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상 7장: 사무엘의 거룩한 리더십

해설:

벳세메스 사람들의 기별을 받고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언약궤를 자신들의 성읍으로 옮깁니다. 그들은 아미나답의 집에 언약궤를 보관하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구별하여 언약궤를 지키게 합니다(1절). 왜 언약궤를 실로에 있는 성막으로 옮기지 않았는지에 대해 성경은 침묵합니다. 아미나답이 제사장 가문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언약궤로 인해 더 이상 재앙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율법 규정을 따라 언약궤를 다루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로부터 20년 동안 언약궤는 아미나답의 집에 보관되어 있다가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집니다(삼하 6장). 

이 기간 동안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회복됩니다(2절). 사무엘은 백성에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 했고(3절), 백성은 바알과 아스다롯 신상(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남신과 여신)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 옵니다(4절). 사무엘은 백성을 미스바에 모이게 하고 대각성 집회를 엽니다(5-6절). 미스바는 사무엘이 사사로서의 직무를 보던 곳입니다. 물을 제물로 삼아 쏟아 부은 것은 그들의 죄를 씻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죄를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레셋의 통치자들은 그들을 치기에 좋은 기회라고 여겨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에 준비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 떨면서(7절) 사무엘에게 자신들이 싸우는 동안 계속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8절). 사무엘은 어린 양을 제물로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9절).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 했는데, 때마침 큰 천둥이 쳐서 불레셋 군인들이 혼비백산 합니다. 그 틈에 이스라엘은 반격하여 불레셋을 몰아냅니다(10-11절).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긴 다음, 사무엘은 돌을 하나 가져다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놓고 그 돌을 ‘에벤에셀'(도움의 돌, Stone of Help)이라고 부릅니다(12절). 그 이후,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 불레셋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않습니다(13절).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은 불레셋에게 빼앗긴 여러 성읍을 되찾았고, 아모리 사람들과도 화평하게 지냅니다(14절).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입니다. 사무엘은 라마와 베델, 길갈과 미스바 지역을 돌면서 사사로서 직무를 행합니다(15-17절).

묵상:

이 책은 ‘사무엘기’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사사와 예언자로서의 사무엘의 활동에 대해서는 7장의 기록이 전부입니다. 그는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의 왕정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그는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에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옵니다. 

과도기에 지도자의 자리에 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탁월한 지도력이 있어야만 과도기의 도전과 혼란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그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해 냅니다. 우상 숭배로 돌아섰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놓았고, 불레셋이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고, 오래도록 불화 관계에 있던 아모리 백성과도 화평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그 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워 두고 ‘에벤에셀’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지도자 부재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에도, 사회에도, 직장에도, 교회에도 진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실하게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어서 그만큼 탁월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데, 그런 지도자를 보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무엘처럼 신실하게 섬기고 백성이 그를 칭송할 때 조용히 물러나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하는 진실한 지도자를 갈망하고 기도합니다.   

4 thoughts on “사무엘기상 7장: 사무엘의 거룩한 리더십

  1. 사사기 말기에 주님과 소통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잘 인도하는 사무엘의 지도력을 배웁니다, 어떤 곤란이 닥칠 때 내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를 먼저 구하는 그의 신앙심을 거울삼아 내가 처하는 모든 일상에서 주님의 지헤를 먼저 구하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코비드로 어수선 한 회복시기에 더더욱 주님의 지혜로 끝까지 이겨내는 믿음을 구하며 지금까지의 은혜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함께하시어 평온한 세상으로 복귀하하도록 은혜내려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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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벤에셀의 하나님! 어렵고 혼돈한 이 시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궁휼을 구합니다. 사무엘과 같은 리더쉽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울부짖는 심령을 허락하시고,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겸손한 영혼을 부어주사, 온전히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을 찬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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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의 부귀영화가 우상이었습니다, 오직 주님만 기리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자주 뒤돌아보고 영적 각성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산 돌이신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고, 세상의
    모든죄를 지신 어린양에게 이웃과 더불어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영어 회중을 인도할 목회자를 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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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미국의 애칭이 “Uncle Sam”인데 찾아보니 이는 전쟁(1812) 때 군인들에게 고기를 공급하던 이의 이름이 Sam (Samuel) 이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United States of America 에서 추려낸 글자의 조합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훌륭한 사사 사무엘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미국에 살면서 한국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촘촘해진 통신기술망 덕분에 큰 시간차 없이 한국 소식을 듣는 요즘엔 자기가 들은 말을 옮기는 것도,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다 쉬워졌습니다. 예전엔 연예인들얘기가 “심심풀이” 주제였는데 이제는 정치나 사회 커멘터리가 SNS 중심이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게다가 개인 유튜브를 만들어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보니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말이 엄청납니다. 한국의 정치가 답답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정부에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일을 셀 수 없이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어제 읽은 어떤 글에서는 대통령이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으려면 고위 공무원직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늘공” 즉 늘 공무원, 직업 공무원, “철밥통”의 수를 줄이고 “어공” 즉 정무직, 한시적 공무원, 공무원으로 발탁된 “어쩌다 공무원”으로 대폭 전환해 부서 이기주의와 개인 보신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이 선출한 정부에 충성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지도자에 대한 연구는 계속됩니다. 비지니스 스쿨에서도 신학교에서도. 사무엘은 하나님의 권위를 되찾은 사사입니다. 하나님이 권위를 잃어버려서 되찾아 드린 것이 아닙니다. 백성의 마음에서 희미해져가는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 또렷하게 만들었습니다. 먼지와 낙서로 어지러워진 벽화를 복원하여 선명한 그림을 보게하듯 사무엘은 하나님을 높여 드렸습니다. 내 안에도 하나님의 자리가 선명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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