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장: 은혜를 알면

해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 분별력을 잃고 상심에 빠져 있다는 소식이 요압과 군사들에게 전해지자 승리의 기쁨이 순식간에 식어듭니다. 병사들은 승전의 기쁨을 감춘 채 슬며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옵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1-4절). 그러자 요압이 다윗을 찾아가 자신을 위해 헌신한 병사들의 노고를 망각하고 개인적인 슬픔에만 빠져 있다면 아무도 그의 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5-7절). 그제서야 다윗은 정신을 차리고 성문 문루에 나와 병사들을 격려해 줍니다(8절).

그러는 사이에 압살롬을 추종 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진로를 두고 논의합니다. 그들은 다윗을 다시 왕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옳다고 결론 냅니다(9-10절). 한 편, 다윗 왕은 사독과 아비아달을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자신의 왕권을 인정하는 일에 앞장 서라고 촉구합니다. 그는 또한 유다 지파의 장군인 아마사를 군사령관으로 세움으로써 유다 지파의 마음을 삽니다. 유다 장로들은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왕으로 모실 뜻을 전합니다(11-14절).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므이와 시바가 찾아옵니다. 시므이는 피신하는 다윗을 조롱하고 모욕한 것에 대해 사죄하며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비새 장군이 그를 죽이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지만 다윗은 그를 만류합니다. 승리의 날에 피를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 때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도 다윗을 찾아오는데, 다윗이 왜 자신을 따라 나서지 않았느냐고 묻자, 종 시바가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다윗은 시바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상전을 헐뜯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를 단죄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그에게 주었던 재산을 므비보셋과 나누어 가지도록 명합니다(15-30절). 다윗이 도피할 때 군사들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었던 바르실래도 찾아와 그를 맞이합니다. 다윗은 그에게 자신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제안하지만, 바르실래는 다윗의 청을 사양하면서 자신의 아들 길함을 데려가 달라고 청합니다(31-40절).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자 유다 지파 사람들과 다른 지파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더욱 깊어집니다. 압살롬을 추종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유다 백성이 다윗 왕을 빼돌렸다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유다 백성은 다윗 왕이 유다 지파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이스라엘을 형성했던 열두 지파가 아직도 한 민족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 분열과 갈등은 솔로몬이 죽은 후에 남과 북으로 나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41-43절).

묵상: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다섯 살 때 크게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를 입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우정과 친절을 생각하여 그를 왕자처럼 대해줍니다. 다윗 왕이 압살롬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날 때 그는 다윗 왕을 따라 나서려 했는데, 그의 시종 시바가 그를 버리고 홀로 떠남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윗이 돌아오기까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시바는 다윗에게 가서 므비보셋이 그를 배반하고 압살롬 진영에 가담 했다고 모함합니다.

다윗을 다시 만났을 때, 므비보셋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나서 왕이 어떤 처분을 내리든지 달게 받겠다고 말합니다. 이미 그에게서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시바에게 주었던 토지를 나누어 가지라고 말하자, 므비보셋은 시바가 그 토지를 다 가진다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다윗 왕이 안전하게 다시 돌아 왔으니 자신에게는 더 이상의 바램이나 소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의 이야기를 묵상하는 동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 12:9)는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지병을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진실이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그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윗 왕에 대한 므비보셋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태도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중에 은혜를 체험한 것만한 것이 또 없습니다. 

