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상 3장: 하나님의 선하신 소견대로

해설:

사무엘은 사사 시대의 말기에 태어나 자랍니다. 저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에 대해 “그 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1절)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져서 영적으로 둔감 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드문 일이 사무엘에게 일어납니다. 엘리가 시력을 잃을 정도로 노쇠했을 때, 주님께서 한밤 중에 사무엘에게 나타나십니다(2-3절). 그는 엘리와 함께 성막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이름을 두 번 부르는 것은 애정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사무엘은 아직 어렸고 영적 체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알고 그를 찾아갑니다. 엘리는 부른 적이 없다면서 다시 침소로 돌아가라고 이릅니다(4-5절). 얼마 후에 사무엘은 다시금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엘리에게 달려갑니다만, 엘리는 그런 적이 없다면서 다시 돌아가라고 합니다(6절). 얼마 후에 사무엘은 세 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엘리에게 달려갑니다. 그제서야 엘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할 일을 가르칩니다(7-9절). 

얼마 후에 사무엘은 네 번째로 주님의 부름을 듣습니다. 엘리가 일러준 대로 응답 하자, 주님께서는 엘리에게 이미 전한 일을 그대로 행하겠다고 하십니다(10-14절). 엘리는 이미 자신의 가문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예언을 전해 받았습니다(2:27-36). 사무엘은 충격과 두려움으로 인해 뜬 눈으로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차마 그 말씀을 엘리에게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사무엘을 부른 엘리는 두려워 떠는 그를 보고는 불길한 말씀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15-17절). 엘리는 들은 그대로 말하라고 엄중하게 명령했고, 사무엘은 들은 그대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충격적인 말씀을 엘리는 담담히 받아 들입니다(18절).

이 때로부터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됩니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받아 전한 예언들은 모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19절).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사무엘은 거룩하게 살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주 나타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사무엘을 예언자로서 신뢰하고 존경했습니다(20-21절). 

묵상:

자신의 가문에 임할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엘리는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18절)라고 답합니다. “뜻하신 대로”는 “선하신 소견대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엘리는 비록 영적으로 쇠약해졌고 분별력도 잃어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문지화’를 당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판단이라면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처사가 자신에게는 재앙이지만, 그분이 결정하신 일이라면 그것은 그분의 “선하신”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으로서는 어떤 처분이든지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 들일 수도 없는 큰 사고를 당한 교우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위로의 말씀을 전했을 때, 조용한 목소리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요, 뭐…”라고 답하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그분의 든든한 믿음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지금 나에게는 충격이고 재앙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락하셨다면 그분의 “선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그분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나의 기준에서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전 5:2).

3 thoughts on “사무엘기상 3장: 하나님의 선하신 소견대로

  1. 성막에서 사무엘에게 주님의 영이 내리는 사건에서 사무엘과 엘리의 태도를 배웁니다, 비록 엘리는 늙고 또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 했지만 주님에 대한 경외를 잘 지켜나가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어떤 태도로 나아가야 할지를 지도합니다.
    어떤 불행이 닥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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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때라도,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즉시 뉘우치고, 사랑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복 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중심이되는 영적 성막에 항상
    머물어 있는 믿음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부름과 주님의 부르심을 구별하는 분별력을
    간구합니다. 이웃과함께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주간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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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사장 엘리는 아버지로서는 실패자이지만 사무엘에게는 좋은 인도자입니다. 레위 가문의 소임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사는 것한 가지 뿐이기에 초이스가 없는 삶입니다. 이를 받아들여야 복이지 그렇지 않으면 저주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의 책임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제사에 쓸 제물에만 뜻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될 수련을 받지 않고 인격 조차 비뚤어져 가는 아들들을 보는 엘리의 마음은 심히 괴로왔을 것입니다. “그들의 온갖 악행을 상세하게” 들은 (2: 22) 엘리는 아들을 타일러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엘리의 가문을 심판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세워졌기에 아들들은 강퍅한 마음이 되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무엘은 어리지만 제사장의 자리에 앉을만한 그릇이라는 것을 엘리는 눈치챘을 것입니다. 비록 자기 집안에는 하나님의 엄한 심판이 내리겠지만 죽기 전에 제대로 된 제사장 하나를 훈련 시키겠다는 나름의 각오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엘리는 이제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사무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마지막 분별력은 살아 있습니다. 자기 집안은 멸망하지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은 계속 될 것을 확신합니다. 제사장으로서 다행한 종말입니다. 개인에게는 불행한 신탁의 말씀이 공동체에게는 소생의 약속이 될 수 있음은 요즘 한국에서 회자되는 “나를 밟고 가소서” 라는 책의 인용 글을 떠오르게 합니다. 억울한 심정에서 써내려간 책을 엘리 제사장의 믿음의 반응과 동일시 해서는 안되지만 공공의 소임을 받드는 개인과 공동체는 유기적인 관계, 서로를 품은 관계라는 점에서 잠시 견주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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