는 할지 모르겠는 것들입니다. 가뭄이 오래 가는 일은 지금도 겪는 일입니다. 캘리포니아는 비가 귀한 편입니다. 겨울에 산에는 눈이 오고 도시엔 비가 와서 해갈이 되곤 했는데 이제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오래 오래 계속됩니다. 자연 재해가 오로지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이 이럴진대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만나는 여러 어려움을 놓고 자신의 책임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후회하고 반성합니다. 회개하고 다짐합니다. 청하고, 탄원합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답해 주시기를, 해결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기다림으로 재는 measure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기 때문입니다. 믿음일까요. 소망일까요.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제단의 제물을 태우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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