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장: 영적 타락의 열매

해설:

저자는 사사 시대 말기에 일어난 타락상을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살던 한 레위인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한 여자를 첩으로 데려 옵니다(1절). 저자는 그가 “젊은 여자”(3절, 4절, 5절, 6절, 8절, 9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 레위 사람은 성적 쾌락을 위해 형편이 어려웠던 집에서 젊은 여인을 첩으로 데려 온 것입니다. 

당시는 일반적으로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던 때이기는 했지만, 성막에서 봉사할 의무를 맡은 레위인은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지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레위인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 여인을 아내로 대우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무슨 일로 화가 났다”(2절)는 말은 남편의 폭행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럴 경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그 여인이 피하고 의지할 곳은 친정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의 친정으로 도망하여 넉 달 동안 지냅니다(2절).

레위 사람은 아내를 데려 오기 위해 처가집으로 갑니다. “그 여자의 마음을 달래서 데려오려고”(3절)라는 말에서 그 사람의 행실이 엿보입니다. 장인은 사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사위가 떠나려 하면 붙들어 앉히고 맛난 음식으로 대접하기를 닷새 동안 지속합니다. 그것이 딸을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닷새째 되는 날 레위인은 첩과 종을 데리고 장인의 집을 나섭니다(4-10절). 날이 저물었을 때 그는 베냐민 지파가 사는 기브아에 이릅니다(11-15절). 그곳에 이르러 하룻 밤 묵을 곳을 찾는데, 아무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15절).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율법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덕목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타락을 반증합니다. 다행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노인이 그들의 사정을 듣고 집으로 맞아 들입니다(16-21절).

그들이 몸을 씻고 음식을 먹고 쉬고 있을 때, 기브아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몰려 옵니다. 그들은 레위인을 내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그 사람하고 관계를 좀 해야겠소”(22절)라는 말은 성행위를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남성이 남성에게 성행위를 하는 것은 고대 시대에 모욕하고 길들이는 수단이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기는 커녕 최악의 모욕을 주려고 했습니다. 집주인은 그들이 하려는 일을 “악한 일”이요 “수치스러운 일”(23절)이라고 규정하면서 거부합니다. 주인은 자신의 딸과 첩을 내어 줄테니 그 남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간청합니다(24절). 남성 중심의 당시 사회에서는 남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여성의 존엄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을 소유물 중 하나로 취급했기에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 주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레위 사람은 첩을 그들에게 내어 줍니다(25절). 자기가 살기 위해 첩을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그 여자를 유린합니다. 새벽이 되자 만신창이가 된 그 여인은 남편이 머무는 집으로 돌아와 문 앞에 쓰러집니다(26절). 레위인은 실신한 첩을 발견하고는 나귀에 싣고 집으로 돌아옵니다(27-28절). 집에 도착하자 그는 첩의 몸을 열두 토막으로 잘라 이스라엘의 온 지역으로 보냅니다(29절). 그 모습을 본 사람들마다 큰 충격을 받습니다(30절). 

묵상:

이 이야기는 당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인공인 레위인에게서 우리는 성직을 맡은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식은 고사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 조차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의 젊은 여인을 첩으로 삼고 유린했습니다. 남편의 폭행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 여인은 참다 못해 친정으로 도피합니다. 그는 처가집으로 가서 감언이설로 첩을 구슬릅니다. 여인의 아버지는 사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닷새 동안이나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닷새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기브아에서 위기를 만납니다. 낯선 나그네는 이방인이라도 잘 대해 주라는 율법의 가르침(출 22:21)은 기브아의 사람들의 마음에서 완전히 잊혔습니다. 그랬기에 레위 사람의 일행은 그곳에서 묵을 집을 찾지 못하고 서성댑니다. 가까스로 머물 집을 찾았을 때, 기브아 사람들은 한 밤중에 찾아와 레위인을 내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어 성적으로 유린하게 만듭니다. 

다음 날, 그는 밤새도록 유린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열두 토막으로 잘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냅니다. 우리 성경에는 “그 여자의 주검”(28절), “첩의 주검”(29절)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그냥 “그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 여자가 죽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쩌면 레위인이 실신한 첩을 열두 토막으로 잘랐는지 모릅니다. 이 일로 인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어집니다.

영적 타락이 얼마나 깊은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두려워 떱니다.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부패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4 thoughts on “사사기 19장: 영적 타락의 열매

  1. 오늘 읽는 성경말씀이 너무 끔직해서 그져 멍멍해 지는 암침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그 때나 지금이나 왜 그린 심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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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윤리적으로 타락한 레위기 19장의 모습들이 지금 이 세상에도 일어나고 있는 경우들이 있으니, 더 놀라운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와 기준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기준 없이 자신의 생각,가치. 그리고 신념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마치 추락하는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영적인 타락은 윤리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윤리적으로 잘 산다고 해서, 영적으로 잘 사는 착각에 빠지면 안된다는 사실도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회개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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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짐승보다 벌레보다 더 더럽고 악취가 풍깁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워진 사람들이 이처럼
    타락된것에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저희들도 레위 사람과 기브아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은혜가 추악한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 그놀라운 은총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웃과 함께 오직 보혈 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갈수있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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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새벽에 읽는 말씀으로 참 끔찍한 본문입니다. 밤에 읽는다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질 스토리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영적 타락이라고 명명해도 영적인 공간만 훼손시키지 않고 삶의 전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영적”이라고 토를 달아도 우리의 육체나 정신 세계에도 물론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가 이미 레위 사람이 첩을 얻어 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고, 기브아 주민들은 여행객을 집에 데려가 재워주는 호의를 무시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기브아성 주민들은 낯선 외지인이 묵는 집에 몰려와 강간하겠으니 내 놓으라고 (22절) 성화를 할 정도입니다. 남성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일을 막기 위해 자기 처녀 딸이나 손님의 첩을 대신 내놓는 일도, 그래서 “그런 끔찍한 일 (23절)”을 대신 당하게 하는 일은 어제 오늘 생긴 일이 아니라는 점이 구약을 읽으면 알게 됩니다. 결국 레위 남자의 첩은 남편과의 삶도 불행했고, 도망쳐 온 친정의 아버지에게서도 보호 받지 못했고, 다시 따라나선 남편이나 중간에 묵게된 집의 노인으로부터도 보호는 커녕 도리어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 무자비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여자는 단 한 마디의 말도 남기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익명으로,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으로 등장했다 사라집니다. 시대의 영적인 타락은 여성에겐 전존재적 타락을 뜻합니다. 이 여성을 놓고 보면 어느 한 군데 상하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 이름 붙은 날, 예를 들어 어린이 날, 여성의 날, 노동자의 날…등등 누군가를 특별하게 기리자고 정하는 날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무시되고 가려져 있다는 뜻입니다. 어제 밤에는 성매매를 위해 납치되어 해상 선박 안에 갇혀 중동까지 운반되는 어린 (남아프리카) 소녀들의 이야기를 드라마타이즈한 영화를 보았는데 오늘 새벽에는 이 본문을 대합니다.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기도가 나오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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