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2장: 이스라엘이 분열되다

해설:

이스라엘 백성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왕으로 추대 하려고 역사적 의미가 깃든 세겜에 모입니다. 그 때 북쪽 지파 사람들은 이집트에 망명 가 있던 여로보암을 불러냅니다.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솔로몬의 토목 공사로 인해 고통 당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더 이상 그런 노역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로호보암은 사흘 후에 답을 주겠다고 말하고 그들을 돌려 보냅니다(1-5절). 

르호보암은 원로 격인 부왕의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말을 들어 주라고 권고합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과 함께 자란 젊은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처음부터 백성에게 밀리면 안 된다면서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라고 권합니다(6-11절). 사흘 뒤에 르호보암은 백성과 다시 만나 젊은 신하들의 권고 대로 그들의 요구를 냉담하게 거절합니다(12-15절). 

이 일로 인해 북쪽의 열 지파는 르호보암에게 등을 돌리고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그의 통치 아래에 남습니다. 르호보암은 북쪽 지파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강제노동 감독관 아도니람을 파견하는데, 북쪽의 열 지파는 그를 살해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합니다(16-20절). 르호보암은 군대를 일으켜 북쪽 지파와 전쟁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언자 스마야가 전쟁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자 모였던 병사들은 모두 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21-24절).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세겜을 수도로 삼았다가 나중에 브누엘로 옮깁니다. 그는 자신의 백성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것은 정통성이 유다에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궁리 끝에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상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남쪽 경계에 있는 베델에 두고 다른 하나는 북쪽 끝에 있는 단에 둡니다. 그는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게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여러 곳에 산당을 세웁니다(25-31절). 또한 그는 유다에서 행하는 절기와 비슷하게 절기를 정하여 축제를 벌입니다(32-33절). 

묵상:

우리의 걸음을 가장 심하게 흔드는 것 중 하나가 조바심입니다. ‘내 생각대로 일이 풀려 나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원인입니다. 자신이 스스로의 신이 되어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악수를 두고 하게 실수를 하게 만듭니다. 르호보암이 백성의 정당한 요구를 냉담하게 거절한 이유는 혹시나 백성에게 밀려 기선을 제압 당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이 거대한 우상숭배의 함정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이유도 백성을 잃을지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권력을 맡겨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었다면 그런 조바심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시 42:5)고 했던 고라 자손의 노래를 기억합니다.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시 46:10)고 했던 또 다른 노래를 기억합니다. 자리가 높을수록, 주어진 권력이 클수록,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클수록, 스스로의 신이 되려는 욕망은 강해지고, 그에 따라 조바심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실수와 악수를 연발하며 죄를 쌓아갑니다. F

3 thoughts on “열왕기상 12장: 이스라엘이 분열되다

  1. 남북이 갈린 조국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민초 들과 나라를 먼저
    배려 하기를 원합니다. 동족 상쟁이 없어지고 말씀으로 바탕이된 통일을 간구합니다.
    옳고 틀림을 분별하는 하늘에서 내리는 신령한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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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리는 분열과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백성입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 지배를 받는 설움도 겪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에서 반복되는 역사를 목격하는 것 같아 소름이 돋습니다. 아이티의 재앙에서도 똑같은 반복을 봅니다. 비극의 현장은 약자에겐 더 지옥입니다. 여성과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가시 돋친 채찍”질이 기다립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죄의 수레바퀴에 갇힌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해 주소서. 성경은 솔로몬 시대 이후 왕들의 기록에서 여로보암의 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라고 명시하는 때가 여러 번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의 시작을 오늘 본문에서 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감히 자기의 새끼 손가락이 아버지 솔로몬의 허리보다 굵다는 말도 안되는 비교를 하면서 백성을 하찮게 깔보는 행위는 백성과 왕의 적대의 시작이라기보다 변곡점의 행동이었습니다. 분열의 조짐은 이미 충분했고 르호보암은 붕괴를 재촉했습니다. 여로보암이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내신 너희의 신이 여기에 계시다 (28절)”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광야에서 아론이 행한 죄를 연상시킵니다. 보이지 않는 야훼를 보이는 물체라고 생각하며 절하는 어리석음은 지금도 계속되는 일입니다. 대놓고 절을 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하나님으로 착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해체해야 할,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일입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금송아지 상을 만든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 산당을 짓고, 마음대로 제사장을 뽑아 세웠습니다. 새로운 절기까지 정해 지키게 했습니다. 이제까지 야훼의 백성으로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무서운 사실은 “이 일은 나의 뜻대로 된 일”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유다와 베냐민이 한 편으로, 나머지 열 지파가 다른 한 편으로 나뉘어 불화와 반목의 세월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오늘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대로 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내게) 좋은 일만 하나님의 뜻이요, 안 좋은 일은 다 사탄의 괴롭힘이라는 안일한 공식을 버리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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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다윗의 왕조가 여러가지로 타락하게 되는 점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셨을까요?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모두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너무도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조바심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조바심을 내지 않고 싶습니다. 살아계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믿고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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