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하 17장: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해설:

아히도벨은 요단 강변에서 쉬고 있는 다윗의 일행을 추격하게 해 달라고 압살롬에게 청합니다. 그는 다윗 진영을 습격하여 다윗 한 사람을 처치 하는 전략을 제시합니다. 다윗만 죽이면 나머지는 싸울 힘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모두 그의 제안을 좋게 여깁니다(1-4절). 

하지만 압살롬은 후새를 불러 그의 생각을 물어 봅니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전략이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면서 압살롬 자신이 이스라엘의 모든 부족으로부터 군사를 모아 다윗 한 사람이 아니라 다윗 진영 전체를 섬멸하는 것이 더 좋다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윗에게 회복할 시간을 벌어 주려 한 것입니다. 압살롬은 후새의 전략을 채택합니다(5-14절). 

후새는 그 사실을 사독 제사장과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전하여 다윗에게 소식을 전하게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후새의 전갈이 다윗에게 전해졌고, 다윗은 자기와 함께 있는 백성을 모두 데리고 날이 밝기 전에 요단 강을 건넙니다(15-22절). 한편, 아히도벨은 자신의 책략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여 집으로 가서 자결을 합니다(23절). 

압살롬은 아마사를 군지휘관으로 삼아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합니다. 그가 요단 강을 건넜을 때 다윗은 마하나임에 도착합니다. 후새 덕분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도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세 명의 부유한 이방인이 풍성한 음식과 도구들을 가지고 와서 다윗을 돕습니다.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있던 병사들은 그 덕분에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24-29절).

묵상:

시편 7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재앙을 당할 아무런 허물이 없다고 말하면서 주님께서 일어나 대적들의 기세를 꺾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8절) 자신을 변호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악인은 악을 잉태하여 재앙과 거짓을 낳는구나. 함정을 깊이 하지만, 그가 만든 구덩이에 그가 빠진다. 남에게 준 고통이 그에게로 돌아가고, 남에게 휘두른 폭력도 그의 정수리로 돌아간다”(14-16절)고 고백합니다. 

그 기도와 고백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압살롬의 마음이 아히도벨의 제안보다 후새의 제안에 끌린 것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이고, 사독 제사장과 아비아달 제사장의 전령들이 죽을 뻔한 상황에서 피할 수 있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움 때문입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도착했을 때, 세 사람의 이방인들이 찾아와 군사들의 기력을 회복시켜 준 것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일하신 까닭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은 때로 악한 사람들에게 모욕 당할 수도 있고 무고하게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신비로운 방식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4 thoughts on “사무엘기하 17장: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1. 권력이라는 괴물을 갖고 벌어지는 부자간의 살벌한 싸움속에서도 하나님은 그가 택하신 다윗을 끝까지 지켜주시며 응원해 주시는 손길을 봅니다, 권력에 눈이 멀은 압사롬의 책략에도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마주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하루로 은총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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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난날 모든 일들이 주님의 은총 이였고 인도임을 고백합니다. 평안할때는 도리어 주님을 잊고
    힘들고 어려웠을때가 은혜 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환란을 달갑게 받는 습관을 원합니다.
    배후에서 은밀히 주관하시고 은총을 베푸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들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리며 만끽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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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4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결정 앞에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의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의 마음을 돌리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도 내 삶에 힘이 되어주시고 그 걸음을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아히도벨의 자결은 섬뜻합니다. 아마도 마음의 근육이 튼튼하지 못해서 일까요? 한번의 거절이 자신을 거절한 것으로 받아드렸을까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몸의 근육은 열심히 만들려고 하지만, 마음의 근육을 관리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근육이 튼튼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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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내 삶 가운데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기대를 하고 예측도 합니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판단을 하고 구분을 짓습니다. 그런데 정작 살아보면 알았다고 생각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녹아 없어져서 뭘 알았던거지? 찾아봐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살수록 모르는게 더 많은 것이 삶인가 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여러번 듭니다. 다윗과 압살롬 사이의 싸움에서 편을 들고 대치하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결과적으로는 다윗이 승리하지만 압살롬 편에 섰던 아히도벨의 경우 그는 세운 계획을 시작도 못해보고 자기 손으로 삶을 정리합니다. 다윗의 첩자로 압살롬에게 접근한 후새의 말이 더 먹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압살롬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14절).”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생각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이라는 대칭되는 개념, 이원적인 사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의 질문이 남습니다.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사람의 크고 작은 뜻과 계획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그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믿는 일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로 돌아올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머리로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작고 연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성경 말씀이 가리키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 나처럼 작고 연약한 타인들 속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불씨를 조심조심 살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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