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상 20장: 요나단의 사랑과 믿음

해설:

사울이 춤추며 예언을 하다가 지쳐 있는 동안에 다윗은 라마의 나욧을 빠져 나와 요나단에게 찾아옵니다. 그는 요나단에게 사울의 살해 위협에 대해 알렸으나, 요나단은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합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물었고,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살해하려 하는지를 확인해 주기를 청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들로 나가서 서로를 지켜 주기로 맹약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피신시킨 다음 아버지의 살해 의도를 확인하고 알려 주기로 약속합니다(1-23절).

매달 초하루가 되면 왕이 가까운 신하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사울은 다윗이 불참한 것을 알면서도 그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불참하자 그 이유를 물었고, 요나단은 다윗과 약속한 대로 불참의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불같이 노하면서 요나단을 혼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변호하자 사울은 창을 들어 요나단을 위협합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의 진의를 알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 둘은 눈물로 이별을 한 다음 각자의 길을 갑니다(24-42절).

묵상: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 다윗과 요나단은 친구 사이의 우정에 대한 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다윗을 미워할 사람은 요나단이었습니다. 다윗이 없다면 사울의 왕권은 당연히 그에게 오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권에 대한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요나단은 물러서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혹은  아버지를 도와 다윗을 살해하도록 도왔을 것입니다. 그것도 안 되면 자신의 손으로 다윗을 해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다윗을 변호하고 두둔했으며 아버지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로, 인간 다윗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요나단은 친구로서 다윗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진실하게 좋아하게 되면 자신에게 귀한 것을 나누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 15:13)고 하셨는데, 요나단은 친구 다윗을 진실하게 사랑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요나단이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가 있음을 알았고 그것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알맞는 분복을 주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복된 일임을 믿었습니다. 

요나단은 인간적으로, 세속적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가장 순결한 사랑을 나누었고 하나님께는 진실한 믿음으로 살았던 요나단은 가장 복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3 thoughts on “사무엘기상 20장: 요나단의 사랑과 믿음

  1. 사울에게서 요나단 같은 성실한 아들이 나왔다는 사실자체가 믿기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버지를 거역하면서 까지 다윗의 목슴을 지켜주는 요나단의 사랑과 믿음을 생각해 봅니다, 일시적인 감성이 아니고 끝까지 다윗을 아끼는 우정을 보며 친구가 부모보다 더 중요했던 사춘기 때의 감성들이 떠 오릅니다.
    악한 영에 이끌려 충성스런 다웃을 해 하려는 사울을 보며 악령에 유혹 당하지 않게 깨어 기도하기를 멈추는 일이 없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하루도 옆길로 새는 일이 없도록 주님의 길 위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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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육신의 아버지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순종 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접고
    교회와 사회와 나라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허락하신 부모 형제
    친족들과 화평하는 의지와 결단을 기도합니다. 이웃과 함께 매일 아침 주신 말씀으로 무장하여
    승리의 삶을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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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요나단이 다윗을 두둔하자 사울이 크게 화를 냅니다. “다윗이 살아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고, 나라를 가질 수도 없다 (31절)” 고 말합니다. 그래도 요나단이 따지니까 창을 던지면서까지 분노합니다. 다윗을 향해 사울은 분노의 감정을 키우고 이럴수록 요나단과 다윗은 우정을 굳게 지킵니다. 사람을 알려면 그의 친구를 보라는 말을 합니다. 좋은 친구를 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요즘엔 친구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어려서부터 같이 친구로 지낸 친구, 성인이 되어 만난 친구, 일을 매개로 가까와진 친구, 취미활동이나 이익추구를 같이 하는 친구, 소셜미디어로 알게 된 친구…알고 지내는 사람 (지인)인지, 친구인지 구분하는 기준이 뭘까 생각해 봅니다. 친구들 중에서도 진짜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도 생각해 봅니다. 나도 그에게 그런 친구가 되는가 생각해 봅니다. 내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도 그에게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정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되는 오늘 본문을 놓고 나의 이기심과 허물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친구가 있음을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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