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하 10장: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

해설:

왕권이 안정된 후, 다윗은 암몬과의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 비극은 다윗의 선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암몬 왕 나하스는 길르앗의 야베스를 공격했다가 사울에게 크게 패한 적이 있습니다(삼상 11장). 기록에는 없지만, 다윗은 나하스 왕과 화친 조약을 맺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이 되자 다윗은 조문 사절을 보내어 애도를 표하고 화친 관계를 지속하려 했습니다(1-2절). 하지만 암몬의 대신들은 하눈 왕에게, 다윗이 염탐하기 위해 조문 사절을 보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말에 솔깃한 하눈 왕은 조문 사절의 수염의 절반을 밀고 옷의 아랫도리를 잘라 돌려 보냅니다. 그것은 다윗을 욕보이는 행위였습니다. 경험이 없는 하눈 왕이 외교적으로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3-4절).

조문 사절이 당한 일을 전해 들은 다윗은 그들의 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그들의 수치를 가려 주려는 배려였습니다(5절). 한편 암몬 진영에서는 초보 임금의 실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늦게서야 자각하고 주변 나라들로부터 용병을 모집합니다. 암몬의 군사력으로는 다윗을 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은 요압에게 전투부대를 맡겨 출동시킵니다(6-8절). 요압이 암몬에 맞서 전선을 구축하고 보니 뒷편에 시리아 군대가 그들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요압은 군사를 절반으로 나누어 동생 아비새에게 암몬과 싸우게 하고 자신은 시리아와 싸웁니다(9-12절). 요압은 시리아 군을 격퇴시켰고, 시리아 용병들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암몬 군도 흩어져 달아납니다. 승리한 요압은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옵니다(13-15절). 

시리아의 하닷에셀 왕은 시리아 용병들이 패했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동원하여 직접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시리아의 군사력은 암몬의 군사력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윗이 직접 출병합니다. 이 전쟁에서 다윗은 시리아를 격퇴시켰고, 하닷에셀에게 속해 있던 왕들은 다윗과 화친 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을 섬기게 됩니다(16-19절).

묵상:

암몬 군대와 시리아 용병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요압이 동생 아비새 장군에게 한 말 즉 “용기를 내어라. 용감하게 싸워서 우리가 우리 민족을 지키고, 우리 하나님의 성읍을 지키자. 주님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12절)라는 말은 위기 앞에서 믿음의 사람이 취해야 할 훌륭한 자세를 보여 줍니다. 우주의 운행과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은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아는 대로 의로운 길을 찾아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승리에 있다면 그렇게 해 주실 것이고, 패하게 하시면 그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이니, 자신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삼국지에서 유래했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제갈공명이 이 말을 한 것은 요행만 바라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 모두 맡긴다”는 말을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반대로, 결과에 대해 하나님의 명을 기다리기 보다는 하나님에게 명령하듯 기도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믿음의 길은 둘의 중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인도하신다고 믿고 지금 내가 믿는 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미래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2 thoughts on “사무엘기하 10장: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

  1. 항상 모든 크고 적은 일을 주님께 여쭙고 실천하는 습관이 몸과 영혼에 박혀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윗이 화친 하려고갈때 또 전쟁하기전 주님께기도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전쟁전에는 물론이고
    심지어 화친을 하기전에 먼저 기도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기를 원합니다. 이웃과함께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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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학생 때 여름에 아르바이트 할 때의 일입니다. 외국인 회사와 주한 외국 대사관 등에서 비서를 하는 “언니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자기 믿음에 대해 열심을 내어 이야기하는 언니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여럿이 모이다 보니 자리를 같이 했었던 사람인데, 그 언니는 매사를 하나님한테 물어본다고 하면서 아침에 출근할 때는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요, 점심이 되면 뭘 먹을까요, 누구와 먹을까요…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물어보면 알려주시고, 자기는 알려주시는대로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을 땐 “정말?” 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그래야하나? 싶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저런 뜻인가? 매사를 기도하고 결정한다는 것이 저런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해 볼만한 다음 모임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니들과의 만남도 아르바이트가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났습니다. 나는 지금도 어떤 옷을 입을까요 하고 주님께 묻지 않습니다. 네가 알아서, 너 좋은 옷을 입어라 하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옷을 사려고 고를 때는 “기도”를 합니다. 이 옷이 내게 맞는지, 세상에 보여 주려는 이미지에 맞는지, 꼭 필요한 옷인지 (아닙니다. 그냥 갖고 싶은 옷이라서 만지작거리는 것입니다), 가격이 적당한지, 다른 데 쓸 돈은 아닌지..등등 여러 가지를 따져 봅니다. 그게 무슨 기도냐고 할 수 있지만 주님께 묻고, 주님은 어떤 답을 하실까 기대하며 결정한다는 뜻에서 보면 기도입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질문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라 진로나 결혼의 결정처럼 큰 일을 놓고 하는 질문과는 질적인 면에서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감리교인은 자유의지를 신앙적 토대의 일부로 받아 들입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일, 다양하고 다층적인 경험,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바뀌는 시각 등은 다 내 최선의 의지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몫의 짐을 홀로 지게 두지 않으시고 도와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알 때에나, 알지 못해 괴로울 때나 나를 사랑하시고 도와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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