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9장: 타락의 쓴 열매

해설:

기드온이 죽고 나서 그의 일흔 명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들은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을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그 수모를 견디다 못해 아비멜렉은 어머니의 고향 세겜에 찾아가 그곳 주민들을 선동합니다. 세겜 주민은 아비멜렉의 선동에 넘어가 그에게 군자금을 대주었고, 그는 그 자금으로 건달과 불량배를 고용하여 기드온의 일흔 아들을 모두 살해합니다. ‘형제의 난’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합니다(1-6절).

기드온의 아들들 중에 막내인 요담은 이 ‘형제의 난’에서 살아 남습니다. 그는 그리심 산에 올라 세겜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비유로 말해 줍니다. 그는, 세겜 사람들은 결국 아비멜렉으로 인해 불행을 당할 것이라고 저주한 후에 아비멜렉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합니다(7-21절). 

아비멜렉은 삼 년 동안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22절). 그 기간 동안에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 서로 등을 돌립니다(23-25절). 그러는 사이에 세겜으로 이사 온 가알이 주민들로부터 신망을 얻습니다. 가알은 자신에게 힘을 실어 준다면 아비멜렉을 대항해 싸울 수 있다고 주민들을 선동합니다(26-29절). 아비멜렉의 심복인 스불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비멜렉에게 전합니다(30-33절). 그 소식을 들은 아비멜렉은 세겜을 습격하여 가알을 제압합니다(34-41절). 그는 도피하는 세겜 주민들을 추적하여 모두 살해하고 세겜 성을 헐고 재건하지 못하도록 소금을 뿌립니다(42-45절). 세겜 망대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본 주민들이 굴로 피신하자 아비멜렉은 굴의 입구에 불을 놓아 피신한 사람들을 모두 질식하여 죽게합니다(46-49절).

아비멜렉은 여세를 몰아 데베스로 가서 진을 칩니다. 데베스 성에는 높은 망대가 있었는데, 주민들이 그 망대로 대피하자, 아비멜렉은 그 망대에 불을 붙이려 합니다. 그가 망대 가까이에 이르자 어느 여인이 맷돌을 떨어뜨려 그에게 치명상을 입힙니다. 아비멜렉은 여인에게 죽었다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아서 당번병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합니다. 아비멜렉이 죽음을 당하자 그를 따랐던 병사들은 모두 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50-55절). 이로써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악행을 심판하셨고, 요담의 저주는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묵상:

성서 저자는 기드온의 말년에 대해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나이가 많을 때까지 잘 살다가, 죽어서 …… 무덤에 묻혔다”(8:32)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는 왕으로서의 책임을 사양했지만 왕이 누릴 부귀영화는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속적인 면에서 보면 그는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렸고 수 많은 처첩을 두고 쾌락을 즐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실로의 성소를 무색하게 할만한 호화로운 신전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이끌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사는 것 같았던 기드온의 타락한 삶은 그 이후로 엄청난 불행을 낳았습니다. 그가 즐기고 누리던 모든 세월 동안 그는 불행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기드온의 타락한 삶이 잉태한 많은 불행의 이야기들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죄악의 맛은 달콤하지만, 그것은 고통과 불행을 낳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확인합니다. 반면, 거룩하게 사는 것이 때로 손해와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은혜와 복의 열매가 맺힙니다. 세상적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옳게” 살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3 thoughts on “사사기 9장: 타락의 쓴 열매

  1.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못된 행위를 읽으며 에드워드 4세와 그의 3번째 막내 아들의 악행이 머리에 떠 오릅니다, 악의 씨를 뿌린 에드워드를 통해 새로운 왕가로 출발하지만 둘째형과 모든 친족들을 살해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왕위에 오르며 세상을 명령했던 리차드 3세의 악랄하고 잔인한 살생으로 권력의 정수리에 올라 세상을 호령했지만 끝내는 리치몬드에게 패하여 죽엄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상기됩니다.
    악의 씨는 서서히 잉태하며 끝내는 언떤 결실을 맺게된다는 주님의 말씀 속에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선의 씨를 뿌리는 삶으로 마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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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의 종으로 쓰임을 받았던 체험으로 교만해지고 주님을 떠나 세상 부귀영화에 도취되면
    가정과 사회와 나라에 극심한 재난이 기다리고 있다는것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앞에 갈때까지 일편단심 주님만 바라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결단을 갖는 믿음
    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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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비멜렉의 악행은 이복 형제들과 그 지방 사람들로부터 받은 설움과 모욕이 발단이었을 것입니다. 유명한 (한국) 영화 대사 중에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가 있습니다. 주먹 세계의 보스와 그의 심복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심복이 보스에게 도대체 내게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묻자 보스가 하는 대답입니다. 너가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수모와 모욕은 목숨을 걸고라도 돌이키고 싶은 – 지우고 싶은 감정인가 봅니다. 수모와 모욕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내 안의 짐승이 나오게도 하지만, 한 차원 높은 사람으로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수모와 모욕을 그대로 갚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받은대로 갚으라고 하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당하고 더 맞으라고 하십니다. 바보처럼 살라는 뜻일까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바보가 아니라 어진 사람, 현명한 사람으로 살라는 당부겠지요. 기드온의 영화가 자식의 대를 넘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납니다. 그 많던 아들들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입어 지켜낸 이스라엘은 얼마되지 않아 또 불순종과 타락의 길을 갑니다. 왕의 아들이라는 뜻의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예수님한테 더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섬기는 사람, 연민과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스스로를 왕이라고 여긴 기드온, 스스로를 왕의 아들이라 주장하며 인정 받기를 원한 아비멜렉, 이들이 선택한 길을 따르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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