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하 18장: 분별력을 잃은 다윗

해설:

마하나임에 진을 친 다윗은 압살롬과의 일전을 준비합니다. 군사와 백성을 세 장군 요압과 아비새 그리고 잇대에게 나누어 맡기고 자신도 함께 나가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온 백성이 그의 참전을 반대합니다. 압살롬의 표적은 다윗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뜻을 받아들여 성 안에 남아 있기로 하고, 세 장군에게 아들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죽이지는 말라는 뜻입니다(1-5절).

압살롬의 군대와 다윗의 군대가 에브라임 숲에서 맞서 싸웁니다. 이 전투에서 압살롬은 군사 이만 명을 잃을 정도로 대패합니다. 숲이 우거져 있었기에 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나무에 걸려 죽은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아마도 울창한 숲으로 압살롬의 군대를 유인한 것이 다윗의 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6-8절). 그러던 중에 압살롬이 다윗의 군대를 만나 도주하다가 머리채가 상수리 나무에 휘감겨 공중에 매달리는 신세가 됩니다. 그것을 본 병사들은 다윗의 명령을 기억하고 요압에게 찾아가 보고합니다(9-13절). 하지만 요압은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투창을 가지고 가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압살롬에게 던져 심장을 꿰뚫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은 압살롬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도륙합니다(14-15절). 압살롬이 죽자 요압은 나팔을 불어 전투를 중단시킵니다. 그들은 압살롬의 시신을 가져다가 숲 속의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고 돌무더기로 매장을 합니다(16-18절).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자신이 다윗에게 가서 승전 소식을 알리겠다고 말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요압은 그 대신 에티오피아 사람을 보내어 그 소식을 다윗에게 전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관심이 압살롬의 안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히마아스를 보내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이 떠난 후에 아히마아스는 자신도 가게 해 달라고 거듭 간청합니다. 요압은 마지 못해 허락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에티오피아 사람보다 더 빨리 달려 다윗에게 이릅니다(19-23절).

한 편 다윗은 전쟁의 결과에 대해 조바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수꾼이 두 사람이 달려 오고 있다고 보고하니, 다윗은 좋은 소식이 오고 있다고 기대합니다. 아히마아스가 먼자 이르러 승전 소식을 전하자 다윗은 압살롬의 안부를 묻습니다. 아히마아스가 아무 대답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에티오피아 사람이 도착합니다. 다윗은 그 사람에게 압살롬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는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을 에둘러서 전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 짖고 성문 위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슬피 웁니다(24-33절).

묵상: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모든 점에서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윗의 행동에서 확인합니다. 압살롬 진영과의 전쟁에 직접 출정 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책임 있는 장군 혹은 군주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압살롬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는 인간적인 정에 휘청거리는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이 보입니다. 인간적인 정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싸워 준 병사들의 희생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그는 아들의 희생보다는 백성의 안위에 더 마음을 두었어야 합니다. 나중에 홀로 있을 때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지언정, 지금은 자신을 위해 싸워 준 군사들을 칭찬하고 감사해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행동해도 좋은 상황이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책임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적 영역에서도 공적 책임을 짊어지고 사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일입니다. 반면, 공적 영역에서 책임을 망각하고 사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집에서는 편한 옷을 입고 있다가 출근할 때 정장을 입는 것처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구분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 근무가 보편화 되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선이 흐려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편하게 여겨 팬데믹이 끝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길게 두고 보면, 이 상황이 우리에게 그리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드나들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thoughts on “사무엘기하 18장: 분별력을 잃은 다윗

  1. 왕으로의 다윗과 아버지로의 다윗 안에 있는 갈등을 보며 공과 사가 뒤범벅이 되어 최후를 맡는 압살롬을 읽으며 이성개와 이방원의 관계가 머리에 스쳐갑니다, 자식이 아버지에 대한 정서와 아버지만이 갖고있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미련을 생각해보며 다섯번째 십계명을 음미해봅니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생길수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주님앞에 내 놓고 기도합니다, 명철과 지혜가 주어지는 하루로 은총내려주십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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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선 꺼꾸러운자에게 용서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너그럽게대하는 아량을 원합니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옳바르게 구별하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항상 모든것을 주관하시고 뜻을 이루시는
    주님을 기억하고,좋은소식에 너무 호들갑을 떨지말고 나쁜소식에 지나치게 실망하지않는 믿음
    을 간구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모든상황에서 감사하며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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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윗이 부하들과 같이 싸움터로 나가겠다고 했을 때 부하들은 “왕은 만 명만큼이나 귀하다 (3절)”면서 말렸습니다. 다윗을 죽이는 것이 목표인 압살롬에게 맞서려면 철저히 왕을 보호해야 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많은 병사가 희생되어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압살롬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도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승전의 소식을 전하는 아히마아스에게 압살롬의 안위부터 묻는 다윗입니다. 압살롬이 부하 만 명, 이만 명보다 더 귀했기 때문입니다. 왕으로서는 기뻐 마땅한 소식이 아버지로서는 슬프디 슬픈 소식입니다.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하게 갈리는 상황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부모로서의 책임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져야 하는 공적인 의무가 겹치는 일이 분명 있습니다. 가족 이기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공정하고 균형있는 시각과 판단을 구합니다.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자유와 의무의 짐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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