5 thoughts on “사무엘하 19장: 은혜를 알면

  1. 80세가 되었지만 노망기가 전여 없이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간파하면서 삶의 마지막을 음미하는 바르실래의 겸허한 태도를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저세상에 가기전에 아들 김함을 부탁하는 부정을 생각하며 죽는 날까지 세상의 짐을 어깨에 메고 사는삶을 돌아봅니다.
    이제 저에게도 노욕이 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앞에 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감사의 삶으로 인생의 여정이 끝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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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까지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살았기에 더 자신의 부귀영화를 구하지않고 자녀들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기를 간구합니다. 지금부터는 친족 들과 남들을 위해 기도와 사랑으로 사는 삶을
    원합니다. 배반한자에게 응징하지않고 모든것을 공평한 심판자이신 주님께 마끼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인도하신 주님을 꼭 붙잡고 이웃과 더불어 기쁘고 감사하며 오늘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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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때로는 사실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것 보다는 공감해주고 경청하는 일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서 그 사람의 감정을 살펴주는 것이 더 귀할 때도 있습니다. 므비보셋과 시바의 문제 앞에서 누가 맞고, 틀리고를 판단하기보다는 므비보셋의 말을 듣고 공감해준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더 나아가서 내 자신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이미 충분히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고 오늘도 그 은혜와 사랑을 흘러보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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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윗 왕 주위의 사람들 중에서 므비보셋의 충성이 돋보입니다. 아버지 요나단과 다윗이 우정이 므비보셋의 여생을 지켜주는 든든한 우산이 되어 줍니다. 므비보셋은 할아버지 사울의 땅을 물려받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높은 신분을 유지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윗에게 보인 충성은 진심에서 우러난 것임을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쟁 중에 있는 다윗의 안위를 걱정하며 씻지도 않고 마치 상중에 있는 사람처럼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왕의 귀환을 기다렸습니다. 종 시바의 간계로 다윗에게 큰 오해를 받고 화를 입을 수도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정성껏 다윗의 무사귀환을 빌었습니다. 다윗이 오해를 풀고 재산을 원위치 시켜준다고 하지만 그것을 바래서 한 일이 아닌 것을 우리는 압니다. 므비보셋은 자기에게 베푼 다윗의 선처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았습니다. 자기가 잘 나서, 자기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혜택을 입고 산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향해 감사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품고 살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을 때는 종종 감사도 없고, 감동도 없습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런 상태가 됩니다. 은혜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소서. 주실 것을 기대하는 만큼 이미 받은 것을 돌아볼 줄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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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오늘 말씀을 읽은 뒤 두고두고 머릿속에 생각나며 곱씹어져서 오후 이 시각에 한번 마무리지어 봅니다.
    오래전 정치학 박사과정공부하던 분이 성경에서 사무엘기, 열왕기, 역대기를 읽을 때면 참 흥미롭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무엘기 하를 읽으며 공감을 합니다. 17절에 압살롬이 전적으로 받아들이던 아히도벨의 모략을 제치고 후새의 모략을 따르므로 해서 아히도벨이 자살함은 하나님의 기가막힌 움직임이었습니다.
    19절은 “압살롬 내 아들아”라는 다윗의 울부짖음으로 시작합니다. 그 때문에 백성들이 맘놓고 승전을 축하치 못 하고 외려 기죽어 있을 때 요압이 과감히 나서서 왕에게 충언합니다. 사실 다윗의 분부를 어기고 압살롬을 죽게 한 이가 요압인데, 정치적으로 보자면 압살롬이 살아남을 때 후유증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요압의 충언을 받아들입니다. 듣기 싫다 할 수도 있었는데 바른 생각을 듣고 알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도망나올 때 저주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시므이가 다시 등장합니다. 용서해 달라고 할 때 다윗이 사면해 줍니다. 시므이는 “오늘 당장”만 사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잘 안 된 사람을 거침없이 망신주었다가 그 사람이 다시 잘 풀리니까 용서를 빕니다. 다윗은 시므이를 사면했지만, 나중에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시므이를 절대 제 명에 죽게 놔두지 말라 해 솔로몬의 손에 죽게 합니다. 시므이는 이 앞날을 보지 못 하고, 오늘 자기가 공교한 말로 다윗을 움직여 살았다고, 자기 자신을 부추기고 있었을 겁니다. 어떤 분이, 자기는 하나님이 임기응변할 말을 항상 주셔서 위기를 모면한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이 자신에게 어떻게 풀리든지 간에 진실한 마음이 담긴 말을 하며 사는 자세가 아니라, 당장 오늘만 사는 자세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르실래의 자세가 유난히 돋보입니다.
    오늘은 말씀 가운데 언급된 사람들의 언행을 통해 제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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