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하 14장: 용서, 그 어려움에 대해

해설:

다윗은 압살롬에 대한 분노를 풀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를 그리워 합니다. 삼 년이 지난 후 요압은 압살롬을 데려올 때가 되었다고 여기고는 슬기로운 한 여인을 데려다가 다윗 앞에서 연극을 시킵니다. 그 여인은 요압이 시킨 대로 다윗 앞에 나아가 연극을 합니다. 자신의 두 아들이 싸우다가 한 아들이 죽게 되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형제를 죽인 그 아들을 죽여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으니 왕께서 도와 달라고 청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그 아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자 여인은, 그런데 임금께서는 왜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망명자로 살게 내버려 두었느냐고 묻습니다(1-17절).

다윗은 요압이 그 여인을 시켜서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그는 요압의 충정에 감동하여 압살롬을 그술로부터 데려 오라고 명합니다. 요압은 다윗이 자신을 우롱 했다면서 진노할 수도 있는데 자신의 뜻을 따라 준 다윗에게 크게 감동합니다. 요압은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려 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대면하지 않고 가택연금 상태에서 살게 합니다. 그에 대한 화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것입니다(18-24절).

압살롬은 그 용모가 출중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딸의 이름은 누이의 이름을 따서 다말이라고 지었습니다(25-27절).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2년 동안 다윗 왕을 알현하지 못합니다. 압살롬은 참다 못하여 요압을 만나 사정하기 위해 그의 집에 사람을 보냅니다. 요압은 두 번이나 그의 청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그가 찾아오게 만듭니다. 압살롬은 요압에게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 했고, 그 말을 전해 들은 다윗은 압살롬을 궁전으로 불러 화해합니다(28-33절).

묵상:

용서는 참 어렵습니다. 다윗 왕은 세자를 살해한 압살롬에 대해 5년 동안 분노를 품고 삽니다. 압살롬이 그렇게 행동한 데에는 자신의 잘못도 있었습니다. 다말을 욕보인 암논에 대해 충분히 징계하고 다말과 압살롬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면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다윗이 그 사실을 생각했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마음을 풀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압살롬의 문제적 행동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압살롬의 책임이 제일 큽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이 용서할 수 있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진실하게 뉘우치고 용서를 빌 때, 용서는 너무도 쉽습니다. 아니, 용서하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잘못한 사람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을 때 혹은 역반하장으로 나올 때 용서는 죽기보다 더 고통스럽고 또한 어렵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용서를 바라기만 했지 그것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결국 반란을 일으키는 악수를 두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 그리고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조건 없이 용서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인간 관계에 있어서 황금 열쇠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용서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의 능력이 곧 믿음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4 thoughts on “사무엘기하 14장: 용서, 그 어려움에 대해

  1.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감성과 이성의 괴리를 파악하게 합니다, 감성에 한번 큰 상처를 입으면 논리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내 자신을 반추해보며 감정에 휘둘렸던 지난 날들을 상기합니다, 압살롬의 사건을 통해 다시하번 인간의 원죄와 한계를 생각해 봅니다.
    에수님의 십자가가 오늘 하루를 지배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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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윗은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다는 사실이 용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이기까지 했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아를 죽인 자신을 보았는지 모릅니다. 암논을 죽인 뒤에 압살롬은 그술 땅으로 도망을 갑니다. 사울의 진노를 피해 도망 다닌 자기 모습이 여기서도 보였을 것입니다. 압살롬에 대한 미움이 그리움으로 변하는 때도 있습니다. 미움과 연민이 번갈아 찾아 옵니다. 요압이 보낸 여인의 이야기가 다윗의 심정을 거울처럼 보여주듯이 압살롬에게서 자기의 과거가 고스란히 재현되는 듯 합니다. 압살롬의 아름다움을 서술하는 대목에서는 백성들이 젊은 다윗을 찬양하던 과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다윗의 마음 속에 압살롬은 아들이자 자기 자신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과도 불화합니다. 용서에는 잘못을 한 상대방과 그에게 당한 나 자신에 대한 용서도 포함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용서한 뒤에도, 용서했다고 생각한 후로도 자책과 자학이 계속되기도 합니다. 성서는 밧세바에 대해 침묵합니다. 암논에게 당한 다말에 대해서도 침묵합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 두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용서의 복합성이 큰 산처럼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크고 작은 죄 속에서 용서하고 용서받기 위해 애쓰는 우리를 주여 가엽게 여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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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선 잘못을 깨달은 즉시 피해자에게 십자가 은혜를 생각하며 용서를 비는 용기를 원합니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마음이 찢어지도록 주님께 회개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지난날 억울함과 힘들게 하던자들을 무조건 용서하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마음의
    참 평안을 갖고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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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윗과 압살롬의 상황이 마치 영도와 사도세자의 관계같이 느껴졌습니다. 컨텍스트는 엄연히 다르나,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서로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분노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용기가 없었기에, 안타깝습니다. 용서를 하지 못하는 분노는 오히려 자신의 몸안에 독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독을 빼내는 해독제는 용서 밖에 없습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는 용기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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