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상 26장: 기도의 자리

해설:

바란 광야에서의 조우 후에 사울은 잠시 동안 다윗에 대한 살해 충동으로부터 벗어납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그의 마음은 다시 불안해졌고 다윗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오릅니다. 그 때 십 광야의 주민 하나가 기브아로 찾아와 사울에게 다윗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사울은 삼천 명의 병사를 동원하여 십 광야로 내려갑니다. 그는 십 광야의 하길라 산 속에 진을 쳤는데, 다윗과 그 일행이 그 근처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사울의 동태를 살핍니다. 그는 아브넬 사령관의 호위를 받고 있었습니다(1-5절).

밤이 되자 다윗은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의 진영으로 잠입해 들어갑니다. 사울은 진 한 가운데서 자고 있었고 머리맡에는 창을 땅에 꽂아 두고 있었습니다. 아비새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사울을 처치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를 처치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처치할 수 없다면서 사울의 물통과 창만을 가지고 진을 빠져 나옵니다(6-12절). 그 창은 얼마 전에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던졌던 그 창입니다(29:9-10). 

동이 트자 다윗은 사울의 진영 반대편 산으로 올라가 아브넬을 부릅니다. 그는 사울의 물통과 창을 보여 주면서 자객이 잠입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막지도 못했다면서 아브넬을 책망합니다(13-16절). 다윗의 목소리를 듣고 사울이 바깥으로 나오자 다윗은 자신이 그를 죽일 수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제발 자신에 대한 살해 시도를 멈춰 달라고 청합니다(17-20절). 그 말에 사울의 마음은 다시 요동칩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윗을 축복해 줍니다. 다윗은 사울의 물통과 창을 돌려 주었고, 사울은 군사를 데리고 자기 궁으로 돌아갑니다(21-25절).

묵상: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문 중에 80 퍼센트 정도는 탄원과 호소의 기도입니다.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꼼짝없이 죽게 된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합니다. 그는 일생 동안 그런 상황에 자주 빠집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실질적인 왕이 되는 과정에서 사울에게 그렇게 시달려야 했고, 왕이 된 후에도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습니다. 지도자가 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지도자는 자주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모두에게 좋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주 비난과 모함과 적개심과 원한의 표적이 되었고, 그로 인해 때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한 영적 습관은 젊은 시절에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동안에 몸에 익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다스리신다는 믿음 그리고 그분은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원수를 만날 때마다 그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게 했습니다. 그 영적 습관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나발이 그의 분노를 격발시켰을 때에도 기도의 자리를 먼저 찾았더라면 그를 죽이려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는 이토록 중요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는 요새입니다. 사소한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하나님 앞에 가져가 기도로 그분의 뜻을 여쭙고 그분의 인도를 구하는 것은 믿는 이들의 매일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4 thoughts on “사무엘기상 26장: 기도의 자리

  1.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먼저 하나님께 무릅을 꿇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다윗의 극진한 믿음을 배웁니다, 사울이 자기 손 안에 들어와 있을 때도 즉흥적으로 처단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름 부은자에 대한 경외를 잊지않는 다윗을 통해 분노의 감정 조절을 잘 해 내는 다윗의 믿음을 배웁니다.
    때때로 마주치는 격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 때마다 침착하게 무릅꿇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분별력을 주시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공의와 진실이 다스리는 하루가 되도록 은혜내려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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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 은혜를 믿고 허락하신 지성소로 들어가 주님과 거룩하고 깊고 귀한
    사귐을 갖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비록 적은 일이지만 먼저 주님께 여쭙고 행하는 믿음을 간구
    합니다. 사울과 같은 변덕있는 회개가 아니라 참된회개 통곡하는 회개를 원합니다. 젊었을때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이웃과 함께들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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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윗이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 즉 어찌보면 정당방위가 성립되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인정하며 사울왕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내면에 있는 영적인 안정감이 있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영적인 안정감이 있기에, 삶에서 여러 고난과 아픔들, 복수할 기회들, 등 이 있지만, 언제나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오뚜기와 같이, 강하게 흔들려도, 중심의 추로 인해서 다시 평온하며 안정감을 누릴 수 있듯이, 내 삶의 영적인 안정감 (영성)을 깊게 추를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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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울의 집착이 안스럽습니다. 실재하지 않는 위협을 현실로 인식하는 망상증에 시달리는 사울이 딱하기만 합니다. 그의 집착이 다윗을 광야로 내몰아 야인생활을 하게 만듭니다. 망명객과 같고 귀양살이 신세 같이 된 다윗이지만 이 어려운 시기가 그를 왕으로 키웁니다. 빛나는 청춘의 때에 다윗은 광야에서 “썩고” 있습니다.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모함을 받아 대역죄인이 되어 도망을 다녀야 하는 고달픈 나날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프레임 정치”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사울 왕을 해칠 수 있는 기회를 또 맞이 했으나 다윗은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습니다. 사울의 창과 물병을 집어 가는 것으로 얼마나 가깝게 접근했었는지 보여 줍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하는 말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사울이 지금 겪고 있는 진노와 살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부어준 것이라고 말하고 (19절), 어찌 왕으로서 메추라기를 사냥하고, 벼룩을 찾아 나서는 사람같이 행동하느냐 (20절)고 호소합니다. 상대방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곧 자기인식, 자기 정체성의 이해와 같이 물려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기의 왕좌를 노리고 해치려 드는 정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생각 속에 다윗은 자기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들 같은 부하가 아니었습니다. 왕의 품격을 갖추지 못했기에 다윗을 제거하는 일에 몰두합니다. 다윗의 표현을 빌리자면 큰 사냥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으면서도 메추라기 한 마리 잡겠다고 나선 꼴입니다. 큰 그림을 못 보면 큰 일도 못 합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세월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공부를 하고 있고, 왕의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왕으로 보고 왕으로 대접합니다. 그의 자화상은 왕을 섬기는 사람의 자화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얼굴 속에서 만왕의 왕을 보는 다윗이 부럽고 감사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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