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상 4장: 신앙이 미신이 될 때

해설:

사무엘이 지도력을 가지기 전,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용맹스럽게 맞서 싸웠으나 불레셋에게 패하고 맙니다(1-2절). 패잔병들이 진으로 돌아오자 장로들은 실로에서 언약궤를 모셔 오기로 합니다. 언약궤를 모시고 전쟁을 하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3절). 그들은 실로로 사람을 보내어 언약궤를 모셔왔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따라 옵니다(4절).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으로 들어오자 백성은 땅이 진동하도록 환호합니다. 언약궤가 있으니 전쟁은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5-6절). 이스라엘 군의 환호성을 듣고 불레셋 진영은 두려워 떱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싸웠던 전쟁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7-8절). 그들은 더욱 단단히 준비를 하여 전쟁에 임했고, 이스라엘에게 참패를 안겨 줍니다(9-10절). 게다가 그들은 홈니와 비느하스를 살해하고 언약궤를 빼았습니다(11절).

한 편, 엘리는 길가 의자에 앉아서 언약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전쟁에서 살아남은 패잔병 하나가 실로의 주민들에게 와서 패전의 소식을 알립니다. 그 소식에 그들은 슬피 통곡합니다. 엘리는 그 사람을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그 사람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했으며 홈니와 비느하스가 전사했고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전합니다(14-17절). 그 때 엘리는 아흔여덟의 노인이었습니다. 연이은 충격적 소식에 그는 뒤로 넘어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는 사사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섬기고 이렇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습니다(18절). 

전사한 비느하스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 출산일을 며칠 앞두고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했으며 언약궤를 빼앗겼고 자신의 남편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 충격으로 인해 산통이 시작됩니다. 그는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아들을 낳습니다.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하지도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짓습니다. 이스라엘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19-22절).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사자가 전해 주었고(2장) 사무엘에게 확인해 주었던(3장) 예언은 엘리의 가문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로써 엘리의 가문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묵상:

‘신앙’과 ‘미신’의 경계선은 매우 흐릿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미신’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성으로 인해 이기적인 형질을 타고 났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익하게 만들려는 관성에 이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도 자주 이 관성에 이끌려 미신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을 무지몽매한 우상으로 취급하여 자신의 타락한 욕망을 채워 주기를 기대합니다.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언약궤를 가져 올 생각을 한 것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모시고 전쟁할 때 위대한 전승을 안겨 주신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하나님에게 등지고 우상숭배에 빠져 영적으로, 도덕적 부패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다급해지자 그분의 능력을 끌어다 쓰려 했습니다. 그 시도에 대해 하나님은 처절한 패배로 응답하셨습니다. 엘리의 가문이 당한 심판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나를 위해 하나님에게 섬겨 달라고 비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내가 섬기기를 결단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묻는 아침입니다.  

4 thoughts on “사무엘기상 4장: 신앙이 미신이 될 때

  1. 자주 하나님을 이용해 세상의 부귀영화를 구하는 미련한 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뒤를 따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꼭 붙잡고 이웃과함께 주님과 귀하고 긴밀한 사귐을 가지고
    승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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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교회의 건물이나 십자가의 형상이 우리의 우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눈으로 보이는 형체에 쏠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통해 아직도 우상화가 되는 모순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누구인지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며 무소불위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내 공간이 어디이건 주님이 함께 겨신다는 것을 잊지말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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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을 자판기로 생각하고, 나의 욕구와 필요를 만들어 달라는 마음을 가진 믿음은 미신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대하는 태도와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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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 본문 같은 ‘신앙 생활’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의 마음가짐이나, 기도로 아뢸 때 갖는 바램이 과연 하나님 사랑에서 우러나는 것인지 내게 필요한 것, 찾는 것이 있어서인지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살면서 필요한 것을 주께 구하는 것이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 여정의 경험과 그 길에서 찾는 내면의 가치들에 대해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가 미신적인 행동이 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흠 없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완벽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일 또한 우리의 뜻이나 능력의 결과는 아닙니다. 우리의 불완전함 때문에, 그래서 더욱, 예수님의 공로에 의지해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로 올리고 아룁니다. 예수님이 중재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마치 middle man 으로 계신 것 같은, 그래서 믿음 생활도 경제 모델을 점차 닮아가는 그런 모양이 아니라, 타락하고 허물어진 우리지만 예수께서 열어놓으신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 예수께서 보증하시는 신분이 되었기에 감히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서도 미신이나 다름없는 신앙으로 살 때가 많습니다. 나의 기도가 미신으로 바뀌는 때는 언제인가. 무당을 찾아가 잘 빌어달라고 부탁하듯 내가 원하는 것들을 늘어놓고 끝에 예수님의 이름 도장을 찍고 일어나는 때는 언제인가. 늘 이러지 않나…”기도한대로” 잘 풀리면 할렐루야! 했다가, “기도가 막히면” 언약궤를 모셔오자는 엘리 시대의 이스라엘, 그 앞에서 빌 수송아지를 만들자는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내 눈에 보이고 내 머리로 이해되는 하나님을 찾아 나서면서도 이걸 믿음으로 아는…..부끄럽습니다. 미신이 아닌 때가 없는 것처럼 속이 허하고, 말만 번드르하고, 때에 따라 감정 따라 기도가 달라지는 그런 나의 모습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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