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6장: 성전의 의미

해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지 4년째 되는 해에 성전 공사를 시작합니다(1절). 저자는 먼저 성전 건물의 규모(2-3절)와 내부 구조를 설명합니다. 성전은 채석장에서 다듬어 옮겨온 돌과 백향목으로 지어졌습니다(4-10절). 성전 공사가 진행되는 중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성전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잊지 않게 해 주는 형상물임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11-14절).

저자는 이어서 성전 내부의 장식에 대해 설명합니다. 목재로는 백향목과 잣나무를 사용했고, 그 위에는 빈틈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순금으로 입혔습니다(15-22절). 성전 내부에서 제일 중요한 공간은 지성소입니다. 그 안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두 개의 그룹(Cherub, 하나님을 받드는 천사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날개를 가진 형상물)을 만들어 놓습니다. 두 개의 그룹이 언약궤를 감싸게 하고 모든 것을 금으로 입힙니다(23-30절). 지성소와 성소를 드나드는 문과 층계는 올리브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입힙니다(31-35절). 성전 안뜰 벽은 돌과 백향목으로 만듭니다(36절).

이 모든 공사가 끝나는 데는 일곱 해가 걸렸습니다(37-38절). 완성된 솔로몬 성전의 단면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묵상:

솔로몬은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에 합당한 성전을 짓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온통 금으로 입혀진 성전 내부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휘황찬란함으로 인해 그 자리에 엎어져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과 영광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빛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은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도록 지어진 것입니다. 성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성전의 위용을 바라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힘썼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우상으로 삼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성전 바깥에서는 죄악을 일 삼으면서 성전에서 거룩한 제사를 드리면 그 모든 것이 용서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는 어려움에 빠졌을 때 “성전이여, 성전이여, 성전이여!”라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이라는 미신까지 퍼졌습니다(렘 7:4).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중요한 것은 성전이 아니라 당신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 2:19)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제 손으로 지은 성전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시고, 성령이 거하는 우리의 몸이 성전이며, 믿음의 공동체가 성전입니다. 교회로 모이거나 흩어져 살아가거나,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으로 우리는 성전을 살아갑니다. 

3 thoughts on “열왕기상 6장: 성전의 의미

  1. 저희들 각사람의 몸과 마음과 혼이 주님의 보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각 가정에 중심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령과 진실로 들이는 예배로 같이하시는 주님을 체험하고 주님의 통치를
    기리는 교회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웃과함께 사랑과 은혜로 통치하시는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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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린도후서의 말씀처럼, 내가 거룩한 성전임을 깨닫지 못하느냐? 라는 질문이 다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고,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삶이 거룩한 성전임을 기억하고,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살기를 기억합니다.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법례와 도를 기억하듯이, 나의 본질을 잊지 않고, 나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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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단어와 개념을 잠시 생각해 봅니다. 회중 기도 때에 “성전에 나와,” “성전에서,” 라는 표현을 씁니다. 담임 목사님을 “영적 지도자이신” 이라고 표현합니다. 교인들은 “성도님들”이 되었습니다.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생각(개념) 또한 어떤 한가지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을 봅니다. 개념이 먼저 형성된 뒤에 단어가 붙을 것 같은데 우리의 언어 생활은 늘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기가 말을 배울 때 사과를 가리키면서 “사과”라고 불러주고 따라 하게 합니다. “이름”을 알려주는 셈입니다. 교회 그림을 보여 주면서 교회라고 불러줍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교회를 보면 가리키면서 교회라고 부릅니다. 아기는 눈으로 교회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가 힌트일 것입니다. 마켓이나 맥도날드를 보면서 교회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기한테 교회라고 가르치고, 기도할 땐 성전이 되는 것은 종교화가 일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적인 개념이 일상 언어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갔습니다. 종교성을 담은 언어를 쓰면 개념도 더 높아지고, 고상해지고 내 신앙도 격상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언어는 사고와 개념을 담는 그릇일진대, 언어는 곧 인격의 표현인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우리의 종교적 언어는 어른이 되어 갑니다. 솔로몬이 짓는 성전은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표현하는 집입니다. 성전을 짓는 데 칠 년이 걸렸다는 마지막 절에서 칠이라는 숫자의 완전성을 생각합니다. 날짜로 채워진 시간 대신 사유와 의미가 자라고 깊어지는 시간, 사고와 언어, 실천이 한 물결이 되어 흐르는 시간이라는 해석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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