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2장: 편견이 낳은 불행

해설:

암몬과의 전쟁이 끝난 후에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요단 강을 건너 입다에게 찾아와서 자신들을 전쟁에 불러주지 않았다고 불평합니다(1절). 그러자 입다는, 자신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전쟁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응답하지 않고서 이제 와서 불평하느냐고 답합니다(2-3절). 이 갈등은 에브라임 지파와 길르앗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오래도록 누적된 악감정에서 유발된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길르앗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하대했습니다(4절). 

입다는 분을 참지 못하고 길르앗 사람들을 동원하여 에브라임 지파를 공격합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 강 나루를 지키고는 요단 강 너머로 도피하려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모두 살해합니다(5-6절). 에브라임 사람들은 시옷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들을 구별해 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입다는 6년 동안 사사로 다스립니다(7절).

그 뒤로 베들레헴 출신 입산이 7년 동안(8-10절), 스불론 출신 엘론이 10년 동안(11-12절) 그리고 비라돈 사람 압돈이 8년 동안(13-15절)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이들의 활약에 대해서 성서 저자는 침묵합니다.

묵상:

에브라임 지파가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사정에 대해 누구의 말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승산 없어 보이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가 승리하고 나자 전리품에 욕심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혹은 입다가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불편한 감정으로 인해 부르지 않았다가 나중에 거짓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 사정이 어찌 되었든지, 이 갈등은 에브라임 지파와 길르앗 사람들 사이의 지역 감정으로 인해 생긴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전라도와 함경도가 오래도록 유배지로 사용된 결과,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지역 차별과 지역 갈등의 고질병이 발생한 것과 유사합니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자기 지파 사람들 중에 문제를 일으켜 요단 강 너머로 도망친 사람들이 주로 길르앗에 모여 산다고 생각하고 그들 전체를 천시하고 하대했습니다. 입다가 에브라임 지파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고, 에브라임 지파가 입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역시 지역 감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참담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합니다.

편견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어느 지역에 대한 것이든, 어떤 인종에 대한 것이든, 어떤 종교에 대한 것이든, 어떤 사람에 대한 것이든, 모든 편견은 결국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나의 어떤 점으로 인해 편견의 대상이 되는 것이 기분 나쁘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5 thoughts on “사사기 12장: 편견이 낳은 불행

  1. 비록 오해로 하대를 받고 모욕을 당하더라도 모든것을 통찰하시고 정확하게 아시는 주님을
    깨닫고 대적하지않고 주님께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혹 잘못을 했으면 즉시 뉘우치고 변명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끓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기쁨과 평강을 본이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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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환 바이러스니 차이나 바이러스니 하며 인종차별로 재선을 노렸던 인물로인해 요즘 극성을 부리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에 앞장서서 폭행을 하는 사람들을보면 오히려 인종차별로 멸시를 받았던 흙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현상을 보며 인간의 아이러니가 머리에 떠 오름니다, 우리 스스로도 백인과 흙인에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습과 문화를 주님께 고백하며 주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6-15를 통해 동족생쟁을 스스로 경험했던 우리였기에 더더욱 머리숙여 주님앞에 사죄하며 예수님의 말씀 왼쪽 뺌을 때리거든 오른 쪽 뺌까지도 내 주라는 말씀에 숙연해 지는 아침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상기하며 인간의 죄의 뿌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생각해보며 깨달음이 오는 아침입니다, 주님 용서하여주십시요 우리의 모든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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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환 바이러스니 차이나 바이러스니 하며 인종차별로 재선을 노렸던 인물로인해 요즘 극성을 부리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에 앞장서서 폭행을 하는 사람들을보면 오히려 인종차별로 멸시를 받았던 흙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현상을 보며 인간의 아이러니가 머리에 떠 오름니다, 우리 스스로도 백인과 흙인에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습과 문화를 주님께 고백하며 주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6-15를 통해 동족생쟁을 스스로 경험했던 우리였기에 더더욱 머리숙여 주님앞에 사죄하며 예수님의 말씀 왼쪽 뺌을 때리거든 오른 쪽 뺌까지도 내 주라는 말씀에 숙연해 지는 아침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상기하며 인간의 죄의 뿌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생각해보며 깨달음이 오는 아침입니다, 주님 용서하여주십시요 우리의 모든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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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쉽볼렛” 소리를 발음하지 못해 강나루에서 죽은 사람이 사만 이천 명이 되었다니 사사 입다의 자존심을 건드린 댓가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임무를 가진 지도자가 자기 동족에게 칼을 쓰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납니다. 미얀마 사태가 그렇고 아프리카의 나라 안에서도 권력을 쥔 사람들의 횡포가 심각합니다. 대부분의 다툼은 말에서 시작합니다. “말로 하면 될 일을 왜 싸우나?” 양쪽 다 말을 방패보다는 무기로 삼아 상대를 공격하는 데만 쓰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면 말은 금새 칼이 됩니다.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같은 말이라도 똑같이 듣지 않습니다. 상대방한테 어떻게 들리는지 헤아릴 수 있다면 말하는 것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상군이 투입되어 본격적인 전쟁으로 확대될 것인지 휴전을 택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평화의 시간은 늘 짧기만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삶 속에 자비를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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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입다의 충동적인 결정으로 또 다른 사건이 생기게 됩니다. 자신의 딸을 번제 제사로 드린 것과 같이, 충동적인 결정으로 에브라임 사람들을 모두 살해하게 됩니다.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서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고, 그 불안하고 충동적인 감정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내 안의 충동적인 감정 그리고 편견을 고민하게 됩니다. 충동적인 감정과 편견으로 남을 판단하거나 불행하게 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마음을 지키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사사기에는 여러 사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성경에서는 담지 않은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몇 년 동안 다스렸지만, 무엇을 열심히 했겠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어떤 일도 한것이 아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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