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상 19장: 감정에 사로잡힐 때

해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시기심과 질투심은 점점 강해져서 아들 요나단과 신하들 앞에서 다윗을 죽이겠다고 공언 합니다. 다윗을 아꼈던 요나단은 일단 다윗을 피신시키고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이 잘못한 일이 없으며 오히려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변호합니다. 요나단의 말에 사울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하고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불러 다시 사울의 시중을 들게 합니다(1-7절).

얼마 후에 불레셋과의 전쟁이 다시 일어났고 다윗이 출정하여 큰 승리를 거둡니다. 이 일로 인해 사울의 시기심과 질투심이 다시 불타 오릅니다. 그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왕궁을 떠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사울은 부하들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라고 명했는데, 미갈이 이 음모를 알아채고 남편을 도피 시킵니다. 이 일로 인해 사울은 딸 미갈에게 불같이 화를 냅니다(8-17절).

다윗은 사무엘을 찾아 라마로 갔고,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사무엘에게 이릅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라마의 나욧으로 다윗을 데리고 갑니다. 그곳이 더 안전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부하들을 라마의 나욧으로 보냈는데, 그곳에서 춤을 추며 예언 하는 사람들을 만나자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도 내려 함께 춤을 추며 예언을 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사울은 다른 부하들을 보냈는데, 그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세 번째로 보낸 부하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자 사울은 직접 찾아갑니다. 그가 라마의 나욧에 이르러 춤을 추며 예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자 그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 춤을 추며 예언을 합니다. 무아지경에서 춤을 추다 보니 왕복이 다 벗겨져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사울도 예언자가 되었는가?”라는 말이 생겨납니다(18-24절).

묵상: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에 완전히 사로잡힙니다. 그로 인해 그는 분별력을 잃어 버립니다. 다윗은 아들 요나단의 절친이었고 딸 미갈의 남편이었지만, 사울에게는 원수로만 보였습니다. 그는 왕으로서의 체면과 명예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윗을 죽이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분별력이 조금만 있었어도 라마의 나욧으로 보낸 부하들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자신이 무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 살해 시도를 멈추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세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 되었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보낸 경고였는데, 그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손으로 처치하기 위해 그곳을 갑니다. 그로 인해 왕으로서의 그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져 버립니다. “옷까지 벗어버리고”(24절)라는 말은 자신이 왕인지도 잊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무엇에 씌였다”고 말합니다. 감정이 살아 있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감정이 죽으면 삶의 기쁨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하지만 감정이 우리를 압도하면 우리의 이성은 마비되어 버립니다. 특별히 부정적인 감정(시기, 질투, 미움, 낙심, 정욕, 탐욕 등)이 우리를 사로잡으면 우리는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 할 때, 우리는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그 감정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음으로써 그 감정의 족쇄로부터 풀려 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4 thoughts on “사무엘기상 19장: 감정에 사로잡힐 때

  1. 감정에 매몰되어 자신의 충신이며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통해 잘못된 감정이 어떻게 우리에게 작용할수 있나를 배웁니다, 바이폴라 환지들이 자신의 감정에 몰입되어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조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보는데 사울역시 이성을 잃고 감성에 좌우되면서 자신의 몰락을 재촉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 옳바른 이성을 주시고 그 합리적인 이성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고 감성에 휘둘리어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바른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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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낮아저서 사랑으로 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신실하게 책임을 감달하는 사역자에게 협조하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항상 말씀으로 깨어있어
    악령으로 부터의 위험을 피하는 분별력을 구합니다. 이웃과 함께 수금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눈물을 흘리는 친족 들에게 위로가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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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주신 감정을 지혜롭게 잘 통제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으사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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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울의 극단적인 감정 변화와 판단력 상실이 다윗을 힘들게 합니다. 어제와 오늘 계속 되는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는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관계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주종의 관계가 있습니다. 임금과 부하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부하는 임금에게 매인 몸이기에 건의를 하거나 형편을 호소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고용주와 직원의 관계도 수평적이지 않습니다. 고용주의 권리가 직원의 권리보다 큽니다. 다윗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요나단과 미갈입니다. 사울의 아들과 딸입니다. 가족 안의 갈등과 불화를 보여줍니다. 사울의 이성을 잃은 행동이 딸과 아들도 등을 돌리게 합니다. 아무리 자기 아버지라 해도 남편을, 친구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사울의 심리 상태도 여러 면에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들어가” 라는 표현이 오늘 본문에도 두 번 나옵니다. 사울을 ‘미치게’ 만든 것이 하나님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사람을 마치 기계로, 하나님은 기계를 작동하는 손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사울의 정신 상태가 저토록 흐트러진 것은 고삐 풀린 질투심과 자만심 때문입니다. 질투와 자만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일반적인 감정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지 않게 제어하는 것이 이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성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무게추처럼 중심을 잡아주기에 과도하게 감정적이거나 이성적이 되지 않습니다. 사울의 중심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에겐 하나님이 임금이 아니라 자기자신입니다. 사울의 성격 파탄은 개인의 비극을 넘는 불행입니다.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사울이 앓는 ‘정신병’은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릴 때,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될 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그것부터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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